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8.22] 미안한 충고 (4)
  2. [2010.01.09] 어떤 재회 (6)
  3. [2009.12.02] 사람이 변한다는 것 (2)

미안한 충고

[차오르는말들]

우연이다. 어느 단체의 기념행사에 갔다가 아는 선배랑 상봉했다. 거의 4년 만에 보는 얼굴. 반가웠다. 내가 다음 행선지가 있어서 헐거운 악수만 나누고 헤어졌다. 다음 날인가 전화로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떨었다. 선배가 물었다. ‘나 많이 늙었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꼭 저렇게 물어본다. 식상한 대사가 웃겨서 ‘응’ 그랬다. 그리고 며칠 전에 인터뷰를 갔다가 다시 우연히, 마주쳤다. 깜짝 놀랐다. 두 번의 우연을 기념하여 일을 마치고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더라. 재물운이 넘쳐 자랑거리가 많은 사모님 동창의 재회라면 모를까, 없는 자들의 사는 얘기는 사는 게 힘든 얘기로 흐르기 마련이다. 또 삶의 골치 아픈 문제는 대부분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냥 관계가 아니라 끊을 수 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관계. 가족이라는 강력한 굴레와 불편한 지인까지, 하나같이 대상도 폭넓고 사연도 복잡하다. 선배도 그랬다. 가족은 영구책임의 대상이고, 여기저기서 밀려드는 청탁과 들이미는 얼굴, 수행해야할 일은 일과를 엉키게 만든다.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다가 정작 본인이 상처를 받고 자신의 상처를 감염시킨다. 한마디로 애증의 인연의 연쇄를 끊어내지 못했다. 

사실 “가족 탈출”에 관한 고민은 나도 남부럽지 않게 해본 거 같다. 그런데 부부관계는 몰라도 혈육관계는 해체와 재구성으로 결판내기가 불가능한 질곡이다. 봉합하고 인내하면서 '오늘도 무사히'를 바라다 보면 어느 순간 '숨 쉴 만한' 국면에 가있기도 한다. 이런 나의 경험이 경청을 방해한다. 그냥 말하고 싶어진다. ‘별 방법이 없어. 안고 가야지.’  하지만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상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아는 대로 살지 못해 힘든 게 인생이니까. 
(인터뷰할 때처럼 조용히 그리고 성실히 고민을 가슴에 받아적을 것)


누군가 고민을 터놓았을 때 “있잖아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는 이렇고 쟤는 저렇고 당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많아. 그래도 다 참고 살잖아”라고 상대의 처지를 ‘고통-일반’으로 동일화시켜버리는 태도가 가장 나쁜 것 같다. 듣는 사람 무안하다. 은근히 폭력적인 논리가 깔렸다. 정해진대로 살아야한다는데 어떤 말을 더 하겠는가. 그러니 경험치가 많다고 다 지혜로워지지 않는다. 꼰대가 되기도 그만큼 쉽다. 거두절미하고 ‘해봐서 안다’는 믿음은 어리석은 삶의 함정이다. 순간순간 얼마나 많은 우연이 개입하는가. 가장 윤리적인 태도는 바보처럼 들어주기. 힘들었겠다며 다독다독 인정해주기. 아이 키우는 육아서에 단골로 나오는 지침인데, 인연을 키우는 어른도 가슴에 새겨야할 말 같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에게 뭐라고 떠들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큰 맥락에서 릴케의 충고를 인용했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들다면, 성급하게 답을 찾으려 하지 말라는 것. 지금까지 답을 갖고 살아보지 않았으므로 아무리 해도 그 해답이 주어지지는 않는 다는 것. 문제속에서 살아감으로써만 아주 나중에 답속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잘 알려진 얘기였다. 아무리 좋은 말도 내 것이 되기 전엔 식상하고 진부하거늘. 지나고 나니, 황지우 말대로 오늘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은 왜 인가. 허허롭다. 그동안 타인의 절망을 듣고 거기에 자신을 개방하는 것에 나는 얼마만큼 성실했는가. 그 생각을 하면 우주가 온통 미안해진다.

위클리 수유너머에서 친구가 번역하는 <다가오는 봉기>를 읽다가  가족과 자유에 대한 좋은 글귀를 발견했다. 릴케의 말과 내용적으로 유사하다. 둘다 일단 살아볼 것을 촉구하는데 이 글이 더 팔딱인다. 삶에 대한 권력의지를 북돋운다.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구체적이다. 아, 책은 얼마나 위대한가. 책이 내게 그러하듯, 나도 책처럼 친구에게 '밑줄 긋고 싶은' 삶의 조언을 조곤조곤 들려주고 싶다.

자유란 얽매임에서 풀려난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얽매임에 대해 행동하고, 움직이고, 그것을 세우거나 끊어버릴 수 있는 실천적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은,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을 바꾸기를 포기했거나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에게만, 가족으로 그러니까 하나의 지옥으로 존재하게된다. 그냥 포기하고 떠나버릴 자유, 항상 그것이 자유에 대한 환영이었다. 그러나 우리를 구속하는 것을 그냥 치워버리는 것은 우리 힘이 행할 수도 있었을 일을 잃어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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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우연, 인연

어떤 재회

[차오르는말들]

서울에 60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이틀만에 집밖을 나가 단지내 하얀 눈밭을 보노라니 가장 먼저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사랑 태지도, 못잊은 그놈도 아니다. 예전에 계시던 경비아저씨다. 지나치게 정직한 연상작용에 나 자신도 당황했지만,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낭만으로 바라보기엔 눈이 산사태 수준이고 도로가 빙판길이라 걱정이 앞섰다. '아저씨가 계셨다면 우리 동네 앞에 눈도 더 많이 치워주셔서 주민들 다니기가 한결 수월했을 텐데...'싶어 아저씨를 그리워했다.



며칠간 눈이 치워진 오솔길로 다니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오늘 처음 주차장엘 갔다. 방학을 맞아 온종일 방과 부엌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는 냉장고보이 냉장고걸 덕분에 식량이 바닥나버렸다. 대대적으로 장을 보고자 근 5일간 방치된 차를 찾았다. 우리차는 백설기보다 훨씬 두꺼운 높이의 눈으로 새하얗게 덮여있었다. 트렁크에서 밀대를 꺼내 눈덩이를 부셔뜨렸다. 눈은 다행히 백설기처럼 부드럽게 잘려나갔다. 그런데 발 아래 눈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이수일과 심순애 연극의 한 장면처럼 눈구덩이가 내 발목을 꽉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한번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무게값도 못하고 휘청거리면서 눈을 치우는데 저쪽에서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모님, 잘 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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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변한다는 것

[차오르는말들]

저번에 선생님 만났을 때 선생님이 쓴 소설 세 편을 전달받았다. 집에 와서 꼼꼼히 읽어보고는 감상문을 써서 메일로 보냈다. 객관적 독자의 입장이 되기는 애초에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비평전문가도 아니지만, 글과 선생님을 사랑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보고 느낀 그대로를 말씀드렸다. 이런 내용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정갈한 문장과 섬세한 묘사는 질투심을 유발했습니다. 여기에 깊은 성찰 끝에 삶 속에 터진 명문장이 있었으면 글의 품격이 더 살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A작품은 구심력이 뛰어나 잘 읽히는데 주제의식이 미약합니다. B작품은 20년 전이 아닌 지금 나온 이유가 설득력이 없는데다가 남주인공 캐릭터가 밋밋해서 러브스토리에 긴장이 안 생깁니다. C작품은 가장 완성도가 높습니다. 가슴 먹먹하면서도 덤덤히 읽히는 게 미덕입니다. 그런데 싸우는 장면에서 살짝 정신줄을 놓아서 심정의 막힘을 뚫어주었다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글이 전반적으로 좀 더 밀고 나가는 힘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선비적 품성 때문에 그게 불가능하실 것도 같은데, 단편 말고 긴 호흡으로 장편을 쓰시면 외려 선생님의 올곧은 품성과 관조적 세계관이 장점이 되지 않을까요. 등등. 
 

나의 과도한 정직함으로 인해 18년 만의 상봉이 '짧은 우연'으로 끝날까봐 살짝 걱정하면서 보냈는데 ^^; 다행히 선생님은 깊이 있는 분석과 평가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간 쓰신 단편 몇 꼭지를 더 봐달라고 부탁하셨다. 또 어줍잖은 올곧음과 오랜 교사의 습성이 폭넓고 깊이 있는 소설을 쓰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 한계를 깨는 노력이 쉽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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