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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인간- 나는 아직도 '돈 몇푼' 갖고 싸운다

[은유칼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샘이 젤 유명해요.” 4년 만에 만난 지인의 첫인사다. “작가님이 유명해지고 가족들 반응은 어떠냐”라는 질문이 북 토크에서 나온다. 유명하다는 게 뭘까. 유명한 사람은 유명해서 유명해진다는 순환 논리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남편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성정의 소유자로 일희일비를 모른다. 군인 아들은 민가의 사정에 어둡고, 딸아이가 가장 실감할까. 한번은 지나가듯 말했다. “엄마, 엘리베이터에서 택배 아저씨를 만났는데 18층 누르니까 너네 엄마 작가냐고 물어보셨어.” 

그렇다. 일상의 가장 큰 변화는 택배 물량이다. 내가 물욕으로 사들이는 책 외에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증정 도서가 늘었다. 글쓰기 수업을 한 지 어언 10년, 학인들이 낸 책도 속속 답지한다. 우리 집 고양이는 날마다 크기와 질감이 다른 상자에서 안락을 누린다. 쓰레기 배출을 한 주일만 걸러도 택배 상자와 인쇄물로 방 안이 폐지 집하장이 된다. 밟거나 읽거나, 종이를 헤치며 나아가는 삶이다. 

ⓒ시사IN 윤무영

하루 일과는 매양 같다. 눈 뜨면 글 쓴다고 카페 가고 오는 길에 장 봐서 밥 짓고 강의 가고 여기저기 메일 보내고 책을 베개 삼아 잠들고. 이 마감에서 저 마감으로 시곗바늘처럼 단조롭게 운행된다. “인생이라는 근면한 공장에 한번 말려든 사람은 설령 도중에 싫증이 났다고 해도 뒤에서 밀려오는 사람에 떠밀리고 떠밀려 출구까지 빙빙 돌지 않으면 안 된다(301쪽)”는 걸 실감한다. 

집필 노동자로서 고민도 여전하다. 어떻게 잘 쓸 것인가. 노동력의 정당한 대가를 받을 것인가. 원고 청탁이나 강연 의뢰가 이전보다 많이 오는데, 더 맞춤한 일을 고를 수 있는 건 장점이고 일일이 확인과 거절의 메일을 보내야 하는 건 단점이다. 돈은 늘 복병이다. 일반적으로 아무리 단기 알바라도 급여나 월급날을 모르고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는 없다. 프리랜서 작가는 아니다. 상대방이 고료와 지급 날짜를 명시하지 않고 일을 의뢰하기도 한다. 난 요즘도 이런 메일을 쓴다. “원고료(강연료)가 얼마인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일전엔 한 잡지사에서 원고 청탁이 왔다. 고료와 지급 날짜가 단정히 적혀 있었다. 기본 사항인데도 고마워서 뭉클했다. 같은 날 한 팟캐스트에서 출연 섭외가 왔다. 출연료가 안 쓰여 있었다. 메일로 물었더니 답이 왔다. 교통비밖에 안 되는 적은 금액이라 죄송해서 말 못했고 가는 길에 스윽 드리려 했다고. 맥이 풀렸다. 자금 사정이 안 좋아도 스튜디오 대신 길거리 녹음을 하지는 않을 텐데 인건비는 줄인다. 인정으로 갈음한다. 악덕 자본가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시민단체도 영세 업체도 일인 기업도 자연스레 그리 한다. 

<슬픈 인간>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정수윤 옮김, 봄날의책 펴냄

‘두부 장수가 두부를 만들듯’ 

자유기고가로 일할 때부터 최저 원고료를 보장하지 않는 곳과는 가급적 일하지 않았다. “대중 소설가가 그 출판사와 절교를 한다는 건 식량 수송로를 끊어버리는 것과 같다(234쪽)”는데, 비슷한 강도의 결단으로 버텼다. 남들 보기에 유명의 날개를 단 나는 아직도 ‘돈 몇 푼’ 갖고 싸운다. 수십 번 망설이다 그래도 말한다. 안정된 직업, 고정된 급여 없이 오직 글에서 밥을 구하는 노동자를 위해. 

글은 정자세로 앉아 시간을 바치지 않으면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목뒤부터 어깨를 타고 손끝까지 흐르는 저림을 겪으며 문장의 길을 터나가야 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수 없는 직업이지만 그 미련스러움 때문에 내 일이 좋다. 새해를 맞아 순정하게 다짐해본다. “두부 장수가 두부를 만들듯이 성실하게 규칙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써 나가고 싶습니다 (201쪽).”


* 시사인 은유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