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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09] 작가를 꿈꾸는 이에게 전하고픈 말

작가를 꿈꾸는 이에게 전하고픈 말

[은유칼럼]

강연을 마치고 나가는데 계단 아래까지 한 아이가 따라 나와 말을 건다. 작가가 꿈이라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은데 부모가 반대한다고, 다른 과를 가도 작가가 될 수 있는지 묻는 눈동자는 초조함으로 일렁였다. 고등학생들을 만나면 꼭 나오는 질문이다. 부모의 반대 이유도 한결같다. 돈 벌기 어렵다는데, 취직이 안 된다는데, 밥 굶는다는데.

어느 밤에 문자가 왔다. ‘쌤, 글로 돈을 벌 수 있을까요.’ 같이 글쓰기를 공부하던 20대 후반 학인이다. 나는 초기에는 최저생계비 마련이 어렵다고 답했다. 직장에 다니는데 하루하루 메말라가는 것 같다고, 일을 그만둘까 하지만 돈 문제 때문에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고, 알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며 그는 대화창을 빠져나갔다.


파블로 네루다 지음
정현종 옮김
민음사 펴냄

스무 살 이전이나 이후에나 진로 고민은 중단 없다. 그 꿈이 글 쓰는 일이라면 더하다. 해법이 없진 않다. 질문에 엉킨 쟁점을 풀어주면 된다. 작가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글로써 세상에 전하고픈 메시지가 무엇인지, 몸에 맞는 장르가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한 달에 꼭 필요한 생활비가 얼마인지. 이를 질문자로 하여금 말하게 하기. 글쓰기 욕망을 정교하게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대개는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


나는 작가라는 말이 여전히 어렵다. 뜻과 범주가 모호하다. 행위인지, 직업인지, 자격인지, 욕망인지, 존재 그 자체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으로 내 꿈을 구체화하고 실천했다. 주변에선 작가로 활동하려면 문창과나 국문과를 늦게라도 가라고 권했지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자격 요건을 갖추기보다 일단 쓸 수 있는 걸 쓸 수 있는 데에 썼다. 블로그에 에세이를 쓰고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 등록해 활동했다. 본 것, 들은 것, 한 것을 쓰다 보니 그게 사실과 경험에 기반한 논픽션이었다. 논픽션 분야는 등단 제도나 절차가 없으니 내가 작가가 됐는지 안 됐는지 가늠할 척도가 없었다. 그게 속편했다. 작가라는 긍지 없이, 작가가 아니라는 결핍도 없이 쓸 수 있었다. 

돈벌이는 별도로 충당했다. 자유기고가를 주업으로 일감이 없을 땐 자서전을 대필하고, 공공기관 백서를 쓰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인터뷰해 납품했다. 이 세상에 나쁜 언어를 유포하는 일이 아니면 닥치는 대로 썼고, 원고료를 받아 책과 커피와 쌀을 사먹고 그렇게 살아남아서 ‘쓰고 싶은 글’을 썼다.

파블로 네루다의 창작 동력은 ‘하고많은 불행’

작가를 꿈꾸는 학생에게 말했다. “쓰고 싶으면 빨리 쓰세요. 작가는 쓰는 사람이지 쓰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문창과 간다고 작가의 길이 보증되고 경영학과 간다고 그 길이 봉쇄되진 않는다. 가장 큰 장벽은 부모의 반대가 아니라 자기 생각의 빈곤이다. 자꾸 몸에 들러붙는 생각, 솟아나는 얘기, 복받치는 불행이 아니라면 무엇을 쓸까. 

“나는 우리나라의 하고많은 불행을 보아왔다. 내가 보는 가난-나는 그걸 외면할 수가 없다(129쪽).”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창작 동력은 ‘하고많은 불행’이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을 지키면서 고통의 목소리를 기록했다. 나는 그들 책에서 큰 자극을 받는다. 하고많은 불행의 언저리를 서성이다 보아버린 것을 쓰고자 노력한다.

작가가 되려면 얼마나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도 곧잘 나온다. 나는 네루다의 이 시를 읽어주고 싶다.

“내가 책을 덮을 때/ 나는 삶을 연다/ 책들은 서가로 보내자,/ 나는 거리로 나가련다./ 나는 삶 자체에서/ 삶을 배웠고,/ 단 한 번의 키스에서 사랑을 배웠으며/ 사람들과 함께 싸우고/ 그들의 말을 내 노래 속에서 말하며/ 그들과 더불어 산 거 말고는/ 누구한테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었다(‘책에 부치는 노래 1’ 중에서, 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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