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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1.12] 만튀와 말하기대회

만튀와 말하기대회

[차오르는말들]

얼마 전 새로운 말을 접했다. 만튀. 분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오떡순(오뎅·떡볶이·순대)’ 같은 계열을 상상했다. 만두() 튀김의 줄임말? 아니다. ‘만지고 튄다의 약자다. 여성의 특정부위를 만지고 튀는 행동을 뜻한다고 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나가는 여성의 몸을 만지고 달아나기를 반복한 김모군(18)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내용의 기사에서 처음 보았다. 관련 기사를 더 검색해봤더니 만튀라는 신조어는 이미 엉만튀, 가만튀 등 만지는 신체의 부위를 타고 괴물처럼 증식해버린 상태였다.

나만 너무 늦게 안 모양이다. 성희롱을 일상화하고 희화화 하는 말이 버젓이 일상에 매복되어 있었다. 언론은 천연덕스럽게 받아쓰기를 한다. 기사 말미에는 장난삼아 하는 일이 범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지만, 맥락은 반대다. 범죄 행위를 장난처럼 보도하고 있다. 으으. 가해자를 주어로 내세워 몹쓸 짓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한다. 피해자는 직장여성과 여대생으로 사물화 되어 있다. 당사자의 목소리와 아픔은 한 줄도 없다. 이 사회는 여성이 겪는 고통과 불편을 참 요란하게 묵인한다.

 

갑자기 누군가의 자기 몸을 만질 때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번이라도 피해를 당했다면 오늘도 가슴 조이며 종종 걸음 치거나 빙빙 돌아가는 형벌을 자처할 것이다.

나는 이십대 초반에 좌석버스 뒷자리에서 졸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허벅지를 만진 이후 한동안 좌석버스를 타지 못했고 지금도 남자 옆에는 웬만하면 안 앉는다. 내 친구는 더하다. 운전면허시험 강습을 받다가 강사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10년 동안 면허시험장을 치르지 못했다. 분개했다. 기득권자들이 어떤 경우에 자기 기회를 10년씩이나 유예하겠느냐고. 그러고 보니 어떤 점에서 만지고 튀는이들은 그래도 낫다고 해야 할까. 만지고도 버티는저 운전학원 강사를 비롯해 수시로 지면을 장식하는 의원님들, 목사님들, 교수님들, 직장 동료나 상사들, 벌레 같은 아버지들에 비하면 말이다. 적어도 자기행동에 대한 인식은 있으니 

그 무렵이다. (만두와 튀김이었으면 좋았을) 분별없는 그 말을 접한 즈음인 지난 1023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가 열렸다. 이름 그대로다. 성폭력을 당한 사람이 자신의 피해 내용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연례행사다. 올해로 11회 째. 나는 작년에 처음 갔고 올해도 두 번째 참여했다. 말하기 참여자 5명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자신의 피해경험을 성폭력세 글자로 인지하기까지의 과정과 이후 대처 상황을, 혼란과 자책과 각성과 돌파의 말들을 대체로 또박또박 때로는 꺼이꺼이 꺼내어 놓는다. 그 장면은 삶의 용기와 진실이 해처럼 불쑥 솟아나는 숭고함을 준다. 구체적인 내용은 외부로 유출하지 않는 것이 듣기 참여자의 약속이라서 상세히 말할 수는 없으나, 가해자가 얼마나 사악한가는 중요치 않다. 피해자는 왜 말하려 하는가. 말해야만 하는가. 그것이 말하기대회의 관전 포인트다. 한 참가자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동안 말하기 대회 준비하러 다닐 때 친구가 어디 가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했어요. 답답했어요. 나한테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에 나간다고, 그런 걸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싶어서 여기서 연습하려고 나왔어요.”

살기 위한 말이다. 생존자로서 말하는 게 아니라, 말하면서 생존자가 되는 거다. 두 시간이 탱글탱글한 말들의 입자로 꽉 찬다. 관객도 같이 그 순간을 호흡한다. 한 존재가 한 존재의 말-삶에 몸을 수굿이 숙이고 귀 기울이고 정서가 뒤엉키는 그 자리, 뜨거운 감정이 흘러 다니는 그 시간이 무척 귀하고 값지다. 삶은 얼마나 위대한가. 과연 그럴까 의심했는데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한다는 니체의 말을 그 때는 절감한다 

 

나는 이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에 더 많은 남성이, 여성이, 어른이, 청소년이, 언론인이 듣기 참여자로 왔으면 좋겠다. “잠이 안 와서혹은 심심해서 작정하고 습관적으로 성폭력을 저지르는데 그것이 한 사람의 몸-삶에 어떤 불편과 치욕과 고통과 절망을 가하는지, 이성복의 시구대로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것들, 입이 없는 것들로 살아가는 고역이 어떤 것인지, 상관의 성추행에 시달리다 자살한 여군의 경우처럼 끝내는 죽음에까지도 이르게 하는지, 눈빛 마주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길 바란다 

진실말하기. ‘만튀같은 비겁하고 영혼 없는 신조어를 유통하고 소비하기보다는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같은 당당하고 존엄에 찬 말들을 언론이 나서서 널리 소개하면 좋겠다. 피해자 유발론이 아니라 가해자 책임론으로 성폭력 논의의 관점이 바뀌는 게 순리다. 집이나 학교에서 딸들에게 밤길 조심해라, 짧은 치마 입지 마라, 교육하기보다 아들들에게 행여 이상한 짓 하고 다니지 말라고 인간 존중의 태도와 고통 공감의 능력을 가르치는 게 맞다. 물론 쉽지 않다. 나도 그러지 못했으니까. 부끄럽게도 자기 자식이 (피해자가 될까 우려할 뿐) 성폭력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고려하는 엄마는 없는 것 같다. 누구도 삶의 재난을 피해갈 수 없다면 성폭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가해자로도 피해자로도 더는 만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들 딸 손잡고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에서 조우하면 좋겠다.

 

-수유너머 R-VIEW (연구원들이 돌아가면서 글을 싣기로 한 잡지?)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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