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읽다 -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은유칼럼]

비닐 천막을 걷어내자 두어 평 남짓 평상이 휑하니 드러난다. 이중 삼중으로 깔려 있던 돗자리 바닥 아래 플라스틱 지지대 사이엔 여름휴가철 해변처럼 쓰레기가 나뒹군다. 스티로폼 조각, 캔 음료, 빵 비닐들, 그리고 딱딱하고 거무튀튀한 고양이 똥이 발견됐다. 

“이게 주범이었어!” 

삼성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농성장. 709일 만에 대청소를 유발한 주된 요인은 고양이(배설물)다. 농성장을 드나들던 고양이 서너 마리가 좁은 틈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는 바람에 쿰쿰한 냄새가 진동했다고. 찬바람도 불어오니 월동 준비 겸 대대적인 리모델링 계획을 세웠다.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대청소 공지를 보고 나는 슬그머니 출동했다. 

ⓒ시사IN 이명익

“의사란 이름을 떠난 지 5년쯤 됐어요.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 ‘의사’에 방점이 찍혀 나가요. 그냥 전문의 자격증 따고 살고 싶은 대로 살 뿐인데….” 

7년 전 인터뷰이로 만난 공유정옥씨가 말했다. 살고 싶은 삶을 이어가던 그는 요즘엔 반상근 활동가로 일하며 직장에 나간다. 얼마 전 공저로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이란 책을 냈다. 13명의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와 연구원이 쓴 ‘일하다가 죽는 사회에 맞서는 직업병 추적기’다. 진즉에 사둔 책을 강남역 가는 버스에서 폈다.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면, 산재 신청을 포기하면 10억원을 주겠다는 삼성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서 7년 만에 공식 산재 인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면, 우린 지금까지도 반도체 및 첨단 전자산업의 위험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178쪽).” 

농성장에 도착하니 책 속의 황상기씨가 예의 염화미소를 머금은 채 묵은 짐을 바삐 나른다. 그 옆엔 또 다른 ‘유미’, 한혜경씨가 있다. 열아홉 나이에 삼성전자 LCD사업부에 들어가 일한 지 3년 만에 월경이 완전히 멈췄고 뇌종양이 발병했다. “설마 삼성처럼 큰 회사가 몸에 해로운 일을 그냥 시키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177쪽)”던 그녀는 지금 휠체어에 앉아 있고, 어머니 김시녀씨는 두 팔 걷어붙이고 현장을 지휘한다. 

“유미 아빠, 이건 버립시다.” “김 반장이 버리라면 버려야 돼! 하하.” 삼성에서 일하다가 죽거나 골병든 자식을 둔 부모들, 무심하고 일상적인 저 말들이 정겹고 아프다. 마스크를 쓰시라고 해도 답답하다며 맨몸으로 먼지 구덩이 속을 누비는 것까지 닮았다. 저토록 성실함으로 나날을 통과해 이른 곳이 맨바닥, 남의 목숨과 고통을 연료로 몸집을 불려나가다 괴물처럼 비대해져버린 저들의 목전이다. 

나는 세간 정리를 맡았다. 농성장 둘레 선반에 쌓아두었던 냄비며 접시, 일회용 커피, 공구세트, 문구용품, 스탠드, 화분 등을 꺼내 먼지를 닦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한 젊은 남자가 성급한 걸음걸이로 다가와 말을 건다. 

기업은 꿈쩍 않지만 사람은 흔들린다

“이제 끝났습니까? 잘 해결된 건가요?” 그건 아니고 대청소 중이라고 말했더니 낙담한다. 출근할 때마다 버스 타고 농성장 앞을 매일 지나간다고 했다. 차창 밖으로 농성장이 해체된 걸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목적지도 아닌데 내려서 일부러 찾아왔다며 머뭇거리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기업은 꿈쩍 않지만 사람은 흔들린다. 공유정옥씨가 어느 노동자의 죽음에 흔들렸듯이 노동자의 질병을 직업병으로, 즉 “인간 노동력의 결함이 아닌 노동과 자본-기계와의 결합 관계의 문제(328쪽)”로 밝혀낸 여러 의사가 있고, 공장 안의 위험한 비밀을 굴뚝 바깥으로 나와서 알리는 노동자들이 있고, 또 타인의 죽음에 눈길을 거두지 않다가 다급하게 안부를 묻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 가을날 더 많은 것들이 흔들리길. 그 흔들림의 결합만이 이 농성장의 소멸을 가능케 하리라. 인정 없는 노동의 풍경을 바꿔내리라. 

은유 (작가)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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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고 - 반도체 소녀의 귀향

[은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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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을 보는 동안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일본군의 (성)폭력으로 인한 비명과 무자비한 총성이 길고 셌다. 무구한 소녀와 잔인한 일본군의 선악 대비, 그 단순한 서사의 프레임은 생각을 몰수하고 통증을 일으켰다. 이런 궁금증이 남았다. 왜 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범하고 죽이게 되었는가. 존재를 침범당한 인간은 또 어떻게 존엄을 추스르고 일상을 살아갔는가.

극장을 나와 핸드폰을 켜니 문자가 와 있었다. 내일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알린 고 황유미씨의 9주기 추모제가 열린다는 내용이다. 아, <귀향>은 끝나지 않았구나. 여기에 또 하나의 악이 있고, 또 하나의 기막힌 죽음이 있고, 귀향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소녀상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묵직했다. 

이튿날,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삼성전자 본사 앞을 찾아갔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150일째 농성 중이었다. 기나긴 풍찬노숙엔 이유가 있다. 지난 1월 언론에선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보상 마침내 마무리’라는 기사가 쏟아졌으나, 겉과 속이 다르다. 삼성전자는 독립된 사회적 기구가 아닌 독자적 사내 보상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러곤 가해자인 자기들이 직접 보상을 진두지휘했다. 산정기한을 정해서 피해자들을 압박하고, 합의사항에 대한 비밀을 유지하라는 각서를 발송했다. 사과도 형식적이다. 삼성의 부실한 안전관리 행위를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조정권고안의 내용은 쏙 빼고 “아픔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한마디로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아프다니 유감이다’라는 식이다.

이것은 우리가 풀어야 할 거대한 의문부호다. 삼성은 왜 저 푸르스름한 건물 유리처럼 차가운 얼굴을 갖게 되었나. 직업병 사망자 76명과 암환자 223명이 나왔는데도 왜 눈물 흘리지 않는가. 죽음의 공장인 삼성이 어떻게 세계 일류 기업의 칭호를 누리는가. 삼성은 아는 것 같다. 영화 <귀향>의 일본군처럼 삼성은 한국 사회의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독한 화학약품의 생산라인에 사람을 방치하여, 죽이지 않고 죽게 내버려둔다. 돈 몇 푼 쥐여주고 조용히 죽음의 흔적을 치워버린다. 언론은 삼성 편이다. 대학생이 들어가기 원하는 1위 기업의 위상은 굳건하다. 어떤 짓을 해도 어떤 저항에도 부딪치지 않는다는 확신이 폐쇄적이고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 체질을 만들었으리라. 

황유미는 열아홉에 속초에서 관광버스 타고 삼성반도체 기흥 공장에 들어갔다가 백혈병을 얻어 스물셋에 세상을 떠났다. ‘생전의 고인은 왜 아파야 하는지 몰랐다’는 기자회견문에서 영화 <귀향>의 소녀의 대사가 겹친다. 트럭 타고 일본군에 끌려온 열다섯 소녀도 몰랐다. 그래서 묻는다. ‘여기가 어디예요?’ 일본군은 질문하는 소녀의 입을 후려쳤다. 황유미 추모제가 열리는 날 삼성전자는 본사 앞에 펜스를 쳤다. 말하는 자, 감히 알려고 하는 자를 저들은 몹시도 겁낸다.

은유 작가
은유 작가
9년 사이, 말이 쌓여 질문이 되고 진실이 드러났다. 황유미의 산업재해가 행정법원에서 인정됐다. “왜 네가 병에 걸렸는지 원인을 밝혀내겠다”던 약속을 아버지 황상기씨는 지켰다. 세상으로 나온 또 다른 유미들이 매일 강남역 삼성전자 앞에서 이어 말하고 있다. 삼성이라는 악에 대한 증언에서 나아가 저들의 비열한 횡포에 맞서 어떻게 분투했는지, 일상을 파괴하는 고통과 분노에 익사당하지 않고 타인에게 관심을 넓히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고통이 알 수 있는 고통이 되기까지 어떻게 싸웠는지…. 오가는 행인의 발걸음을 붙들어 세우는 그 뜨거운 이야기들은, 반도체 소녀들의 ‘귀향’이다.

은유 작가


* 고 황유미 9주기를 맞아 언론사 릴레이 기고에 참여했습니다. 한겨레 3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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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농성장에 가다

[사람사는세상]

 함께 글쓰기 공부하는 학인들과 <시와 육개장의 첫눈밤> 보내고 왔습니다. 

이어말하기 대회에 저 은유와 학인들이 참여해서 일인일시, 낭독하고 

손맛 좋은 학인이 육개장 끓이고 과일 챙겨와서 배불리 먹었습니다. 

사람 곁에 사람, 시 곁에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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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8번 출구

[사람사는세상]



‘날씨가 추워지는데 혹시 담요는 있나요.’ 근 5년 만에 메시지를 보내고 답을 기다리다 무작정 발길을 옮겼다. 강남역 8번 출구 방향이랬다. 지하도를 빠져나오니 또 하나의 도시다. 잿빛 하늘 아래 푸르스름한 건물들이 어지러이 완강하다. 몇 걸음 내딛자 야트막한 비닐 천막 앞. 이곳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지난 10월 7일부터 농성 중이다. 


똑똑, 지나가는 시민인데요. 굵어지는 빗발을 피해 몸을 접어 안으로 들어갔다. 준비한 담요를 건네고 전단지를 보는 둥 마는 둥 나는 뿌연 비닐 천장 위로 고개를 들어 삼성전자 건물을 찾았다. 대관절 어딜까 물었더니 이 일대가 전부라고 했다. 저게 삼성전자, 저건 삼성물산, 이건 홍보관…. 아, 건물 외벽에 회사 로고가 없다. 기둥마다 감사카메라만 주렁주렁 달렸다. 우리는 그들을 볼 수 없고 그들은 우리를 다 본다. 이 시선의 비대칭, 비가시화는 권력의 속성이다. 시인 김수영은 ‘하… 그림자가 없다’라는 시에서 노래했다.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고. 


“주말에는 삼성 사옥으로 결혼식을 많이 와요. 근데 어디가 어딘지 모르니까 우리가 종일 길을 안내해요. 이쪽입니다. 저쪽으로 가세요. (웃음) 가끔 왜 농성하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럼 전단지를 드리거나 상황을 설명하죠. 어떤 분이 얘기 다 듣더니 그러더라고요. 세월호랑 똑같네.”


삼성호에 탔다가 가라앉은 이들. 둘레의 영정 사진과 피켓 문구가 하나씩 눈에 든다. ‘삼성에서 병들고 죽어간 노동자 200여명’ ‘고 황유미 85년생’ ‘고 윤슬기 81년생’ ‘삼성은 이 노동자의 죽음 앞에 사죄하라’ ‘No More Death in Samsung’…. 고 황유미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으로 알려진 실제 인물이다.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온 가족이 기뻐했으나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1년 8개월 만인 2007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숨졌다. 딸을 앞세운 속초의 택시운전사 황상기씨는 투사가 됐다.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박종철 아버지 박정기, 김유민 아빠 김영오처럼. 


자식을 잃고 그들은 싸운다. 세월호 유가족은 이렇게 말했다. “소를 잃어본 사람이 외양간을 고치지, 소가 멀쩡하게 있는 사람은 모르더라고.”(고 임세희 학생 아버지 임종호) 그러니까 황상기씨는 8년째 외양간을 고치는 중이다. 천지가 만산홍엽 물드는 가을철 대목에도 택시를 세워놓고 속초에서 이곳 강남역 농성장으로 일주일에 세 번은 들른다고 했다. 삼성이 피해자 가족을 개별적으로 접촉해서 돈봉투를 건네고 무마시키는 식의 보상이 아닌,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는 올바른 해결을 요구한다. 딸은 이미 보냈으나 다른 딸들만큼은 지키려 전심전력하는 이런 삶을, 아직은 소가 멀쩡한 대다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각자의 윤리적 노력을 스피노자는 ‘도의심’(pietas)이라고 했다. 이 도의심에서 세상을 바꿔낼 정치적 가능성을 점쳤다. 

저녁 6시, 해 떨어질 무렵 농성장으로 하나둘 모여든다. ‘반도체의 날’ 행사에 ‘돈보다 생명’ 퍼포먼스를 하러간 활동가들이 돌아와 컵라면으로 추위와 허기를 달랜다. 반가운 얼굴들. 5년 전 만났던 나의 인터뷰이도 있다. 산업의학 전문의이자 반올림 활동가인 그는 대한민국 청년들 기업선호도 1위 삼성에서 가장 어리고 약한 노동자들이 화학약품과 방사능으로 조용히 죽어간다는 것을 내게 알려준 사람이다. 그 뒤로 나는 삼성 없이 살았다. 어차피 시들해진 삼성그룹 사보 일을 접었고 웬만하면 삼성 제품을 들이지 않았고 삼성과 싸우는 단체에 월 2만원씩 후원을 시작했다. 그리고 ‘반올림’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소식을 받아보다 23일 만에 농성장에 들렀다. 시월의 마지막 밤 그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농성장에 뭐가 필요하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여기가 오성급 호텔이라 웬만한 건 다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필요해요. 그냥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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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노동자 자살 "12시간 근무 기본…나 죽었다"

[사람사는세상]
'삼성LCD 고 김주현님(남,26) 빈소 순천향천안병원에 와 있습니다. 사측관리자들 말고는 너무도 적막하네요. 조문, 내일 11시 기자회견, 반올림카페에 격려글 올리기 등 마음과 힘을 모아주세요.'
 
어제 오후에 공유정옥 활동가에게 문자가 왔다. 삼성전자 직원이 또 죽었다니 무슨 일인가 기사를 찾아봤다. 하루 12시간-15시간 노동강도를 견디지 못한 26세 남성의 자살이다. 전혀 몰랐다. 포털화면에는 삼성가재벌녀 이부진 이서진의 패션감각  분석 기사가 떠있었다. 그동안 삼성에서만 100여 명의 노동자가 죽었고 죽어 가고 있으며 죽을 것이다. 전에 삼성일반노조 위원장님이 삼성전자에서 직원 뽑는 방법을 들려주셨다. 실업계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관광버스에 태우고 가서 강도 높은 체력테스트를 거친 이들만 합격시킨다고 했다. 그만큼 반도체 산업이 노동강도가 높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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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과의 만남

[사람사는세상]

“근데 왜 저를 부른 겁니까? 연구원들이라고 하셨죠? 삼성반도체 한 사업장에서 100명 가까운 사람이 백혈병과 희귀암으로 죽어갔습니다. 이런 사안에 대해 진보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성명서라도 내야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나라에 무슨 단체들 많잖아요. 삼성문제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꿈꾸는 좋은 세상, 세상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건가요.”  


체크무늬 셔츠에 베이지색 투쟁조끼, 덥수룩한 수염, 형형한 눈빛이 천생 노동운동가의 포스였다. 원망과 애원이 범벅된 직설적 어법으로 첫마디를 열었다. 외면과 내면의 일치. 그 진실한 환대에 야단맞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저런 말 들어도 싸다. 삼성 나쁘다고 말만 했지 뭐 하나 실천적으로 연대한 것이 없으니 아무 말 못했다. 8일 저녁 수유너머N에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과 토론회를 가졌고 나는 조금 일찍 가서 인사를 드렸다.  

위클리수유너머에서 삼성을 지난 5월부터 다루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고 삼성이 우리나라를 다 덮고 있는 거대한 괴물이라서 어디부터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견적이 안 나와서 미루고 미뤘다고 이실직고했다. 일단은 위원장님을 뵙게 되어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말씀을 들어보고 싶다고 전했다. 위원장님은 “간을 보려는 거냐?” 끝까지 밀어붙이셨지만 역시 반박하지 못했다. 듣고 보니 난 취재거리의 간을 보러 간 거였다.  

삼성과 15년간 긴 싸움을 이끌었다 김성환 위원장은 1993년 삼성그룹 계열사인 (주)이천전기에 입사했고 삼성그룹이 이천전기를 인수 통합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노사협의회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96년 11월 해고되었다. 2003년 삼성일반노조를 만들었고 2005년 수감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셨다. 삼성일반노조는 삼성그룹계열사, 사내하청, 협력업체 등 지역, 업종을 망라한 삼성관련 노동자들의 조직이다.  

테이블에 두툼한 ‘삼성탄압백서’를 근거로 삼성 재벌의 무노조 노동자탄압의 실상을 듣고 백혈병 노동자로 죽어간 스물둘 스물셋의 꽃다운 삼성노동자의 동영상을 봤다.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위해 내가 지난40년 소설, 영화, 책 등에서 직간접적으로 접한 모든 불의와 악랄함과 부도덕과 몰염치의 완결판을 구현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에서 백주대낮에 저런 일이 일어나고 그것에 다 같이 눈감고 있는 실상에 잠시 어지러웠다.  

삼성노동자는 5.18 광주였다 외부로부터 철저히 고립되고 차단돼 있었다. 삼성으로부터 ‘버림받는 또 하나의 가족’ 그들의 실상을 알릴 길이 없고 아무리 외쳐도 그들의 진실은 세상에 가닿지 않는다. 학살원흉이라고 욕먹는 전두환이 이건희를 생각하면 억울할 것 같았다. 이 정보화의 시대에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가.

“삼성 노동자들은 이건희의 무노조 경영을 자기 안에 내면화 하고 이건희처럼 생각합니다. 삼성이 무노조경영을 고수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노조를 만들어서 노동자의 권익을 챙겨주는 것보다 방해공작 하는 돈 이 덜 들기 때문이고, 세금을 내는 것보다 뇌물 주는 것이 돈이 덜 들기 때문에 온갖 정부기관, 언론사에 삼성장학생을 심어놓는 거죠.”  

삼성이데올로기의 내면화 내 안의 이건희가 삼성을 살려주고 있다. 주변에 보아도 굳이 삼성에 다니지 않더라도 임원급으로 '삼성을 생각하는' 애사심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이데올로기의 뜻은 허위의식이다. 삼성은 아무도 못 건드린다는 공포감. 삼성이 우리나라 경제를 먹여 살린다는 신화가 된 믿음. 이건희 앞에 엎드리는 자발적 노예화. 이것이 삼성을 지탱한다. 그럼에도 위원장님은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십년 전엔 삼성에 노조 만들려던 노동자가 납치됐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이젠 노조를 만들려다가 잡혔다고 말한다고 굉장한 발전이라고 했다. 또한 삼성에 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과 투쟁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비록 관료와 언론이 결탁해 조직적 방해공작을 펼치고 회유 당할지언정, 아직은 돈에 길들여지지 않는 노동자도 있다는 얘기다. 또 올해 초 삼성일반노조 사무실도 생겼다고 좋아라하셨다. 점점 힘을 키우고 있다고.  

“저희는 광고를 기준으로 투쟁을 평가합니다. 삼성노조 투쟁이 신문에 기사한줄 안 나오지만 다음날 각 신문에 삼성 광고가 일제히 실리면 ‘아, 우리가 잘 싸웠구나’ 압니다.” 

삼성을 (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삼성을 생각한다>를 진즉에 사놓고 읽지를 못하고 있다. 앞부분 몇 십 쪽 읽다가 덮어두었다. 너무 추해서 볼 수가 없었다. 김성환 위원장은 그 책에는 삼성노동자의 얘기가 빠졌다고 안타까워 하셨다. 김용철 변호사와 김성환 위원장의 증언을 통해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삼성제국의 실체가 폭로되고 있다. 100여명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면서 키운 삼성의 반도체 산업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기술의 발전이었는지 묻게 된다.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는 삼성은 머지않아 유럽의 노조, 소비자단체, 비정부기구(NGO)들로부터 거대한 반대운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사회책임에 관한 국제표준인 ‘ISO 26000’ 제정에 주도적 역할을 한 오스트리아 빈대학 마르틴 노이라이터 교수는 이렇게 경고했다고 한다. 국내에선 아무리 말해도 꿈쩍 않던 삼성이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할 것 같자 작년에 사내에 노동건강연구소를 세웠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눈물겹다 밤 10시가 넘어 허둥지둥 빠져나온 큰 길가. 살아가야할 삶의 길이 펼쳐진다.  삶의 가치, 인간의 가치를 생각하는 쓸쓸한 밤길.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하는가. 백년도 채 살다가지 못하는 인생인데 왜들 이렇게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사람 죽는 것을 예사로 알고 인간적 책무마저 방기하고 부를 탐하는 걸까. 인간다움의 가치보다 화폐가 전지전능한 신이 된 세상이 한스럽다. 사는 일이 허전하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큰 충격을 받는다. 이런 법이 있는데도 사장이 지키지 않고 버젓이 인간 이하의 착취가 범해졌던 것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후부터 자기가 싸울 대상은 사장이 아니라 국가임을 직감하고 국가를 상대로 싸우다가 꿈쩍도 않자 분신 항거한다. 지
독히도 외롭게 싸우고 있는 김성환 위원장님은 전태일의 치미는 분노, 그 '기막힌' 심정, 그것과 같으리라. 

'돈에만 매수되지 않으면 불가능할 게 없다' 고 말하며 삼성의 족벌경영체제를 무너뜨리는데 하나의 디딤돌이 되겠다는 위원장님, 삼성에게 버림받은 또 하나의 가족 반올림 사람들. 딸을 먼저 보내고 남편을 먼저 보낸 채 뒤늦게 ‘삼성의 학살’이라며 눈물짓는 가족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그들의 편에서 돕는 의사 공유정옥 씨. 삼성노조위원장을 수유너머에 초대해준 박은선씨. 그녀를 일컬어 이진경선생님 왈 “젊은 친구가 80년대 민중예술관을 갖고 있다”고 말해서 웃었는데, 그녀의 열정 덕분에 삼성노동자에 마음자리 내어주게 되었다.

그동안 여기저기 내는 비교적 살만한 단체의 후원금은 정리하고 삼성일반노조 후원으로 몰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은 너무 큰데 연대세력은 너무 작다. 아무리 생각해도 삼성은 노동계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 상식과 윤리의 문제다.

*<삼성일반노조 후원하실 분> http://samsunggroupunion.org (포털검색어: 삼성일반노조)
이름. 연락처. 주민번호. 핸펀번호. 주소. 후원금액 3천원부터 10만원, 기타까지 개인이 정할 수 있음.
예금주. 거래은행. 계좌번호. 이메일. 적어서 팩스나 이메일로 보내면 됩니다.
fax 02-2636-7830 sinojo21@hanmail.net 노조사무실 전화번호 02-2636-7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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