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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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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왕따 생존자의 말하기 오래된 농담처럼 ‘왕따’라는 단어를 말하기까지 십수년이 걸렸다. 그녀는 중학생 때 지독한 왕따를 당했다. 3년 내내 혼자 다녔다.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고 들어오면 책상에는 아이들이 남긴 반찬, 그러니까 음식물 쓰레기가 올라와 있었다. 매일 울면서 집에 갔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언니가 담임을 찾아가 말했으나 담임은 조회 시간에 주의 한번 주고 말았다. ‘네 동생 왕따라며?’ 외려 언니가 반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약한 것을 비집고 들어가는 괴롭힘은 죄책감 하나 없이 당연해 보였다. 폭력을 꾸준히 당하자 그녀에게도 폭력 성향이 생겼다. 부모가 뒤를 받쳐줄 수 있다면 걸상을 들어 누구라도 내리찍고 싶었다. 외부로 향하지 못한 공격성은 육체의 말단인 손톱을 향했다. 하도 물어뜯어 검지에서 중지로, 중지에서 ..
상처의 철학 2 - 기억과 증언의 문제 # 사는 능력 아우슈비츠 수수용소에 들어가고 3-6개월이면 어김없이 죽었다. 몇 명은 살았다. 독일어를 몰라서 일찍 죽어간 자들도 많다. 단어 하나 배우기 전에 쓸려나간 것이다. (레비는 ‘침몰당한 자와 구조된 자’라는 책을 썼다.) 수감됐다고 다 희생자가 아니라면, 구조된 자들은 무슨 힘으로 살아남았는가. 동물성과 야수성이다. 이것이 있을 때만 가스실로 끌려가지 않았다.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에 나오는 사례. 알프레드는 늘 깔끔하고 품위유지를 목숨처럼 여겼다. 남들과 다르게 처세함으로써 신분상승을 이뤘고 특수임무를 맡았다. 앙리는 친화력이 좋았다. 상대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는 등 약자의 위치를 전격적으로 취했다. 마치 애완견처럼 굴어 살아남았다. 사는 능력은 윤리와 존엄성 포기했을 때 도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