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은 두렵다. 겨울밤은 어둡다. 헤매기 십상이다. 역시나 그랬다. 제사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 남편은 늦게라도 송년회에 가야한다고 먼저 따로 나갔다. 혼자서 뒷자리엔 애들을, 트렁크엔 김치를 싣고 출발했다. 시댁에서 집으로 가는 길, 수지에서 목동까지 수년간 수십 번을 지나갔는데 헤맸다. 판교IC 타는 곳을 놓쳤더니 영판 낯설다. 왕복 8차선 도로에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었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 서울 표지판은 나오지 않았다. 무서웠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것 같았다. 지나고 나니 사라지는 거품 같은 길. 여기가 어딘지 불안했다. 언제 도착하냐고 채근하던 아이들은 다행히 잠들었다. 지금이라도 뒤에 있는 네비게이션을 달까. 시끄럽고 정신 사나워 떼어놓았는데. 하지만 차를 멈출 수가 없었다. 달리는 차는 계속 달려야한다. 설상가상 계기판에 경고등까지 들어왔다. 기름이 떨어졌다. 경고등 들어오고 30KM는 가니까 괜찮겠지. 그래도 조마조마하다. 춥고 배고프고 길 잃은 차.
나의 무능력은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번졌다. 지금 전화하면 ‘어떻게 몇 년 동안 다닌 길을 모르냐?’고 구박하겠지.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지만 자기는 어떻고. 제사 지내는 날까지 식구들 놔두고 모임에 가다니. 자기가 무슨 정치인이야. 얼굴만 내밀게. 걱정 따윈 넣어두려했지만 한 시간 가량 서울 외곽을 배회하자니 온갖 상념이 스쳤다. 가도 가도 끝없는 암흑천지가 마치 인생길 같았다. 남들 똑똑한 네비게이션 안내 받으며 탄탄대로를 갈 때 둔감한 감각에 의지하다가 헤매는 신세라니. 미련하다. 살면서 종종 들었다. ‘너도 참 미련하다’는 말. 평소 홀가분하게 혼자 살고 싶다고 잘난 척하더니 이럴 땐 남편을 찾는다. 과연 나한테 저 아이들 데리고 인생길 홀로 헤쳐 나갈 자격이 있는 걸까. 입버릇처럼 남발한 남편에 대한 원망, 결혼에 대한 부정. 하지만 내 배때기로 긴 자국 내며 지나온 길. 지금은 사라진 거품 같은 길. 굴욕을 지불하고 통과해온 길이 나의 길이었다. 남편은 늘 나의 액면을 확인케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