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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8.31] 여자들의 저녁식사 (3)

여자들의 저녁식사

[은유칼럼]

모처럼의 불금. 친구 넷이 만나 밥과 술을 먹었다. 밤 9시가 넘자 “엄마 언제 오냐”는 전화가 번갈아 걸려오는 애 있는 여자들이다. 우리는 무더위를 어떻게 났는지 여름 안부를 주고받았다. A는 반바지 일화를 꺼냈다. 하루는 너무 더워 사무실에 반바지를 입고 나갔는데 타부서 선배가 지나가며 한마디 하더란다. “그렇게 짧게 입고 다니면 남편이 싫어하지 않아?” A는 이혼하고 혼자 아이들을 키운다.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이라서 대충 웃고 넘기려다 그냥 말했다고 한다. “저 남편 없는데요?” 

B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절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는 B는 지난주말에도 태백의 절로 떠났다. 옆방에는 60대 중년부부가 묵었고 오며가며 마주쳐 눈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부인이 슬그머니 다가와서 묻더란다. “이렇게 혼자 다니면 남편이 싫어하지 않아요?” B는 남편이 절 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각자 주말을 보낸다고 말했다고 한다. 

익숙한 질문이다. 나는 결혼하고도 가끔 록 공연장을 다녔는데 그때마다 이웃집 언니들은 음악이나 공연에 관심을 갖기보다 남편의 태도에 감탄해 묻곤 했다. “그런 데 다니면 남편이 안 싫어해?” 

말은 웬만해선 사라지지 않는다. 남편의 입장을 내면화한 말들, 결혼한 여자의 ‘행실’을 제약하는 발언이 여전히 아무 때나 아무렇지 않게 통용된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그러자 큰언니 C가 질문하는 여성들을 변호했다. 아마도 그들이 그렇게 살아보지 못해서 그럴 거라고, 자기도 스스로 가둔 여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C는 아내의 삶과 자기의 삶의 절충에 피로감을 느껴 남편과 별거 중이다. 

나 D의 기억. 십오년 전 안동 하회마을에 놀러갔다가 배낭을 메고 조리를 신은 외국인 할머니와 마주쳤다. 계모임 단체관광도 가족여행도 아닌 노년 여성의 나 홀로 여행이라니. 영화에서나 보는 장면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 걱정도 됐다. 이렇게 만리타국까지 혼자 다녀도 정말 괜찮은지, 아마 영어만 능통했으면 다가가서 말 걸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다니면 남편이 싫어하지 않느냐”와 크게 맥락이 다르지 않았을 뜬금없는 질문에 파란 눈의 할머니는 뭐라고 답했을까. 

모든 물음은 질문자의 입장과 욕망을 내포하는 법이다. 나의 물음은 그간 얼마나 진화했는가. '남편'의 시선만 간신히 모면한 듯하다. 자기 욕망을 일인칭 시점에서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여전히 모자라다. 착한 여자는 천당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는 말대로, 일상의 금기는 넘나들지만 몸에 그은 선은 제자리다. 올 여름 ‘그래도 될까’를 되묻고 검열하다가 점잖지 못한 핫팬츠 두 개는 버렸고, 머리는 기장만 짧게 손질했다. 내 인생의 두발자율화가 시행된 지가 언제인데 머리 모양은 중고등학생 때 그대로. 단발에서 어깨까지 길이를 무료하게 오간다. 꼭 한번 빨간머리를 원했지만 어느새 흰머리가 정수리부터 증식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명동성당 첨탑이 보이는 이층 술집에서, 그날 우리는 늙기 전에 오프숄더 드레스 입고 송년 파티를 열어볼까 호기롭게 떠들었다. 술단지가 비는 동안 ‘남들이 뭐라든 입는’ 장단지가 드러나는 반바지에서 ‘우리가 입어보고 싶은’ 어깨가 내보이는 드레스로 논의가 진척됐다. 이게 어딘가. 자못 대견하다. 저무는 여름밤, 여자들은 매미처럼 시끌벅적 ‘생의 언어’를 배양했다. “욕망의 성기이며 육체의 현실인 말”(오규원)을.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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