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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취방에 놀러오다

[차오르는말들]


글쓰기 수업 첫날 자기소개를 하면 이런 사람 꼭 있다. "우연히 은유샘 블로그를 알게 되어 오래전부터 봐왔고요. 망설이다가 신청했습니다." 지난 토요일 개강한 수업에도 있었다. 사연이 더 이어졌다. 정확하진 않지만 복기하면 

"책도 내시고...근데 언제부터 글을 잘 안 올리시더라고요. 그럼 내가 직접 보러 가야하나, 인디밴드가 유명해져서 콘서트 열면 보러 가는 것처럼... (웃음)" 

뭐 그런 기분으로 왔다고 했다. 쑥쓰럽고 미안하고 고마웠다. 원한 없이 헤어진 옛날 애인 만난 기분이랄까. 그리고 알았다. 내가 블로그에다가 오직 블로그에만 쓰는 글을 안 쓴지가 꽤 오래됐다는 사실을. 전에는 그냥 여기가 내 단골 술집이자, 카페이자, 자취방이었다. 혼자서 오래 머물렀다. 글을 위한 글, 쓰기 위한 쓰기. 목적없는 글들을 무척 많이 썼고 글을 쓰면서 여러밤 설쳤고 눈물지었다. 지금은 어딘가에 쓴 글만 쌓아놓는다. 책장에 책 꽂듯이. 이곳의 온기가 사라지고 나조차도 오래 머물지 않은 공간이 된 게 어쩐지 쓸쓸하다. 좀 자주 들러야지. 나를 만나러 와야지. 

거절의 시간을 보냈다. 단기 알바가 들어왔다. 책자 편집 및 윤문. 시간 투자 대비 고료가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하루 고민하다가 마다했다. 중노동이 드는 단행본을 써도 보장되지 않는 돈이라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근데 돈은 생기겠지만 바빠서 에민해지면 괜히 같이 일하는 사람을 미워하게 될 거 같아 불안했다. 일에 치이면 상황을 그렇게 만든 나를 미워하지 않고 (나한테 맞춰주지 않는다며) 남을 미워한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직장 다닐 때 알던 출판사 직원이 문자가 왔다. 작가들 연락처를 물어본다. 에전에 물어볼 땐 서류 뒤져 흔쾌히 알려줬다. 근데 지금 나는 퇴사했고 그도 안다. 근데 물어본다. 내 주소를 물어보며 혹시 누구 누구 두 사람 주소도 알려주라고. 신간을 보내준다고 했다. 문자를 보는 순간 한숨이 났다. 아니, 왜 나한테 묻지. 큰 출판사다. 웬만한 작가리스트는 다 갖고 있을 만큼. 있는 그대로 답을 보냈다. '저는 퇴사했으며 자꾸 저에게 작가들 주소 물어보시면 난감합니다.' 

페이스북 친구를 맺은 사람에게 '문학을 왜 읽어야하는지 알려달라'는 메신저가 왔다. 일전에 좋은 책 내는 출판사를 알려달라고 해서 난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엔 정말 어려웠다. 왜 나한테 이걸 묻지. 둘이 대화 한번 해본적 없는 길에서 봐도 못 알아볼 사람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슨 얘기를 한단 말인가. 눈물이 나려했다. 답을 보냈다. '제가 대답해드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구학인이자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아는 사람이 자기(주변에 글 잘쓰는 사람)한테 자소서를 봐달라고 했다고 나한테 좀 봐줄 수 있느냐고 했다. 나는 답을 보냈다. '미안해요. 저 자소서는 안(못) 봐드려요. 이해해주세요.' 

일련의 거절의 과정이 괴롭다. 나는 미안하고 그는 무안하니까. 그 와중에 단행본 계약해놓고 원고는 시작도 안 한 출판사 대표 마주쳐서 "우리 책 언제 쓰실 거에요." 실망하는 눈빛을 보았다. 이튿 날 다리는 접질려서 반깁스하고, 그 퉁퉁 부은 다리로 쩔쩔매면서 주말에 원고를 붙들고 끼적였다. 갑자기 글을 쓰는 일이 고역같다. 왜 무슨 글을 써야하는지 막막하다. 글쓰기 수요반 토요반 첫수업에서 얻은 설렘이 아니었다면 살지 못했을 일주일. 삶이 비관적인 주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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