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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친구의 이별에 대처하는 법 - 김혜순 '한 잔의 붉은 거울'


지난여름 친구가 별안간 이별을 겪었다. 동거하던 애인과 멀어지다 헤어졌다. 친구는 상실이 컸다. 늘 옆에 있던 사람이 없으니 외롭고 허전하고 상대의 변심이 분하고 믿기질 않고 사탕처럼 녹아 없어진 사랑의 실체가 허무한 거다. 입맛을 잃어갔다. 사랑이 사람을 반짝반짝 생기 돌게 한다면 이별은 육신의 스위치가 하나둘 꺼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거의 3주가 되자 낯빛이 거무튀튀해지고 살이 쑥쑥 내렸다. 치마가 헐렁해져 주먹이 쑥 들어갔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 할 말은 아니지만, 다이어트에 마음고생만한 게 없다는 말을 절감했다.

 

한 관계의 분리를 지켜보는 나는 무력했다.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게 개별자의 구체적 사건이 되면 의미와 기호로 가득한 작가주의 영화가 된다. 행복한 이유는 비슷하지만 불행한 이유는 제각각이라는 톨스토이의 말대로 고통은 철저히 개별적이다. 내밀함의 영역인 연애사는 더하다. 보편적 극복매뉴얼이 없다. 저마다의 안간힘이 있을 뿐. 친구는 ‘나를 앉혀놓고’ 지난 시간을 일일이 떠올리고 과거를 복기했다. 그 장대하면서도 자질구레한 서사의 재구성은 권태를 모르고 반복되었다. 이런 과정은 딱히 대화를 나누는 상담(相談)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독백을 경청하는 일에 가까웠다.

 

“끝나버린 이유라도 알고 싶다.” 친구는 급기야 헤어진 남자를 만나고 왔다. 대화내용을 녹음했고 녹취를 풀었다며 노트를 폈다. 나는 입이 딱 벌어졌다. 기자의 취재수첩처럼 글자가 어지러이 빼곡했다. 그 말들을 근거 자료 삼아 이별의 이유를 추론하는 것이다. 이 타자를 향한 끊임없는 탐색, 안달, 몸부림. 이쯤 되면 유행가 가사 대로 사랑이 죄다. 더 많이 사랑한 죄로 ‘을’이 된 자가 자처하는 밤샘 노역이다. 스스로 납득할 논리를 만들어가는 무모한 노동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별을 못 견디는 게 아니라 이유 없는 이별을 못 견디는지 모른다. 하지만 직간접 경험을 종합해볼 때 대개의 이별에는 이유가 없다. 통보와 수용만 있을 뿐.

 

‘아직도 여기는 너라는 이름의 거울속인가 보다…내 안에는 너로부터 도망갈 곳이 한 곳도 없구나’ (김혜순 「한 잔의 붉은 거울」 중)

 

감옥 같은 시간을 여전히 어정거리는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그동안 누가 이혼하거나 헤어졌다고 하면 차라리 잘된 일이야. 빨리 잊고 새 출발하라고 말했는데, 내가 쉽게 말했더라. 수시로 불쑥 닥쳐오고 그때마다 견뎌야하는 것들이 있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은 거였어.” 속으로 뜨끔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더니 긴 이별에 지치던 참이었다. 아픔을 외투처럼 간단히 벗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서 잊으라고 채근한 내가 부끄러웠다.

 

한 가지 배웠다. 친구가 되기는 쉬워도 친구로 살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친구는 지기(知己)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한 존재를 안다는 것은 그의 어둠을 아는 것. 슬픔공동체 되기다. 난데없는 일들에 같이 분노하기. 두서없는 말들을 묵묵하게 들어주기. 그건 단기 속성반도 완전 정복도 없다. 영어사전을 씹어 먹으며 외국어를 익힌다는 공부법처럼 친구의 단단한 아픔이 물컹물컹 해질 때까지 같이 오래오래 ‘수다의 입김’으로 녹여주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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