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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14] 잘 해야 한다 (6)

잘 해야 한다

[차오르는말들]

 

 "하고 싶은 일 하고 살아서 좋겠다." 언제부턴가 꽤나 자주 듣는 말이다. 며칠 전에도 들었다. 지난 토요일 오후에 <피에타>를  보고 연구실 시 세미나에서 이상시집을 읽고,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선배를 잠깐 만나서 영화 얘기를 - 황금사자상은 김기덕이 탈 것이 분명해보인다고 대감동을 전했더니 나한테 그런 거다. 하고 싶은 일 하고 살아서 좋겠다. 니가 부럽다. 영화 보고 시 읽고 좋은 사람 만나고. 남들이 보면 윤택하고 풍부해보이는 일상이다. 보이는 진실도 있지만 그런데 이렇게 살기 위해서 포기한 것도 있다. 경제적인 안정. 정규직의 안락. 일상의 고요 등등은 반납했다. 나는 매우 잘 놀지만, 늘 불안과 대결하면서 논다.   

도봉여성센터에서 글쓰기수업을 시작했다. 글쓰기수업 같이 했던 민우회 후배가 소개해줘서 하게 됐다. 5월 쯤인가 의뢰가 왔다. 나는 일박이일 망설였다. 이유는 지리적 조건. 도봉구가 너무 멀다. 아침 10시에 수업인데 애들 등교시키고 갈 자신이 없었다. 마포구 쯤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기를 바라지 말자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너무 편안함과 익숙함에 길들여지지 말자. 해야겠다. 나는 강의료를 받지만 수강생들에게 무료강좌니까 내가 만나는 대상들이 기존의 학인들과 다들 것이고, 평범한 주부들의 글쓰기는 내가 해야할 일이라는 임무의식이 들었던 거다.

9월 첫주 수요일. 모처럼 새벽에 일어나 머리 감고 물기도 채 마르기 전에 5센티 구두 신고 출근 기분 내면서 콩나물 시루 지하철에서 슬램하면서 도착했다. 첫 수업 시작하고 한참이나 당황했다. 나와 눈을 마주쳐주지 않아서. 고개를 숙이고 계서서. 그동안 연구실에서 수업할 때는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다. 연구실을 찾아오는 이들은 배움의지로 눈동자가 반짝거렸는데, 그녀들은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염려하며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수업교재를 바꿔야하나 집에 오는 길에 고민했지만 그냥 하기로 했다. 어떤 일을 해보기 전에는 자기도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 법이니까. 글쓰기에 자신 없어서 쩔쩔매다가 밤새서 글쓰는 재미에 빠져들었던 일산학인들의 변화를 떠올렸다.

지난 수요일 두번째 수업을 했는데 과제제출율은 낮았지만 글을 잘 써오셨다. 아무 글쓰기 기술도 습득하지 않은 분들. 교양화되지 않은 정서에서는, 거칠 지언정 좋은 글이 나온다. 특히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 그렇다.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바탕이 있다. 조지오웰은 작품의 주제는 작가가 속한 시대가 결정하지만 작품의 동기는 그가 어린시절 받았던 정서적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나는 오웰의 말을 경험적으로 신뢰한다. 한 분이 발표한 글에서 자꾸 생각나는 대목.

'시골에서 서울 올라오기 전 엄마께서 귀가 아프도록 일러주신 이야기. "잘해야 한다." "잘해야 한다" 도대체 뭘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자식이 잘 살기를 바라는 엄마의 절실한 마음이 저렇게 잘 표현된 문장이 또 있을까. 지난번 글쓰기수업에서도 한 분이 엄마 인터뷰를 해왔는데 엄마의 말씀이 주옥같았다. "용쓰지 말고 살아라" 그 말이 하도 좋아 내 방에 액자표구 하고싶었다. '잘해야 한다'와 '용쓰지 말라'는 상반되는 뜻이다. 잘하려면 용써야 한다. 불가피하다. 그런데 맥락은 같다. 용 쓰지 않고 잘 사는 방법이 있을까. 있다면 무얼까. <피에타>에서는 애궂은 토끼 한마리가 이정진한테 잡혀왔는데 조민수가 토끼를 자유신분으로 풀어준다. 토끼는 살겠다고 집밖으로 나갔다가 큰 길에서 사고로 죽는(것으로 암시된)다. 어디 그 토끼 뿐이겠는가. 모든 살고자 하는 것들이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희망은 있는가. 희망은 다 쓸데 없는가. 살아야하는가. 살지 않아야하는가.

  

우리가 구원을 향한 희망을 품으면 그 희망보다 먼저 들리는 목소리, 그런 희망은 다 쓸데 없는 일이야, 라는 절망의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그래도 한 순간이나마 우리를 숨 쉬게 해주는 것이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비록 무력하기 그지없어도, 희망이다. 진지한 사유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있다면, 그건 이 아픈 마음의 이중적 의미를 자꾸만 새로운 사유의 시도와 형상들로 바꾸어 성찰하면서 끈질기게 따라 가는 일이다. 마지막 진리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그렇게 끝없이 추적하면서 태어나는 사유의 가상들 밖에서 그 언젠가 더는 가상이 아닌 구원이 돌연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망상과 사실상 분리될 수 없는 것이리라.

 - 아도르노. <<미니마모랄리아>>산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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