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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9] 방황이 끝나갈 무렵 (4)

방황이 끝나갈 무렵

[차오르는말들]

어느 토요일 오후. 밖에 있는데 꽃수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집에 오니까 가스레인지에 불이 켜져서 수레가 껐어. 뚜껑을 열려고 행주를 댔더니 치익~ 소리가 나서 무서워서 안 열었어.” 그 얘길 듣고서야 불현 듯 가스불을 켜던 순간이 생각났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올려놓았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국도 아니고 찌개도 끓이지 않았다. 도대체 가열해서 요리할 것이 없는데 뭘까?  

집에 가서 냄비를 보고서야 알았다. 오랜만에 보리차를 끓인다고 물을 한 냄비 가득 올려놓았음을. 냄비가 외롭게 몸을 데우다가 태우고 있었을 시간을 헤아려보니 무려 1시간 반이다. 냄비가 잿빛으로 변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불이 났을까. 그 생각을 하자 한숨이 나왔다. 안도의 한숨이 아니라 나의 허술함을 개탄하는 한숨이다.  

이틀 동안 핸드폰 분실소동을 일으켰다. 외출할 때 입은 외투 주머니를 뒤져도 없어서 동선을 거슬러서 찾아보고 집안을 뒤지고 서점가서 물어보고 그래도 찾지 못해 일단 발신정지를 시켰다. 조용한 게 좋아서 진동상태로 해놓은 핸드폰. 어디 길바닥 구석에서 쓰러져 몸을 떨고 있으려나.  

핸드폰이 귀찮을 때도 많았는데 없으니까 무척 아쉬웠다. 답답하고 불편했다. 가장 아쉬운 건 전화번호. 인생의 지도를 분실한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다른 외투에서 찾았다. 나는 철석같이 감색 점퍼를 입었다고 생각했는데 카키색 외투 주머니에 떡하니 들어있었다. 반갑고도 허망했다. 이번에는 한숨도 안 나왔다. 이쯤되면 위험한 망각증이다.  

요새 일상이 엉망이다. 뿌리가 잘린 식물처럼 부유하고 있다. 책에 집중이 안 되는 게 제일 괴롭고, 글쓰기가 귀찮아져서 당황스럽다. 마음이 푸석푸석하니 시집도 시큰둥하다. 꽃단장도 흥미를 잃었다. 가사노동 하기가 싫어서 냉장고에 계란이 다 떨어져버리고, 세미나도 두 번이나 땡땡이쳤다.  

사람들 만나서 수다 떠는 것도 싫고 수유너머 가는 길이 대전처럼 멀게 느껴져서 꾀가 난다. 아버님 보청기 사드리고 아들 녀석 여드름 치료하고 고등학교 대비 수학학원에 등록하고 자동차세까지 내고났더니 주머니가 텅 비었다. 일 하기 싫다고 빈둥거리면서 돈이 없으니까 신경질난다. 총체적 난국이다.

겨울잠 자려고 동굴에 누워서 잠들지도 못하고 뒤척이는 곰같다. 일상이 둔하고 삶이 무겁다. 기억은 죄다 흘리고 생의 의지는 바닥났다. 예전엔 힘들게 투쟁하는 사람들 만나면 힘이 났는데 이제는 힘이 들었다. 눈물 나고 슬퍼서 허우적거렸다. 글을 쓰고 있으면 몸이 나락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인간이라는 종한테 희망이 있는가, 긍정의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투쟁하다가 냉소하는 게 가장 손쉬운 선택이거늘 그렇게 될까봐 두려웠다.  

내가 좋은 엄마인줄 알았는데 방목과 탈경쟁을 이유로 아들에게 무심했다는 자각에 며칠 간 가슴이 아렸다. 피와 살이 되는 얘기 들려준다면서 일방적으로 내 가치만 주입한 것 같다. 아들의 대사 속에서 지 나름대로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이 언뜻언뜻 읽혔다. 서로 화음을 맞춰가야 하는데 삐그덕 소리만 요란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과 맞장 뜨던 호기는 어디가고 세상의 무거움에 납작하게 깔릴 만큼 나의 신체는 무기력하다.

방황하는 동안 수많은 상념이 교차했다. 평균수명대로 산다면 나는 향후 40년을 무엇을 하고 살아야할까. 어떻게 삶의 가치를 발명해야 하는가.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자식과의 상호 삶을 해치지 않는 아름다운 거리는 어디까지인가. 무엇은 해주고 무엇은 놔두어야 하는가. 한없이 번져나가는 삶의 물음들에 아득해졌다.  

지금은 괴로운 방황담을 되새김질하고 기록할 만큼 기운이 회복됐다. 몇가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 계기가 됐다. 핸드폰 찾기는 제법 드라마틱했다. 시댁 어른 생신이 있어서 저녁모임에 갔다가 돌아와 옷을 걸려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 순간에 남편은 혹시나 내 핸드폰 주운 사람이 전화를 받을지도 모른다면서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다. 베란다 문을 닫으려는데 캄캄한 어둠 속에서 미세하게 진동음이 들려왔다. 귀를 의심했다. 남편이 재차 전화를 걸고 조용한 상태에서 추적해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옷 주머니에 핸드폰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의 단기 기억상실증에는 좌절했지만 그 놀이가 재밌었다. 어둠속에 풀벌레 소리처럼 들려오는 진동음. 아련한 희망처럼 느껴졌다. 얼음장 같던 마음에 살짝 볕이 든다. 타락한 존재가 우글거리는 세상. 그곳에서 눈길을 거두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에게 복된 삶을 위한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물으니 그것은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일상을 살아내고 한 사람을 인류로 대하는 곳에서만 시작된다는, 교과서 같은 답이 들린다.

꽃수레랑 버스에 둘이 앉아 있는데 꽃수레가 손에 뭐가 났다며 보여준다. 작게 곪은 상처다. 내일 피부과에 가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꽃수레가 연극적인 대사를 친다. "엄마가 수레를 참 아끼는가 보다! 이런 작은 일로 피부과까지 가자고 하고~" 억양이 하도 깜찍해서 푸핫 웃음이 나다가 뭉클했다. 꽃수레의 손을 잡고 있자니 '아낀다'는 말의 온기가 전신으로 퍼졌다. 누구를 아끼는 마음이란 얼마나 따뜻하고 소중한가. 다시 약한 존재를 아낄 수 있는 자로 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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