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메시지 신호음을 핸드폰 산지 3년 만에 처음으로 바꿨다. “와~ 쪽지다~”하는 앙증맞은 목소리다. 그랬더니 문자 올 때 왠지 더 반갑다. 주로 아침 첫 문자는 이팜과 초록마을이다. ‘한우 잡는 날, 사태 양지 특수부위 20% 세일, 단 하루’ 이런 광고가 애들 학교 보내고 나면 꼭 온다. 오늘 아침엔 유기농 회사가 아닌 직접 농사짓는 분에게 왔다. 강원도 양구에서 된장 파는 분이다. 지인 소개로 된장을 주문했는데 계좌번호를 문자로 알려오셨다. 나는 얼른 답을 보냈다. ‘어제 받자마자 수소문해서 입금했어요. 된장이 너무 맛있어요. 풋고추도 짱이에요. 풋고추는 살 수 없나요?ㅎㅎ’
산 넘고 물 건너 도착한 택배 상자에는 된장과 신문지 뭉치가 들어있었다. 돌돌 말린 신문지를 푸는데 보물찾는 것처럼 설렜다. 평소 폐품 취급받는 신문지건만 그순간 만큼은 비단처럼 보들보들 촉감이 고왔다. 다 펼치자 풋고추들이 올망졸망 몸 맞대고 모여있었다. 덤이다! 신문지에 투박하게 쌓인 인정이 반가워 순간 뭉클했다. 다급한 마음에 풋고추를 씻지도 않고 손으로 쓱쓱 문지르고는 된장 봉지 풀어 콕 찍어먹으니 그 맛 또한 환상이었다. 황토와 초록이 이렇게 황금배합 색이었나. 빛깔도 그리 고울 수가 없었다.
풋고추 값보다 택배비가 더 들겠지만 그 맛난 풋고추를 더 사먹고 싶어서 넌지시 문자로 물었는데 ‘풋고추 팔 건 없답니다~ 된장은 유리병에 넣어 맛있게 드시고요 건강하세요.’ 라고 답신이 왔다. 저 멀리에서 농사짓는 분이랑 문자를 하자니 덜컹거리는 경운기 소리라도 들리는 듯했다. 깊이 패인 주름살 접힌 손으로 누른 메시지에서 맑은 바람과 진한 흙냄새가 올라왔다. 오후에는 남편과 문자를 했다. 남편은 '몇 시에 나갈거야?'라고 물었다. ‘6시. 김치찌개랑 조기랑 올방개묵 해놨어. 애들 저녁 먹이고 서형이랑 좀 놀아주고 자야해’ 이런 가정통신문을 전송했다.
오후 7시 무렵. 상도동 내리막길을 거니는데 눈 아래 펼쳐진 하늘이 장관이다. "와! 하늘"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졌다. 앞서가던 아주머니가 뒤 돌더니 "하늘 참 예쁘죠?" 말을 건넨다. 붉은 노을과 잿빛 구름이 빚어내는 어스름 하늘에 넋놓고 있는데 선배에게 문자가 왔다. ‘난 이렇게 계절 바뀔 때가 좋더라’ 답을 보냈다. ‘난 이런 언니가 좋더라. 저 멋진 하늘로 한발 한발 걸어 들어가고 싶어..’ 잠시 후 19:21분. 오늘의 마지막 문자다. ‘가을의 시작, 당원동지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당비만 내는 유령회원인데도 행사참여를 알리는 단체쪽지가 꼬박꼬박 답지한다.
문자를 확인하고 핸드폰을 닫는데 괜스레 웃음이 났다. 풋고추로 시작한 문자가 가을로 끝났다. 문자의 기록을 통해 하루를 되짚어보았다. 문자와 일상이 서로를 거울처럼 비춘다. 일상이 문자를 낳고, 문자가 일상을 만든다. 아무튼 말보다 글이 편한 내게 문자는 삶의 악센트고 쉼표이고 징검다리다. 따지고 보면 문자에 대단스러운 내용은 없지만 가난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자잘한 말들이 좋다. 쌀알갱이처럼 순한 말들. 좋은 사람들끼리 나누는 실없는 얘기들이 소중하다. 때로는 울화를 치밀게 하는 마구 흔드는 얘기들. 사이를 가르는 마음의 삼팔선 허무는 먼지의 일렁임 같은 희붐한 얘기들. 피난보따리 만한 꽁꽁 싸맨 작은 얘기들. 그 터질듯한 그리움의 얘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