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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축제전야

사람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자신은 모릅니다.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모르고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데 모르고 있다고 믿었는데 실은 알고 있는 것도 있거든요. 이 영역이 제가 글을 쓰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후루이 요시키치)

요새 바쁘구나, 글을 잘 안 쓰는 걸 보니. 라고 친구가 말했다. 바쁜 건 맞지만, 내가 글을 가장 왕성하게 쓸 때보다 바쁘지는 않다. 그 때는 바쁜 게 글쓰는 이유였고, 지금은 바쁜 게 글 안 쓰는 핑계다. 그 때는 왜 썼는지, 뭘 쓰는지도 모르고 쓰는 행위에 열중해서 썼던 거 같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 지금은 글을 쓰려고 하면 생각이 개입한다. 시시하고 지루하다. 내가 하려는 말들이 시시하고 떠올랐다 가라앉는 생각들이 지루하다. 왜, 꼭, 굳이, 뭘, 또, 하면서 눕는다. 책을 들고 십분쯤 누워 있다가 책장 몇 장 넘기고 핸드폰 만지작거리다가 피곤과 권태에 지쳐서 잔다. 내 안에서 생각이 성숙해지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있다. 알고 있다고 믿은 것을 모르고 있었고, 모르고 있는 것도 당연히 모르고 있었으니, 불능의 밤이 길 수밖에.  




처음 해보는, 은근 적성에 맞는 놀이. 책축제프로그램 기획.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임박했다. 4월에 입사해서부터 줄곧 10월에 있을 10주년 축제를 준비중이다. 씨앗을 뿌리고 여기저기 던져놓고 그것이 여러사람들의 지지와 동조와 호응 속에서 여물고 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수십번의 전화와 이메일, 미팅과 간절한 염원이 깃들어야 성사가 된다. 주제설정과 참가자 섭외가 무척 힘들었던 국제포럼 외에도, 몇 가지 사심가득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우선은 시. 시다. 캐리어포임carry a poem 캠페인을 위해 시수첩을 만들고 시심토크를 계획했다. 존중과 품위의 황현산선생님, 아름다운 시를 쓰는 김소연 시인, 인정많은 도시남자 시인 심보선, 젊은 활력 황인찬 시인과 함께 한다. 셰익스피어450주년 기념해서 연극강연도 있다. <햄릿>과 <베니스의상인>으로 기억, 채무, 복수의 문제를 재해석하는 강연인데 입체적 재미를 위해 연극을 넣었다. 요즘 <법 앞에서> 공연으로 바쁜, 연극인으로 변신한 은영이랑 같이 한다. 처음해보는 시도. 영문학 전공한 교수님들 강연원고를 읽고 있는데 어렵고 재밌다. 가치있는 난해함의 재미를 공유하고 싶다.

지난 봄에 서울국제도서전에 갔다가 나오는 길. 클라우드 맥주가 출시했는데 메드포갈릭에서 프로모션으로 클라우드 생맥주를 2천원에 판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마시러 갔다가 너무 맛있어 감동하고, 술을 찬미하다가 떠올린 기획. 술을 사랑한 작가들. 마신다면 모름지기 삼백잔이지 두보랑 취해라, 취하여야 한다 보들레르랑, 젊은이들이 목로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사회의 미래는 없다고 말한 김수영이랑. 술과 작가는 서로를 잉태한다. 칼럼니스트 임범이랑 곧 신간이 나오는 백가흠 작가가 문학과 술, 혹은 술 자체를 이야기하는 자리다. 합정동 자음과모음 빌딩 5층, 운치있는 하늘카페처럼 생긴 공간을 빌렸다. 술만 협찬 받으면 땡. 무한대로 기분 좋아지는 기획.

개인적으로 글쓰기의 스승으로 삼고 지적 능력을 흠모하는 정희진선생님도 모셨다. '좋은 사람과 좋은 글'이란 주제의 강연. 명쾌하고 날카로운 소장파 사회학자. 정리되지 않은 글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박권일과, 한윤형, 김완 셋이서 '20대는 왜 연애상담에 열광하는가'를 주제로 하는 강연도 추진 중. 홍대앞 주차장길에서 열리는 거리도서전에 일인출판사를 위한 기획부스와 강연을 마련했다. 이것은 신념으로 추진하는 일. 작은 것들과 큰 것들이 어우러져야 진짜 축제지. 근데 참여출판사의 정산, 책의 취합 배분, 부스운영 등등 현실적 문제가 산 너머 산. 안그래도 행정처리에 우둔한 내 머리가 더 작동이 마비되니 답답하다. 나의 하소연을 들은 친구가 그랬다. "처음 가는 길이니까 힘들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가던 길로만 가려는 거야." 에라 모르겠다. '눈을 감고 간다.' 윤동주 시구처럼.   

2014국제포럼을 앞두고 사사키아타루 책을 다시 꼼꼼하게 읽고 있다. 명문이다. 유려한 사유의 세계가 부러울 따름. 손홍규 작가의 발제문은 어찌나 훌륭한지 글 읽다가 오랜만에 눈물이 났다. 글을 쉽게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가 믿음직했고 선택했는데 기대이상이다. 사려깊고 우직한 소설가가 있어서 고마울 따름. 고병권의 글은 워낙 명품이고. 김소연 시인과 함돈균 평론가의 토론문을 설레는 맘으로 기다린다. 이 글들을 한 자리에 첩첩이 엮어 예쁘고 고급진 자료집으로 만들 생각에 들뜬다. 요며칠은 자기전에 A4용지 뭉치를 들고 눕는다. 홍보작전이 필요해. 온갖 기획서와 강연원고를 손에 들고 이 좋은 사유와 글월의 세계를 어떻게 알리고 나누고 드널리 향유할 수 있을까를 궁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