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가을은 낙엽과 시와 노래로 충만했다. 앙케이트 할 때면 좋아하는 계절에 ‘가을’ 써놓고 9월부터 미리 들떠 지냈다. 고1때 국어선생님을 사모했는데 ‘낙엽을 태우면서’를 배우는 시간엔 애들이랑 우애동산에서 낙엽을 쓸어와 교단에 쫙 깔아놓고 선생님을 기다리기도 했다. 이해인 수녀님의 잔잔한 가을 시들과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와 김초혜의 '사랑굿' 연작시를 격자무늬 노트에 핑크색 잉크 만년필로 옮겨 적고 거리에서 예쁜 낙엽을 모아 코팅하는 등 소박한 가을의식을 치렀다. 조동진의 ‘나뭇잎 사이로’와 이동원의 ‘가을편지’를 꼭 챙겨 듣는 조숙한 아이였다.
연애와 육아로 채워진 이십대의 가을은 삶의 멋진 바탕화면. 첫아이 꼬까옷 입혀 유모차에 끌고 다니면서 오색 단풍 물든 곳을 배경으로 사진 찍느라 바빴다. 둘째 낳고는 빨간 단풍잎보다 더 귀여운 아가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노란 은행잎보다 더 환한 아가의 웃음에 넋을 잃었으니 가을 풍광에는 눈길이 오래 머물 틈이 없었다. 그러다가 삼십대 초 어느 해인가 모처럼 애들 떼놓고 친구와 석촌호수에서 폼 잡고 ‘가을 영화’를 찍었다. 왠지 행인들이 우리를 레즈비언처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만큼 우리는 다정했고, 고즈넉한 서른의 감수성으로 바라본 가을은 아름다웠다. 내면의 소녀성을 잠재우고 사는 젊은 엄마의 가을은 그렇게 아깝게 뭉텅이로 흘렀다.
삶의 빈자리가 생겨야 그곳에 가을이 들어찬다. 아이들도 품 안을 떠나고 삼십대 후반이 되니 가을이 내 살처럼 만져진다. 높은 하늘로 조금씩 물러나는 구름. 차고 맑은 첫 새벽 공기.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 가을바람 소리. 그냥 그립고 마냥 그리운 사람. 가을세상이 징그럽도록 선명히 보인다. 그리하여,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임수정이 자신의 신체를 기계로 여겨 인간을 거부하고 기계와 소통하듯이, 나는 사람도 싫고 가을하고 놀고만 싶어진다. 가을이면 연애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가을이랑 연애하고 싶다. 금강 하구의 무연하게 펼쳐진 억새풀 몸짓 따라 흔들리면서. ‘너도 잘 있는 거지’ 혼자 물으며 말이다... 아, 삼십대의 마지막 가을을 어찌 보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