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종류가 만 가지가 넘는다. 그간 여러 직업의 세계를 접했는데 아무래도 사보일을 하니까 회사원을 가장 많이 만난다. 같은 샐러리맨이라도 업종에 따라 삶이 다르다. 매스컴에서 신의 직장이라고 소개하는 공기업, 금융권 고액연봉자 일수록 쫓기듯 산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는 통에 산만하다.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어서 사진도 건물에서 후다닥 찍고 가버린다. 취재팀에게 ‘차 한 잔 하시겠느냐?’고 묻지 않는다. 금융맨들은 실적 때문에 카드 신청서를 늘 소지하고 다니고 취재 끝나면 권하기도 한다. 개개인의 능력은 매우 탁월하고 스트라이프 셔츠가 잘 어울리는 글로벌 인재들인데 대체로 좀 각박하다.
공사와 제조업, 연구직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여유롭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그렇다. 음료수도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 두 가지 마련해서 선택권을 주고, 기념품을 꼭 챙겨준다. ‘여기까지 왔는데 밥 먹고 가라’고 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람이 사람을 반기는 태도가 깍듯하거니와 취재마저 수월하다. 미리 질의서를 달라고 해서 답변을 정리해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준다. 80년대 회사 분위기처럼 개인주의가 덜하고 공동체 정서가 남아 있다. 가끔 윗분에게 데리고 가서 인사시키는 등 관료적 문화에 따른 번거로움도 있는데 대체로 좀 훈훈하다.
오랜만에 공사 어느 부서에 취재를 갔다. 아니나 다를까. 커피도 주고 비타500도 주고 기념품이라며 볼펜과 교통카드도 챙겨준다. 서울인데도 시골쥐처럼 인심 후하다. 촬영을 위해 승용차 4대를 동원해 한강 둔치 양화지구로 출동했다. 중년의 남자들이 소풍 온 아이들 마냥, 아니 수업 땡땡이 친 악동들처럼 좋아라한다. 물가에서 한 컷, 갈대숲에서 한 컷, 장미 꽃밭에서 한 컷. 영화 주유소습격사건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고즈넉한 월요일 오후의 강물 위로 셔터소리와 웃음소리가 엇박으로 뒤엉켜 흩어진다.
앵글을 피해 강가에 쭈그려 앉았다. 저 웃음. 그 눈물. 다 받아안는 강물. 한강아, 너를 이렇게도 만나는구나. 근래들어 한강은 아이 데리고 수영장 온 게 전부였다. 이렇게 조용히 강물과 독대하는 게 얼마만인지. 내 인생의 한 컷에 기꺼이 배경이 되어주었던 고마운 강물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도토리묵처럼 쭈글쭈글한 연한 밤색의 가을빛 강물이다. 저 찬란한 기쁨의 표면 아래 어두운 속살을 보아버린 후부터 일까. 온갖 애간장 사연과 침과 피를 다 타버린 생의 거대한 물살. 한강. 지하철 창문에서 볼 때도, 발치에 두고 볼 때도 그렇다. 한강을 마주하면 일초 만에 쓸쓸하다. 습관처럼 외롭다. 눈도 마주칠 수 없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