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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27] 너울 - 읽고 쓰고 말하며 거듭난 주체, 나는 행복해도 된다

너울 - 읽고 쓰고 말하며 거듭난 주체, 나는 행복해도 된다

[행복한인터뷰]

 

이곳은 소수언어박물관이다. 사멸해가는 소수언어의 마지막 화자들이 전시되어 있다. 자신이 살던 공동체에서 분리되어 박물관에 사는 한 노인은, 모어를 마음껏 쓸 수 있는 고향을 그리워한다. 말에 대한 지독한 향수병에 빠진 채 차가운 전시관에서 삶 비슷한 것을 살다가 죽음을 맞는다. 그러자 그가 쓰던 소수언어도 사라진다. 말의 통제, 삶의 단절 그리고 작은 말들의 사라짐. 어쩐지 괴이하고 쓸쓸하다. 삶의 질료인 언어가, 관계와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통제와 관리의 도구가 된 이 시대를 김애란은 소설 <침묵의 미래>로 그려낸다.

 

너울은 침묵의 미래에서 걸어 나온 사람이다. 사라지는 언어 최후의 화자가 그러하듯, 말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였다. 인터뷰를 위해 취재 의뢰 메일을 보냈을 때 그는 카페에서 쓴 시를 한 바닥 적어 보냈다. 얼굴을 마주했을 때는 음계의 말들이 공중에 퍼지다가 낙엽처럼 쌓였다. 오래 침묵했고 이제 막 말이 트였다. 집필을 하고 강연을 간다. 사라지려는 말의 불씨를 현장에서 조곤조곤 지피고 있다. 그 말들을 모아 책으로도 엮었다. 제목은 <꽃을 던지고 싶다>, 부제는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전 너울은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러 지방에 갔다. 실무자와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소개를 받고 강단에 올랐다. 성폭력 생존자의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는 커다란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집에 오니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강의 시작 전 그렇게 환한 웃음을 짓고 있어서 강사인 줄 몰랐으며 자기도 성폭력 피해자인데 용기를 얻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마 메일을 보낸 그이도 웃는 순간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몰랐을 거라고 너울은 말한다. 성폭력을 경험하면 행복에 어색하고 불행에 익숙하다고.

 

매일 힘든 건 아니에요. 때때로 힘들죠. 근데 즐거우면 불안해요. 행복을 빼앗길 거 같고 행복하면 안 될 거 같고. 슬픔 중독자처럼, 나는 불행해야 한다 이런 강박에 빠져서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거 같아요.”

 

아홉 살 때다. 엄마가 운영하던 자동차공업사에 딸린 식당을 찾은 손님이 첫 번째 가해자였다. 순둥이였던 아이는 어른이 시키는 대로 따라갔고 피해 사실을 직관적으로 함구했다. 일주일 내내 굶을 만큼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아빠는 엄마를 매일같이 무지막지하게 때렸다. 온통 멍울진 엄마에게 아이가 기댈 품이 보이지 않았다. 홀로 작게 움츠러들던 아이는 계속 표적이 되었다. 열두 살에는 할머니 댁에서 삼촌에게, 다음 해에는 등굣길에 낯선 남자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작은 몸뚱이에는 내지르지 못한 비명이, 발설하지 못한 말들이 고름처럼 퍼져갔다. , 할머니댁, 학교 어디에도 아이가 몸 둘 곳이 없었다.

 

피난처가 필요했다. 전쟁터 같은 집은 들어가기 싫었고 또래는 유치해보였다. 친구랑 친해지면 비밀을 공유해야 하는데 그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안전해 보이는 공간이 학교 도서관이었다. 아침에 교문이 열리기도 전에 학교에 도착해서 닥치는 대로 읽었다. 철학책, 위인전, 소설. 그런데 아무리 책을 읽어도 강간당하고도 훌륭한 삶을 살았다는 여성의 이야기는 없었다. 그 어떤 책도 왜 연거푸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세상이 말을 해주지 않자, 아이도 세상을 향한 입을 다물었다.

 

200712, 너울은 꿈을 꾸었다. 한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는 꿈이다. 살려달라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당장이라도 숨통이 끊어질 것만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악몽 후 며칠간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나서야 꿈속에서 그 남자가 입고 있던 옷차림이 선명히 떠올랐다. 황토색 웃옷과 청바지는, 열세 살 때 강간했던 그 남자의 옷이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청바지를 안 입어요. 그냥 불편하다고만 느꼈어요. 청바지를 입으면 목을 조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계단을 못 가고 지하철을 못 탄다거나 했죠.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공포는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제 몸은 다 기억을 하고 있었던 거죠.”

 

25년 전 사건은 25년 간 일상을, 전면적으로 그리고 속속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남들처럼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들어갔으나 열심히는 살면서도 종종 우울하고 문득 죽음충동에 시달렸다. 가난은 천형 같았다. 생계를 해결하느라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자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밥벌이에 아등바등하지 않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여유롭고 평온한 시기를 보내던 즈음, 느닷없이 악몽이 덮친 것이다.

 

읽기, 자기고통을 해석하다

 

꿈을 꾸고 난 후, 여성단체 상담소를 찾아갔다. 상담과 독서를 병행했다. 상담 선생님이 외국 성폭력 생존자의 수기를 소개해주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답 없음의 결론을 내리고 등 돌린 책과의 해후이다. 너울은 책에 다시 빠져들었다. 원인도 모르면서 결과는 나의 책임이라며 괴로워했던 시간들, 천 번도 넘게 물었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빼곡했다. 이것은 그토록 찾았던 피해자의 언어가 아닌가.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수잔 브라이슨)는 철학교수가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과 치유 과정을 기반으로 자아와 외상,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여성주의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다. 난마처럼 얽힌 고통의 서사가 가지런히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불편한 진실-강간피해 생존경험 드러내기>(테레사 라우러)은 미국의 한 여성이 강간을 당하고 상담을 받는 지난한 과정을 기록하고 나중에 상담사가 되는 과정이 담겼다. 이 책은 상담을 받는다고 좋아지지 않는 자신을 자책하거나 포기하지 않게 해주었다. <나는 인생을 믿는다>(사미라 벨릴)는 프랑스에서 청소년기에 강간을 당한 여성이 잘못된 통념으로 발생하는 2차 폭력의 고통을 상세히 묘사했다. 사회적으로 성숙함의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아이가 혼란 속에서 어떻게 성폭력을 견뎌내는가를 배웠다. <트라우마>(주디스 하먼)는 가정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폭력의 동일한 메커니즘과 인간의 심연을 밝혀낸 책이다.

 

자기의 고통을 여성주의와 접목해서 해석한 책들이 힘이 됐어요. 세상에 나만 이런 경험을 하는 게 아니구나, 내가 왜 고통스러운지, 내가 왜 말을 할 수 없는지 알았죠. 저는 언어화하지 못했는데 그들은 다 언어화하잖아요. 그동안 못 먹고 못 자고 아프면 짜증나고 저를 미워했거든요. <트라우마>를 읽고는 나를 아픈 대로, 부족한 대로 인정하게 됐어요. 스스로 이해하는 계기가 됐죠.”

 

고통도 해석이다. 철학자 니체의 말대로 우리는 고통이 아니라 해석된 고통을 앓는다. ‘성폭력 당했으니 여자 인생 끝이다’ ‘여자가 유혹해서 성폭력이 생겼다같은 말들만 해도 버젓이 가해자를 숨기고 피해자를 내친다. 본디 주류언어는 강자의 좋음에서 비롯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니체는 첫 번째 판단을 버려라. 그것은 시대가 네 몸을 통해 판단한 것이다라고도 했다.

 

너울은 피해자의 언어로 된 책을 읽으며 자기언어를 구했다. 상담을 시작하고부터 일 년 동안 읽은 책이 100여권. 갈급했다. 책의 내용에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을 연결지어보면서 서서히 자기미움에서 풀려나고 존재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오염된 말들은 저절로 폐기되었다. 페미니즘을 접하고는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상담 선생님의 권유로 성폭력 상담원 교육도 받았다. 더 이상 죄인처럼 웅크리고 살지 않기로 했다.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상담원으로 4년간 일했다. 내담자들은 10대나 20대나 너나없이 눈물지었다. 나는 살아갈 가치가 없어, 나만 이런 일을 경험해, 라고 말했다. 해석된 고통을 앓고 있는 것이다. 흠칫했다. , 이 사람들이 나랑 같은 생각을 하네. 시대가 이렇게 바뀌었는데 저들도 나처럼 힘들어하는구나.

 

너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졌다. 외국 생존자 수기를 읽었을 때의 아쉬움도 더해졌다. 한국에는 왜 생존자의 증언을 기록한 책이 없을까. 우리 피해자들은 왜 말을 안 할까. 그렇다고 특별한 정의감의 발로는 아니고 때가 되었다는 자각, 어떤 우주적인 기운에 끌렸다. 2012년 봄부터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성폭력 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연재를 시작했다. 첫 이야기는, 인생 2막의 전환점이 되어준 2007년 꿈 이야기로 전개된다.

 

 

쓰기, 부단히 나로 돌아오는 일

 

모든 말하기는 협상적 말하기다. 약자는 이해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수위를 고려해서 말한다. 경험을 어디까지 털어놓을까. 과연 써도 되는가. 그러나 말할 수 없음의 자리에서 증언이 시작된다고 했던가. 사흘을 울고, 열흘을 앓아눕고, 한 달을 눈물로 지새우면서도 쓰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너울의 성폭력 피해는 성인이 돼서도 계속됐다. 대학생 때 아이들을 가르치던 학원 원장에게,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 고용주에게도 당했다. 가까스로 지탱해온 삶을 한 번씩 더 추락시키는 운명의 야멸참에 몸서리칠 때 어떤 스님이 다가왔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남자 때문에 힘들겠다고, 자기에게 몸 보시를 하면 전생의 업을 씻을 수 있을 거라고. 귀가 번쩍 뜨였다. 전생? 그 말은 이제껏 해명되지 않던 삶의 질곡, 비극의 연쇄, 반복강박과도 같은 자기처벌의 상황들을 설명해주었다. 과거를 구제해줄 계시처럼 들렸다. 그렇게 승복을 입은 남성에게도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사건이 많을까. 다른 여성에게 물어봤어요. 남자들한테 성적인 제안을 받느냐고. 그런 일이 있으면 미친놈이러고 만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자존감이 성장해야 해요. 자기부정 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몸을 지켜요. 성폭력은 어떤 여자가 예뻐서, 짧은 치마를 입어서가 아니라 힘이나 권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여성을 고르는 거거든요. 제가 취약해 보인 거죠.”

 

그때는 몰랐다. 성폭력으로 망가진 어린 시절. 자아의 기초가 허물어져버린 신체. 열두 살부터 죽음에 대한 시를 썼다. 성장기 내내 치욕과 불안에 시달렸다. 나는 무가치하다는 느낌이 도사리고 있는 상태에서 어른이 됐다. 살고자 택하는 일들이 자꾸만 죽음을 재촉했다. “어른이 돼서 겪은 사건은 내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고 어떤 상황은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기에 그걸 글로 옮기기가 부끄러웠다. 하지마 그러한 상황을 내가 원하거나 즐긴 건 아니므로, 폭력의 경험인 건 맞다고 본다.”

 

스님의 성폭력 사건 이후, 운명의 공범이 되기로 했다. 생의 불능 상태라고 판단했다. 고시원 쪽방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지인이 발견해 살아났다. 성을 팔기로 했다. 자살도 실패한다면 성판매 여성이 되는 것이 나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삶의 가능성을 알지 못했다. 어릴 때 읽은 소설 <헬로우 미미>, <은마는 오지 않는다> 같은 책들에서 체득한 성폭력 피해여성의 삶이 전부 그랬다. 죽거나 미치거나 창녀가 되거나.

 

글 쓰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이다. 성산업에 띄엄띄엄 6개월 정도 종사한 경험이 자칫 성판매 여성을 대표하는 말처럼 될까봐 부담스러웠다. 성폭력 피해자는 다 불행하다거나 성판매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받아들일까봐 우려했다. 또 그동안 여성운동의 성과, 성폭력은 (여자 인생 끝장이 아니라) 사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관점을 무너뜨리면 어쩌나, 자신의 경험으로 인해 사회적 편견이 더 공고해질까봐 주저했다. 그래도 썼다. 내가 겪어낸 일들이니까.

 

30회 연재를 마쳤다. 글쓰기는 를 회피하지 않고 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촘촘히 쓸수록 까맣게 죽어버린 과거에 피가 돌았고 겹겹이 존재감이 형성됐다. 다행히 내용이 힘들지 쓰는 일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어떤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뽕 맞은 것처럼일필휘지로 써내려가곤 했다. 쓰기의 쾌감과 직시의 고통을 넘나들며 일다에 연재한 글들은 20139월에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을 거부한다는 뜻의 제목 꽃을 던지고 싶다’. 성폭력 피해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기억의 복구 작업을 마치고 세상에 내놓은 너울은, 자신 있게 말한다. 피해자에게는 경험을 잊는 대신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사건이 없어지지 않는 한 잊히지는 않아요. 과거를 부정할 때는 뿌리 없는 사람 같았어요. 과거가 없다는 게 끔찍한 게 뭐냐면, 저는 그 시기에 함께 했던 사람이 없어요. 서른 살 이전에 만난 사람은 지금 아무도 안 만나요. 한 해가 지나면 전화번호를 다 지웠어요. 학년이 바뀌면 아무리 친해도 안 만났어요. 친구를 보면 그 기억이 다시 났으니까요. 힘들어도 과거를 드러냈더니 제가 역사를 가진 사람이 되더라고요. 과거의 고통으로 만들어진 현재의 나를 인정하게 되고 내일을 꿈꾸는 힘이 생겨요. 누군가 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싶어 할 때 나는 이런 경험이 있어, 라고 말하는 제 자신을 볼 때마다 많이 좋아졌다고 느끼죠.”

 

 

말하기, 드러나야 줄어든다

 

너울은 얼마 전 충북대에서 꽃다운 성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학생 400명이 대강의실에 가득 모였다. 누가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될 수 있는가. 한국의 성문화 하에서는 누구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자신이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맺고 있는 관계들을 살펴봐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 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가해자의 80%가 아는 사람이고, 친족에 의한 성폭력은 12%에 달한다고 한다.

 

축제기간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학생들은 시종 진지한 태도로 몰입했다. 그 총총한 눈빛이 큰 에너지를 전해주었다. 내 삶과 내 경험이 누구한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내 경험이 가치 없는 게 아니구나. “성폭력 경험이 가치 있는 경험은 아니지만, 나의 삶이, 그 경험을 견디면서 살아낸 내 삶이 가치 있다는 것을 인정받는 느낌에 너울은 마음이 환해졌다. 이는 보람이고 긍지이자 의무이다. 또 다른 생존자에게 강연의 기회가 이어지도록 활동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너울은 어디든 부르면 가고 가면 열심히 한다.

저자로 데뷔한 이후 글쓰기 작업도 꾸준하다. <여성신문>에 매주 너울의 치유의 레시피라는 칼럼을 쓰고 있다. 생존자의 이야기를 쓰되, 생존자를 드러내지 않고 고통을 드러내기. 어떤 생존자는 어떤 고통을 겪는지 들려준다. 매번 성폭력 얘기만 담으려니 부대껴 요리를 곁들인다. 가령, 일전에 집을 나와 사는 친족성폭력 생존자에게는 식당 밥이 아닌 집 밥을 먹이고 몸보신도 시킬 겸 닭백숙을 해주었다. 요리는 너울의 주특기다. ‘꽃을 던지고 싶다출판기념회에는 그날 초대한 80여 명의 음식을 손수 차리기도 했다. 그렇게 글도 나누고 음식도 나누고 정도 나누고 말도 나눈다.

 

널리 말하기를 실천하는 이유는 절실하다. 성폭력 생존자가 한 명이라도 더 보았으면 해서다. 생존자가 어떤 고통을 경험하는지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주변에서 생존자에게 너 왜 이렇게 불안해?’ 라고 말할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날카로울 수도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또 생존자들에게는 너는 그럴 수밖에 없어가 아니라 너가 그러는 게 당연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제가 처음 성폭력을 경험한 게 30년 전이거든요. 그때는 주변에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없어서 말 못했어요. 우리나라 아동성폭력 신고율이 9%에요. 미국도 6명 중 1명만 주변에 알린대요. 어느 외국 학자가 분석했는데, 아동성폭력 가해자는 한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저지르는 특성이 있대요.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도 다른 피해자가 있었을 거예요. 주위에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있었으면 반복적인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죠.”

 

지금도 여전히 아동성폭력 피해자는 너울이 느꼈던 고통을 그대로 호소한다. 그럴 때 미안하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지 못한 거 같아서.

 

 

모이기, 다섯이 하면 훨씬 난 말

 

 

벤야민은 이야기와 치유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름지기 병이란 그것이 이야기 들려주기의 흐름 속에서 충분히 멀리 떠내려 보낼 수만 있다면 치유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겪는 고통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이야기의 흐름을 막는 댐과 같다.” 벤야민의 처방대로 이야기는 너울을 어루만져 주었다. 구술로, 책으로, 다른 성폭력 생존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통을 저만치 떠나보냈고 자연스레 자신도 이야기의 수문을 열 수 있었다.

 

작은말하기(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주최하는 자조모임) 친구들, 여성학과 대학원 친구들, 글쓰기 힘들 때마다 격려해준 일다의 조이여울 대표, 상담과 학업을 물심양면 지켜보며 8년간 곁이 되어준 애인, 출판을 제안해준 출판사, 글을 의미 있게 읽어준 독자들은 너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빚어주고 간직하고 퍼뜨려준 고마운 동료들이다.

 

자신이 받은 것을 세상에 돌려주기 위해 너울은 지난여름 인터넷에 생존자 네트워크 카페 성폭력, 그 이후’(http://cafe.daum.net/e-hoo)를 개설했다. 아직 사무실이 없어 엔지오 단체로 등록하지 못했지만 십시일반 후원과 자발적 재능 기부로 조금씩 체계를 잡아가고 있다. 회원이 50명 남짓이다. 운영진 다섯 명이 격주로 모여서 회의를 하고 사업을 논의한다.

 

가장 중시하는 것은 기록화 사업이다. 피해자들이 자기 언어를 갖고 세상과 소통하는 길을 모색한다. 또 가죽공예, 타로상담, 미술치료 등 각자 회복에 도움이 됐던 강좌를 개설하는 치유회복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생존자의 작품 전시회 등도 계획한다. 책 읽고 글 쓰는 모임도 꼭 꾸리려 한다. 읽으면 똑똑해지고 쓰면 자유로워지고 말하면 당당해진다는 것을 먼저 깨친 자의 욕심이다.

 

누구도 성폭력을 찬성하는 사람은 없는데 성폭력 피해는 왜 이리도 많이 발생하는가. 너울은 말한다. 성폭력을 반대하기는 쉽지만 무엇이 성폭력인지 알기는 그만큼 어렵다. 선뜻 나서서 알려 하지 않는다. 여성들조차 자신이 성폭력 피해 가능성을 거의 상상하지 않고 산다. 어쩌면 소설 <침묵의 미래>에 나오는 소수언어박물관의 설정처럼, 성폭력 생존자가 대상화되고 한갓 소재주의로 전시되었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당사자가 직접 증언하고 같이 말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너울은 소설 속 노인이 그리워했던 의 언어들, 이를테면 혼자 하는 말이 아닌 둘이 하는 말, 셋이 하면 더 좋고, 다섯이 하면 훨씬 난 말, 시끄럽고 쓸데없는 말, 유혹하고, 속이고, 농담하고, 화내고, 다독이고, 비난하고, 변명하며, 호소하는 말들을 원 없이 부릴 것이다. 말의 물살은 또 다른 말의 잔물결을 낳겠지. 아마도 성폭력 생존자의 언어가 거리낌 없이 오가는 날 성폭력이라는 몹쓸 단어는 스스로 소멸할 것이다. ‘큰 피해를 입히고 사라져가는 파도라는 뜻의 너울성 파도처럼.

 

 

 

* <나들> 2014년 2월호 '내 몸, 파르헤시아' 연재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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