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겨레

(8)
딸 없으면 공감 못하나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동성 친구에게 힘든 얘기를 잘 안 한다고 남자 지인이 말했다. 그 자리의 네댓 명이 대체로 동의했다. 내 아버지나 남편, 동료들을 봐도 결정적인 고민은 남들과 공유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힘든 일이 생기면 친구랑 전화통 붙들고 운다. 친구의 긴급 호출도 물론 온다. 이런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왜 그런지 토론했다. 한 중년 남성은 사회생활의 경쟁 시스템에선 하소연이 곧 약점이 되어 불리하니까 숨긴다고 했다. 여자들의 고민 공유, 즉 수다는 약자들의 연대라고 나는 말했다. 말해봐야 잃을 것도 없고, 말이라도 해야 후련하니까.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품앗이처럼 말하고 들어준다. 그러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타인의 처지도 공감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또 하루를 살아간다. 난 어려서부터..
서울, 패터슨의 가능성 평일 오후에 이런 적은 처음인데 싶어 연신 창밖으로 몸이 기울었다. 정류장이 코앞. 신호가 몇번 바뀌도록 버스가 꼼짝 못 하자 기사는 뒷문을 열어주었고 승객 서넛이 내렸다. 큰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정류장도 아닌 데 차를 세웠다며 뒷문 쪽에 웬 남자가 서서 목청을 높였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 줄 아느냐, 운전기사가 아무것도 모른다, 형편없는 사람이다, 라며 그는 술 취한 아버지처럼 한 말 또 하기 신공을 발휘하더니만 느닷없이 화제를 자신에게 돌렸다.“내가 말이야 모자 쓰고 잠바때기나 입고 있는 늙은이라고 날 무시해!” 짙은 밤색 모자와 남색 외투를 입은 행색은 단정하고 허리는 꼿꼿했다. 행동도 민첩했다. 핸드폰을 꺼내 차 문 위에 붙은 교통불편 신고 전화번호를 누르고 차량 번호, 위치, 신고 내..
읽고 쓰지 않을, 권리 사교육으로 유명한 지역에 강의를 갔다. 앞서 단체 대표가 교육 특구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인사말을 전하더니 여러분들이 글쓰기를 잘 배워두었다가 아이들에게도 알려주라며 자리를 떴다. 객석 대부분은 주부였다. 당황한 나는 황급히 취지를 바로잡았다.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가르치지는 마세요. 엄마의 옷을 벗고 본연의 나로 사는 방편으로서 글쓰기가 오늘의 주제입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분이 손을 들었다. 6학년 아이에게 독서록을 쓰게 하는데 아이가 싫어한다며 무슨 방도가 없냐는 것이다. 엄마 모드는 웬만해선 해제되지 않는다. 아니다. 학부모만이 아니라 교사들도 읽기와 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골치라며 묘책을 묻곤 한다. 그럴 땐 되묻는다. 왜 아이들이 꼭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돌아오는 답은 ..
노 키즈 존은 없다 강좌를 열었을 때다. 한 여성이 꼭 읽고 싶었던 책이라며 아기를 데리고 참가할 수 있는지 물었다. 생후 12개월 남아랬다. 두 마음이 다퉜다. 마음 하나. ‘공부하러 나와서까지’ 아이를 보고 싶지 않다. 내게 아이란 존재의 훼방꾼, 공부의 대립물이었다. 책 한 줄 보겠다고 아이의 숙면을 얼마나 애태웠던가. 마음 둘. 아이를 달고서라도 ‘공부하러 나가고픈’ 그 여성의 열망은 불과 얼마 전까지 내 것이기도 했다. 외면하면 반칙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 평생 단 한 번의 기회라는 마음으로 결정했다. 학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사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공부한다. 아기라는 불편한 존재를 배제가 아닌 관계의 방식으로 우리 삶-공부에 들여 보자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아기는 온순했다. 기적..
어른들의 말하기 공부 새봄 새 학기, 급식 메뉴도 맛있고 문화체험 행사도 많아 기대에 들뜬 소년은 선생님의 다급한 부름을 받는다. 엄마의 부고 소식이다. 교통사고로 엄마를 떠나보낸 때가 열다섯.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적당한 나이가 있진 않겠으나 검은 상복이 안 어울리는 연령대는 있다. 그 소년은 스물한살이 되어 그날의 상황과 심정을 글쓰기로 풀어냈고, 어린 상주에게 감정이 이입된 동료들은 숨죽였다. 얼마 전 글쓰기 수업 장면이다. 그가 낭독을 마치자 예의 침묵이 한동안 감돌았다. 합평은 늘 긴장된다. 이런 경우처럼 상실 경험이라면 더하다. 글이 묵직하니 말이 더디 터진다. 적절한 위로와 지적의 말을 찾느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불쑥 삐져나온 자기 기억과 대면하느라 저마다 머릿속이 바쁘기도 한 ..
말하는 누드모델 ‘나는 해부학적으로 그려져 걸릴 것이다/ 훌륭한 박물관에. 부르주아들이 나지막이 탄성을 지르겠지/ 이런 강변의 매춘부 이미지에 대고. 그들은 그걸 예술이라 하지.’ 영국 시인 캐럴 앤 더피의 일부다. 시의 화자는 누드모델. 자신에게서 ‘색을 뽑’고 움직임을 통제하며 권력 감정을 느끼는 화가를 ‘조그마한 남자’(little man)로 부르고, 누드화에 감탄하는 영국 여왕을 ‘웃긴다’고 말한다. 이 시에서 여성은 그려지고 보여지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다. 자신을 보는 화가-관객을 보는 시선의 전도로 인해 역사상 목소리를 가진 적 없는 누드모델이 견자(見者)로 등장한다. 친구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이탈리아에서 미술관엘 갔는데 길게 늘어선 줄이 거의 여성이더란다. 전시실엔 백인 남성 화가 작품들..
[한겨레-삶의창] 내 인생이 그렇게 슬프진 않거든요 아이들이 이백 명 넘게 있더라, 생각해보니 나 학교 다닐 때 우리 반에도 보육원에 사는 애가 없진 않았을 거 같아. 업무차 보육원에 다녀온 친구가 말했다. 그 아이는 반 친구를 집에 데려오지 못하고 남들처럼 부모형제와 사는 듯 지냈을 텐데 싶어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나와 같은 시간대를 통과했을 한 아이를 나도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있는 그대로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의 가슴은 때때로 얼마나 졸아드는가. 예전에 보육원에서 만난 취재원이 떠올랐다. 원생이 성인이 되면 약간의 생활자금을 갖고 시설을 나간다고 말했다. 난 좀 놀랐다. 방 한칸 구하기 어려운 소액으로 가족도 없는데 어떻게 자립을 하느냐며 살짝 분개했던 거 같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자기가 그 경우랬다. 시설에서 살다가 스무 살에 ..
한겨레 - 여름 제사 시적인 게 뭐예요? 시 수업에서 질문이 나왔다. 난 오래된 시집에서 본 설명에 기댔다. “그 시적인 것은 뭐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고, 딱히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어쩌면 선적인 것과 닿아 있는지 모르겠다.”(황지우, , 64쪽) 그리고 예를 들었다. ‘여름 제사’ 같은 게 아닐까요? 저 오늘 여름 제사 지내러 가요. 얼마 전 지인이 지나가듯 하는 말에 몸이 움찔했다. 여름 피서가 아니라 여름 제사. 이 빗나가고 거스르는 말들의 배열이 내겐 너무 시적으로 다가왔다. 삼복더위에 호화로운 휴가 한번 즐기지 못한 엄마는, 자식들 콩국수 만들어 먹이고 아버지 술안주로 부침개 부치느라 가스불 앞을 떠나지 못하고 낑낑대던 엄마는 한여름에 돌아가셨다. 써보지 못한 여권사진이 영정사진이 됐다. 10년 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