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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20] 여자인간의 결혼식 - 신해욱 여자인간 (5)
  2. [2012.03.20] 신해욱,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2)

여자인간의 결혼식 - 신해욱 여자인간

[차오르는말들]

동거 7년, 결별 2년, 재회 6개월 만에 식을 올리는 후배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버스 두 번, 택시 한번, 도보 10분으로 그 먼 나라의 땅을 밟았다. 토요일 오후 차들이 즐비한 복잡한 도로를 이런저런 교통수단으로 통과하자니 그녀가 지나온 길을 되짚는 듯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막판에는 뚫렸다. 야트막한 언덕 안쪽에 그림 같은 성당이 숨어있다. 신부대기실 문을 열었다. 머리에 분홍색 화관을 쓴 후배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사진 촬영에 여념 없다. “안경 안 썼네?”

 

그녀는 비혼주의자였다.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식의 절차를 밟는다. 제발 식만 올려다오. 부모의 애원이 통할 만큼 그녀는 외로웠다. ‘이러다가 파리에서 송장되겠다’며 유학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결혼식 준비 과정이 요란했다. 한국 사회 보수적인 혼례 풍토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평소처럼 안경을 쓰고 웨딩드레스를 입겠다고 했다가 엄마랑 크게 싸웠다고 했다. 이십년 동안 벗어 본적 없는 안경. ‘일생의 단 한번’인 그 날은 벗어야한다고 주위에서도 하나같이 만류했단다. 신랑은 안경을 써도 되고 신부는 왜 안 되느냐는 말이 통할 리 없다. 요즘은 신랑도 두텁게 분을 바르고 콘택트렌즈를 착용한다. 그녀는 고집스럽게 인터넷 검색창에 ‘웨딩드레스에 어울리는 안경테’ 라고 검색어를 넣어보았다는 둥 저항하는 듯했으나 실패로 끝난 모양이다. 안경 대신 웃음을 걸치고 말한다. “생각보다 결혼식 재밌어요.”

 

장차의 남편하고는 간단한 계약서를 썼다고 했다. 상호 자유연애 가능. 단 배우자에게 알릴 것. 단서조항을 달았다고. 나는 그게 가능할까? 라는 회의나, 에구 뭐하는 거니! 라는 질책보다 질투가 일었다. 형식상이라도 그런 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유연한 관계가 부러웠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와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 보부아르는 계약결혼을 했지만 정상결혼의 전형적인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고 전한다. 사르트르는 쉼 없이 바람을 피웠고 보부아르도 맞바람으로 응했으며 그들 사이에 ‘사랑과 전쟁’이 대단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말이지 ‘이 죽일 놈의 통속’이다. 탄탄한 철학적 이론과 사유로 무장한 이들도 불가능했던 성애 관계 실험의 계보를 그녀가 농담처럼 잇는다.


 

“지구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간/ 다른 종/ 다른 류의 인간을 하나씩 세어보기도 한다.// 손가락이 남기도 한다.// 손가락이 모자라기도 한다.” (신해욱 ‘여자인간’ 중)

 

그 다음은 신혼여행. 서울 근교에 당일치기로 나들이나 다녀올 예정이라고 했다. 오랜 타지 생활에 지쳤겠다, 집이 좋은가보다 했다. 아니 또 어쩌면 그녀는 여느 신혼부부처럼 훌쩍 떠나 며칠 묵고 올지도 모르겠다. 안 한다고 고개 젓고 발끈해서 싸우다가 결국 하나하나 다 실행하고 있다. 신부화장 하고 면사포 쓰고 결혼식 올리고 웨딩사진 찍는다. 결과적으로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혼이지만 그래도 내겐 오랜만에 접하는 흥미로운 결혼 뉴스였다. 일생 중대사를 의심 없이 행하는 것과,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자기에게 맞는지 아닌지 대보고 뒤집어 보고 다른 길을 시도하다가 제도에 포획되는 건 엄연히 다르다. 밀고 당기고, 버티다가 포기할지라도 적어도 속수무책 당하지 않겠다는 정신. 그 거리두기와 왕복운동 속에서 삶의 주름은 깊어질 테니 말이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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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올드걸의시집]

일 년에 0.5kg씩 꾸준히 자연증가세를 보이는 몸무게에 비례해 못 입는 옷의 중량도 늘었다. 옷이냐 살이냐. 둘 중 하나는 버려야 한다옷은 쉽고 살은 어렵다. 결단에 순간에는 아무래도 만만한 쪽을 택하게 된다. 체형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한 의류정리를 단행했다. 수년간 서랍에서 잠자던 옷가지를 추렸다. 빛바랜 옷들이 무지개떡처럼 층층이 쌓였다. 그것들을 보노라니 잠시 추억이 회오리쳤다. 처음 사서 쇼핑백에 담아올 때는 금지옥엽, 입을 때는 김칫국물 묻을 까봐 조심조심, 보관할 때는 드라이클리닝 비닐에 고이간직. 그래봤자 버릴 때는 다 똑같다. 각각의 고유성과 개별성은 사라지고 일괄폐기 처분한다. 연심의 변심. 그 요란한 과정을 묵묵히 당해야 하는 옷의 입장에서는 황당할 지도 모르겠다. 멋쩍고 미안해도 안녕은 안녕. 아파트 앞 대형 우체통처럼 생긴 의류함 입구에 옷을 투입하니 우르르 퉁퉁 떨어진다. 짧은 울음 같기도 하다. 투명한 생물성의 울림. 인연이 멸하는 소리. 

일요일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비통한 어조.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한다. 부부보다 더 오래 살 것 같은 짝이었다. 이혼보다 더 충격으로 다가온 소식을 들은 나의 첫 마디. 너 밥은 먹니? 못 먹어서 살이 6kg이나 빠졌단다. 역시 체중감량에는 마음고생만한 게 없다. 사람이 나간 자리만큼 몸도 비워진다. 왜 헤어졌는지 이유를 들었다. 몇 가지 사건과 신상의 변화를 언급한다. 남자의 이기심에 질렸다, 생일인데 문자도 안 온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원망과 회한의 말들을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시점과 시제의 이탈, 논리의 비약이 더해진 이야기. 조금 헷갈렸다. 원래 이별한 사람은 문법에 맞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김수영) 나타나는 왜곡과 혼란과 과잉의 정서가 바로 슬픔의 실체다. 내가 아는 그 남자친구는 진중하다. 나로서도 지금 상황이 믿기지도 이해되지도 않았지만 일단 그 애가 남겨진 것은 사실이므로, 남자들이란 자기밖에 모른다, 정말 너무하다고 맞장구쳤다.

 

나는 뺄셈에 약하다

남는 것들

사라지는 것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 <따로 또 같이> 부분

 

만남의 불가피성이 있다면 헤어짐의 불가피성도 있다.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살뜰한 7년 세월이다. 체형에 맞게 늘어난 청바지처럼 서로에게 잘 맞춰진 사이였다. 어제까지 입던 옷이 오늘 불편해진다는 것은, 청바지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물은 유전한다. 헤라클라이토스의 말을 살짝 바꾸면 같은 청바지에 두 번 발 담글 수 없다.” 한 시절 편안하고 맵시 있게 입었더라도 옷은 낡고 체형은 늘고. 그리하여 어느 날 몸에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때가 온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몸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의 시점이 온다. 연심의 변심 혹은 절심은 언제나 비약으로 다가오는 사건이지만 생물성이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이치이기도 하다. 나도 그랬다. 어디든 데려다주는 날개이자 비바람을 막아주던 존재가 불편하고 갑갑해지는 순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엄마가 그랬고 연인이 그랬고 친구가 그랬고 동료가 그랬다. 어떤 음악이, 어떤 책들이 그랬다. 세월이 그렇게 했다. 생의 시기마다 필요한 옷이 있고 어울리는 색과 취향이 있듯이 삶의 체형에 맞게 인연도 변해간다. 식물도감 동물도감 속 개체들처럼 사람 역시 멋진 자기유지를 위해 색을 바꾼다. 인연의 옷 갈아입는다. 이 끝나지 않는, 인간이 되어가는 슬픔. 그저, 막 입고 막 버리지는 말자 생각한다
 

누군가의 꿈속에서 나는 매일 죽는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있는
얼음의 공포 

물고기 알처럼 섬세하게
움직이는 이야기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하지 못한다 

몇 번씩 얼굴을 바꾸며
내가 속한 시간과
나를 벗어난 시간을
생각한다

누군가의 꿈을 대신 꾸며
누군가의 웃음을
대신 웃으며  

나는 낯선 공기이거나
때로는 실물에 대한 기억 

나는 피를 흘리고

나는 인간이 되어가는 슬픔

 

-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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