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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19] 밤에 쓰는 편지3 / 김사인 (10)

밤에 쓰는 편지3 / 김사인

[올드걸의시집]

한강아
강가에 나아가 가만히 불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작은 목소리에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나 값싼 눈물 몇 낱으로
저 큰 슬픔을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큰 분노와 슬픔으로 흐르는 것인 줄을
진즉 알고는 있었습니다
한강아
부르면서 나는 저 소리없는 흐름에게 무엇을 또 기대했던
것인지요
큰 손바닥과 다정한 목소리를 기다렸던 것인지요

나도 한줄기 강이어야 합니다
나도 큰 슬픔으로 그 곁에 서서
머리 풀고 나란히 흘러야 합니다

- 김사인 시집 <밤에 쓰는 편지> 청사


   

비가 왔다. 좋았다. 나뿐이겠는가. 비오는 날이면 라디오 사연도 급증한다. 알록달록 우산처럼 여기저기서 감수성이 꽃핀다. 난 이번 비에는, 왠지 게으르고 싶어졌다. 한글파일을 끄고 찢어진 우산을 폈다. 뒷목으로 흘러드는 빗물에 먼지 풀썩이는 마음 가라앉혔다. 양손에 책 들고 마루 이 끝에서 저 끝으로 구르다가, 침대로 가서 목침으로 베고 누워 졸기를 반복했다. 비몽사몽 책을 읽다가 아름다운 문장이 쏟아지면 벌떡 일어나 책상으로 갔다. 공책 펴놓고 열심히 베꼈다. 필기 밀린 사람처럼 꼼짝 않고. 파란 볼펜으로 쓰다가 밋밋하면 만년필로 모나미볼펜으로 연필로. 농담을 조절해가면서 화폭을 수놓듯 정성 다했다. 김수영전집에 새삼 필 꽂혀서 다시 읽는데 그와 연애하는 기분이었다. 1960년도 김수영의 예민한 사유의 몸부림의 파동이 2010년도 나에게 그대로 당도했다. 50년 세월. 시간의 강물쯤이야. 그 곁에서 나란히 흘렀다.  

가족이 다 잠들고 혼자 남은 밤. 라디오를 껐다. 사방이 시골처럼 조용했다. 마른 빨래가 다시 젖어버릴 것처럼 빗소리가 크고 가깝게 들렸다. 핸드폰을 목에 끼고 양손으로 빨래를 접으며 친구한테 전화했다. 어수선하다. ‘뭐해?’ ‘술 마셔..비오잖아~’ ‘흑. 난 빨래 개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은 삶이야.’ 부러우면 지는 거다. 밤 11시에 맨발로 달려 나가려는 마음을 부여잡았다. 냉장고에서 남은 과일주를 한 컵 가득 따랐다. 달달한 냄새 맡고 날파리가 꼬인다. 겨자씨만한 날파리랑 술잔을 놓고 옥신각신 싸우면서 태산같은 고독을 마셨다. 외로우면 진짜 지는 거다. 여왕보다 더 행복해지려고 음악을 들었다. 시와. 라는 가수다. 일전에 지인에게 답례품으로 받은 음악선물. 가만히 노래하는데 울림이 깊다. 세찬 빗소리 싸한 밤공기 참한 목소리가 서로 스민다. ‘작은씨’ ‘화양연화’ ‘아주 작게만 보이더라도’ 제목도 아름다운 노래들이 빗소리와 머리 풀고 나란히 흘렀다. 부러움과 외로움이 거짓말처럼 싹 가셨다. 책도 재미났다. 

운치로 충만한 날, 결국 책과 음악으로 보냈나.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하루가 평범했다. 아니, 나의 매일매일이 특별하다고 해두자. 그럼에도 역시나 공부는 할 일 없는 사람이 하는 거란 말이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새벽 세시. 비가 그쳤다. 날파리가 사라졌다. 연거푸 하품이 나와서 나도 자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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