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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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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항상 함께한다는 느낌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엠티에 ‘시간이 되면’ 같이 가자는 문자가 ‘콩(공유정옥 활동가)’에게 왔다.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1023일 농성을 마친 기념으로 농성장을 지켰던 이들이랑 강릉 바닷가에서 2박3일 편안하게 쉬다 올 예정이란다. ‘시간이 되나’ 머리를 굴려본다. 시간과 돈을 거래하는 시대. 시간이 화폐다.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돈으로 보상되는 일 위주로 시간을 살뜰히 썼구나 싶다. 그건 잘 살았다기보다 초조하게 살았다는 느낌에 가깝다. 이건 다르다. 사적 여행도 아니고 공적 활동도 아니다. 작가 초청 강연 말고 그냥 같이 놀자니까 좋아서 짐을 쌌다.“아유, 바쁠 텐데 어떻게 시간이 됐어?” 삼성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가 활짝 웃..
이렇게 말해도 될까 '불행에 몰두하세요' “그럼,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어느 날 이메일 말미에 붙어 있는 저 인사말에 눈길이 머물렀다.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구문인데 그날따라 아리송했다. 왜 행복해야 되지? 꼭 행복해야 하는 건가? ‘행복해라’는 말은 ‘부자 돼라’는 말보다 덜 속되고 선해 보이지만 도달 확률이 낮다는 점에선 더 잔인한 당부이기도 했다. 아무리 용쓰고 살아도 불행이 속수무책 벌어지는 현실에서 어떻게 행복하라는 건지 의심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안 행복하니까 심통이 나서 삐딱해졌으며 ‘덕담’을 ‘다큐’로 받아들이는 불만분자가 됐는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검열했다. 은 그즈음 눈에 들어왔다. 나의 책에도 인용했는데, ‘시는 행복 없이 사는 훈련’이란 명제를 발견하고 (행복은 단념하고) 행복 없이 사는 훈련에 임하면서 조석으로 시를..
글쓰기 강좌에 여성이 몰리는 이유 25명 중 3명이 남자다.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강좌의 성비다. 여대남소의 성비는 수년째 무너지지 않고 있다. 일회성 강연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거의 여탕 수준이다. 지난번 개강 때 넌지시 물었다. “이번에도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남자들은 다 어디 간 거죠?” 이에 60대 여성 한 분이 말하기를, 여기만이 아니라 어느 강좌를 가도 그렇단다. “수강생은 다 여자인데 강사는 또 거의 남자예요.”영국도 상황이 비슷한가. 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총장으로 있는 런던 예술대학교에서는 시각예술을 공부하는 1만8000명의 학생 중 70%가 여성이다.” 저자는 이유를 분석한다. “남자아이들은 가정의 부양자로 길러질 뿐 아니라, 의사소통에도 서툴고 자신의 감정에 무관심하도록 조건화되기 때문에, 예술은 자신들에..
은유 읽다 - 나의 두 사람 출산을 앞둔 후배에게 선물을 하려고 신생아 용품 매장에 갔다. 손바닥만 한 턱받이부터 팔뚝만 한 배내옷까지 크기가 앙증맞고, 순백색부터 복숭아 색까지 색감마저 보드라워 넋을 잃고 만지작거리는데 저만치에서 통화를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나 혼자 가란 말이야? 평생 한 번인데 하루도 못 빼? (…) 오빠 회사 사람만 그렇겠지. 내 주변엔 교육 안 듣는 사람 없어.” 만삭의 임신부였다. 아마도 예비 부모 출산교육 프로그램에 남편과 함께 가려는 계획이 어그러진 모양이다. “에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감각이 달라서 남편이 남처럼 느껴졌던 기억이 먹구름처럼 몰려왔다. 무언가에 깊이 절망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누군가를 많이 사랑해서 결혼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