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옛 정취 간직한 역사문화마을

[좋은삶공동체]

‘이르다’는 뜻의 이름에는 저마다 타고난 사명이 담겨있다. 땅이름도 그렇다. 인천(仁川)은 어진 내, 어진 흐름이다. 물길이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던 시절 인천은 근대화의 진입통로였다. 항구에서 받아들인 서구문물을 서울로 실어냈고 외지사람들은 여기서 성공하면 서울로 나갔다. 엄마처럼 정성스레 품어 내어주는 곳이 인천이었고 그 중심에 배다리마을이 있다.

배다리는 인천 동구 금곡동 일대를 일컫는다. 19세기 말까지 마을 어귀에 바닷물이 들어와 배가 닿는 다리가 있어 ‘배다리’라고 불렸다. 유서 깊은 지명대로 배다리는 근대로부터 이어오는 삶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최초의 공립 보통학교 창영초등학교, 여선교사 기숙사 등 100년도 더 된 건물과 옛 성냥공장, 양조장을 볼 수 있다. 인천항에서 일하던 인부들과 먼 뭍에서 물건을 떼러 온 상인들이 묵었다던 여인숙길, 1․4후퇴 때 생긴 60년 전통 한복길, 고서점길 등이 구불구불 실개천처럼 흐른다. 마을전체가 탁 트인 하늘 아래 전시된 생활사박물관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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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연못 - 노근리라고 쓰고 대추리라고 읽는다

[극장옆소극장]

<작은연못> 시사회 날. 친구 따라 극장 갔다. 일전에 얼핏 들었다. 노근리 사건에 관한 영화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대추리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알고 갔다. 친구가 그랬을 리 없다. 내 머릿속 편집기 소행이다. ‘노근리’를 ‘대추리’로 접수한 것이다. 극장 안. 무대인사 차 올라온 제작자가 말했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에 맞춰 영화를 개봉하게 됐습니다.” 그 순간 왜곡됐던 기억이 재빠르게 돌아왔다. “아! 맞다. 노근리였지!” -_-; 

<작은연못>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충북 노근리에서 피난민 500여명이 미군에 사살당한 실화를 다룬 영화다. 동화적인 느낌의 다큐멘터리다. 어르신은 나무 그늘 아래서 장기 두고, 아이들은 산으로 들로 토끼처럼 뛰어 다니고 소학교 운동장에는 긴 생머리 선생님이 치는 풍금소리가 울려 퍼진다. 작은 시골마을의 평화로운 풍경이 수채화톤으로 그려지다가 점차 마을 전체가 총성, 울음, 그리고 피로 얼룩진다. 계절이 바뀌어 만산홍엽 물든 가을이 됐을 때, 마을엔 25명의 주민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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