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읽다 - 그의 시대와 나의 시대는 달랐다

[은유칼럼]

용산전쟁기념관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였다. 내게 용산역은 ‘용산참사역’이고 불에 탄 남일당 건물에 유가족이 사는 그 일대는 망자들이 떠도는 슬픈 무덤이다. 그렇다고 공연을 안 가기도 이상했다. 뭐 내가 나라 걱정에 단식투쟁 하는 투사도 아니고, 살던 집에서 먹던 밥 먹고 하던 일 하는 범속한 나날을 살다가 가끔 집회에 나가는 소시민 주제에 공연도 자중하고 금욕하기란 민망한 것이다. 그래서 갔다. 

 
그와 밴드 멤버들이 날렵한 검은 정장을 맞춰 입고 무대에 올랐다. 속으로 기뻤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5개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지 한 달 됐으니 저건 애도의 복장일지도 모른다고 내 뜻대로 해석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비틀스’ 코스프레였다. 몸은 공연장에 있고 마음은 남일당으로 기우는데, 공연이 절정으로 치달을 즈음 오색찬란한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펑! 펑! 펑! 까만 밤을 수놓는 불꽃쇼는 영원처럼 길었다.


ⓒ서태지컴퍼니 제공

“여름밤의 폭죽을 봐/ 울음이 결국 우주의 먼지가 되는 것을(26쪽).”


내 마음은 멍울졌다. 폭죽 양만큼 속울음이 터졌다. 공연 시작 전에 묵념이라도 했으면 좀 좋아. 아마 용산에서 무슨 행사한다고 저토록 많은 폭죽을 쏘았으면 그 단체를 생각 없다고 욕했겠지. <시대유감>이라는 노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불렀을까…. 그가 사는 시대와 내가 사는 시대가 같지 않으며 나의 유감이 그의 유감이 될 수 없음을 그날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이혼과 결혼으로 평창동 대저택에 은거한 뮤지션의 음악은 내 사십 대의 BGM(배경음악)이 되지 못했다.

서태지 데뷔 25주년 콘서트가 열린다고 했다. 같이 ‘팬질’하던 친구에게 공연 전전날 연락이 왔다. 스탠딩 앞 번호에 ‘1+1’로 산 반값 표가 한 장 남았는데 가지 않을래? 살림하는 아줌마 본능인지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인지 솔깃했다. 어떤 결정에서 8만원이 그렇게 중요한 적이 없었는데, 16만원 들여서까지 가고 싶진 않지만 8만원이라면 한번 가볼까 싶기도 했다. 시든 사랑은 식은 죽만큼이나 시시하다. 아무튼 갔다. 헤어진 애인의 결혼식 가는 심정으로.

<그래, 사랑이 하고 싶으시다고?>
박세미 외 지음
제철소 펴냄

정확히 8년 만의 조우다. 그는 서태지와 ‘아들들’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방탄소년단 멤버와 그 시절을 완벽하게 재현했다(아래 사진). 장기간 비활성화됐던 내 ‘덕력’도 살아났다. 친구와의 첫 곡 맞히기 내기에서 내가 이겼고, 기타 음 한 소절만으로도 곡명을 읊었다. 베이스, 기타, 키보드, 드럼, 보컬까지 겹겹의 사운드에 휩싸이자 온 세상이 내 것 같았다. “즐거웠던 시간만을 기억해줄래”란 노랫말을 흥얼거리고 ‘그럴게’ 약속하며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아름다웠지// 말할 때는 시제가 슬프게 느껴졌다(110쪽).”

뮤지션의 사회적 구실을 생각한다. 학생은 공부만 하라는 말처럼 뮤지션은 음악만 하라는 요구는 꽤나 정치적이다. 예술과 정치, 아이와 어른, 공과 사, 무대와 일상 등을 나누는 분리 기획은 권력자에게 유리하고 약자들이 고립된다는 면에서 위험하다. 직업·나이·성별에 무관하게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목소리를 낸다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지리라는 믿음이 내겐 있다.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목소리를 낸다면…

2009년, 시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피폐했고 지쳐 있던 난 그에게 온갖 이상을 부과했다. 있는 그대로 음악에 감응하지 못하고 자기의 풀리지 않은 문제와 욕망을 남에게 투사했고 충족되지 않자 돌아앉았다. 지금은 반성한다. 한 사람에게 시민의 책무를 기대할 순 있으나 그 실천의 속도와 방법까지 나와 같기를 바란 건 편협했고 무례했다. 

이번 공연에서야 본다. 동시대 ‘문화 대통령’이 아닌 국내 상위 계층의 재력가이자 탁월한 기획력과 실력을 갖춘 영리한 뮤지션으로 그가 무대에 있고, 8만원 절약에 기뻐하는 장기 채무자이자 불안정 노동자이고 록 마니아로서 내가 콩나물시루 같은 곳에 끼어 있다. 이게 팩트다. 나의 ‘음악 자아’를 활성화해주러 온 내 인생의 중요한 타인,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사람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이불을 덮고 죽는다(56쪽)”라고 하니 목 끝까지 덮을 이불 한 채 개키는 심정으로 한 시절 추억을 접는다.


- 시사인 <은유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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