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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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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애 이미지비평가 - 이미지뒤집기 배우는 ‘미애 氏의 일일’ 희붐한 안개 자욱한 어느 겨울날. 잿빛 대기와 아스팔트 뚫고 외로운 수직선 하나 걸어온다. 귀에는 이어폰 목에는 목도리 손에는 냉커피, 해사한 얼굴엔 눈망울이 그렁그렁 걸렸다. ‘이미지뒤집기’의 필자다. 매체사진비평모임에서 활동하다가 내친김에 영상대학원에 진학한 소신파다. 느리고, 고집스럽고, 삐딱하게 그녀는 모색한다. ‘이미지뒤집기’ 혹은 ‘인생역주행’의 묘안을. 이미지뒤집기 배우는 ‘미애 氏의 일일’ 설상가상이다. 엄동설한이건만 냉커피에 빨대 끼워 수시로 목을 축인다. 일본소설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담백하고도 나른한 분위기의 그녀. 어쩌자고, 그저 무람하게 웃기만 한다. 침대처럼 편안한 침묵이 십여 분 흘렀다. 심심풀이 화두를 몇 가지 던졌다. 올해의 드라마를 뽑는다면? “” 대선에 누구를 뽑을 생각..
윤성호 감독 - 재기발랄 저항가 '독립영화' 판에 뛰어들다 추리닝 바람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타난 윤성호 회원. 어기적어기적 계단을 오르는 뒷자태하며, 안경 너머로 나른하면서도 분주한 시선을 쉼 없이 발사하는 눈초리까지. 보무도 당당히 꿈에 취해 다니는 그는 영락없는 몽상가타입이다. 2001년, 제1회 시민영상제에서 로 대상을 받으면서 민언련과 인연을 맺고, 이후 해마다 필모그래피를 늘려간 재기발랄 저항가, 윤성호 감독을 만났다. 영화감독 윤성호 재기발랄 저항가, 윤성호 감독 농구와 맥주 즐기던 우익청년 윤성호 “전공이 신문방송학과지만 사회에 별 관심 없었습니다. 학회 할동도 통일학회나 말지연구학회 같은 정치적인 것을 제외하고 부담 없이 가입할 만한 곳이 영화분석학회 뿐이었습니다. 영화랑 친해진 계기가 됐지요. 그 때가 막 디지털 캠코더가 보급되었고, 장난으로..
정동익 동아투위 위원장 - 큰 언론인의 긴 싸움 두 개의 명함. 하나는 낡았고 하나는 반질하다. 1974년 결성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과 지난 6월 발족한 ‘민주평화국민회의’ 대표에는 모두 정동익이란 이름이 적혀있다. 그는 늘 여러 개의 명함이 있었다. 지난 32년 동안 그가 지닌 명함은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의 장대한 슬라이드 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언련의 전신 ‘민협’ 의장시절 언론학교를 만들어 언론운동의 새 지평을 연 그는, 한 평생 언론민주화의 아궁이를 지키며 시대정신의 불씨를 지펴왔다. 원로의 경륜과 현역의 열정을 갖춘 그가 묻고 그가 답했다. 언론운동은 왜 필요한가, 진정한 언론인의 자세는, 민언련이 태동한 정신은 또 무엇이더냐. 뭉근히 오래 끓어 깊은 맛을 내는 그의 이야기는 내도록 뜨겁게 귓전을 울렸다. 동아자유언론수호..
차형석 시사인기자 - “지금, 취재현장으로 돌아갑니다” 막내기자 차형석. 지난 7년 간 그의 자랑스러운 타이틀이었다. 시사저널은 팩트에 입각한 집요한 취재와 성역 없는 탐사보도로 참언론의 가치를 구현해왔다. 1년 전 사장의 일방적 기사삭제로 일명 '시사저널 사태'가 불거졌고, 그는 동료들과 ‘편집권독립투쟁’의 긴 터널을 통과했다. 현재 사표를 내고 새 매체 창간을 준비 중이다. 수척한 얼굴에 형형한 눈빛의 그는 ‘기자로 산다는 것’의 묵직한 소회를 밝혔다. 차형석 기자 “지금, 취재현장으로 돌아갑니다” 파업, 1인 시위, 집회, 단식농성… 그러나 서울 목동 방송회관 9층.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이란 작은 명패가 눈에 띈다. 전 시사저널 기자들의 임시 거처다. 그는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노조 소식지에 나갈 ‘시사저널 사태 총정리’ 글을 ..
박문열 두석장 - "삶은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어. 그냥 살면 돼" 열다섯에 쇠붙이와 인연을 맺었으니 40년이 넘었다. 고되고 고독하고 혹독한 시간이었다. 허나 어떤 미혹됨도 없이 ‘두드리고 새기고 파냈다.’ 그렇게 불혹의 세월을 묵묵히 밀고 나갔다. 목가구에 붙이는 각종 금속제 장석(裝錫)을 만드는 두석장 박문열 씨. 그는 전통 장석물의 기기묘묘한 아름다움에 매료돼 ‘먹고 자고 일만했다’는 담박한 삶의 원리를 터놓는다. 중요무형문화재 64호 두석장 박문열 씨 기기묘묘한 자물쇠의 비밀 풀다 벽제 부근, 너른 들판을 끼고 야트막한 슬레이트 지붕 건물 세 채가 서있다. 좀 허름한가 싶었으나 ‘중요무형문화재 64호 두석장 기능전승자의 집’이란 문패를 보니 여기가 맞다. 박문열 선생의 작업장이다. 안쪽은 나름 운치가 있다. 상추며 감자가 심어진 텃밭이 그대로 마당이다. 저 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