평범해지는 손 / 심보선

[올드걸의시집]


하얀 손 창백한 손
흐린 초점으로 보면
사라지는 은하계 같은 손이
여자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다
여자는 소파 위에 반가사유상처럼 앉아 있다
오랜 윤회 끝에 한 천 년 만에
이 자세를 되찾았다는 듯이 누구에게도
이 자세를 빼앗길 수 없다는 듯이
손의 주인이 말을 한다 고마워
너를 만나고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어
남자의 손은 여자의 얼굴에서 피어난 연꽃 같다
여자의 얼굴은 연못처럼 고요하다
둘에서 셋 아니면 셋에서 넷이 되었겠지
그 정도겠지
왠지 이 방의 가구들은 하나하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한 듯하다
부처가 방금 걸어 나간 적멸보궁 같다
이제 당신도 그만 나가보지
남자가 문을 열고 나가자
여자는 바로 늙어가기 시작한다
그 자세 그대로
소파 위에서 이별을 반가사유하며
영원히 늙어가겠다는 듯이
남자는 떠났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남자는 사랑을 일용하였으나
생의 터럭 한 올조차 포기한 적 없다
가장 뚜렷한 손금인 줄 알았는데
깊이 파인 흉터이듯이
무엇을 쥐었다 베었던가
생각은 안 나지만
손이 아주 아팠던 기억은 있듯이
그렇게 남자는 여자와의 사랑을 되돌아볼 것이다
숭고한 영감이라 부르든
가혹한 저주라 부르든
사랑을 무어라 부르든
상관이 없었다
그 정도였다
이별하고 나자 남자의 손은 점점 평범해져갔다
환속한 중의 이마가 빛을 잃어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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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 지성사


<슬픔이 없는 십오 초>로 세미나 할 때 수다스러웠다. 키 크고 잘생긴 회계사가 될 뻔한 시인 덕분이다. 세미나 동료 중 팬심가득한 유민이 분홍 하트 떠다니는 발제문을 발표했다. 시집에 워낙 여자얘기도 많다. 왜 아니겠는가. 스물다섯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 이심대와 삼십대를 보내면서 쓴 시편들 모음이다. 자연스레 시인의 연애담이 자기의 경험담으로 나아가 보편적 연애론으로, 청춘담이 인생론으로 정서적 확장을 이루었다. 가장 많은 말들을 낳은 시는 화이트가 고른 평범해지는 손이다. 반가사유상, 윤회, 적멸보궁, 환속한 중의 이마까지. 불교적인 통일된 이미지로 사랑-정서의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선정의 변을 들었다 

누군가 물었다. ‘둘이서 셋 아니면 셋에서 넷이 되었겠지가 무슨 뜻일까. “나이가 스물 둘에서 셋에서 넷으로 늘었다는 거 아닐까요?” “, 저는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식구가 셋에서 넷으로 늘어난다는 뜻 같아요.” 연령론과 식구론. 묘하게 닮은 듯 어긋난 해석에 우린 키득키득 웃었다. ‘남자는 사랑을 일용하였으나 생의 터럭 한 올조차 포기한 적 없다는 대목은 남자의 이기적 유전자 성토대회로 번졌다. 남자의 기본 성향 아닌가. 늘 여자를 갈구하서도 자기 몫은 하나도 포기하지 않는 나뿐인 남자들이 있는데 진짜 나쁜 남자라는 결론. 심수봉 언니 버전으로 '남자는 다 그래!’

이주 후, 심시인이 별꼴카페행사에 초대 손님으로 납시었다. 일명 시인과의 대화. 나는 시를 좋아하지만 시인과 만나는 자리가 처음이었다. 라이브가 아닌 환타지로 간직하고픈 대상이 시인이기에 부러 찾지 않았다. 그날은 이십여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저마다 고른 시를 읽고, 시와 어울리는 음악을 듣고, 시인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시 쓸 때 당시의 감정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느냐, 죽음과 불교적인 요소가 많은데 종교에 관심이 많은가 등 창작론부터 시집에 나오는 전갈자리 그녀’와 ‘댄서등 디테일한 부분, 우울증 심화로 시심 폭발하던 유학시절 얘기까지 풍요롭고 흥미롭게 진행됐다 

우리 시세미나에서 나온 논쟁적 구절도 물었는데 의외의 대답. 둘에서 셋, 넷은 위에 나온 구절 너를 만나고 살아야 할 이유가 늘어남을 뜻한다고 했다. 심시인은 연극적 상황을 가정하면서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방식으로 시를 쓴다고 설명했다. 약간 허탈했다. 시를 이해하는 것이 정답을 찾는 일은 아니지만, 독해력의 한계를 확인했다고 할까. 시를 읽을 때도, 대화를 나눌 때도 사람은 자기 경험과 인식의 지평을 넘어서지 못한다. 자기방식의 편집권으로 타자를 감각하면서 오해도 생기고 환상도 만들고 그런다. 세상은 일인극인가, 생각하면 쓸쓸한 짓. 실은, 요즘 나는 이 한계를 느끼고 인터뷰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남의 얘기를 들어도 전부 나의 얘기로 환원해버리는 나를 본다. 가혹하다. 환속의 절차도 필요없이 저절로 탁해져가는. 시집을 덮자마자 바로 늙어버리는 삶. 듣는 능력을 키울 때까지, 반가사유하면서 시를 일용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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