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솔닛'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9.28] 리베카 솔닛 인터뷰
  2. [2017.03.22] 친구 같은 엄마와 딸이라는 환상 (5)

리베카 솔닛 인터뷰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글자를 배우기 전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다. 리베카 솔닛이 처음 되고 싶었던 건 도서관 사서였다. 도서관은 일어났던 모든 일이 저장되어 기억되는 장소였고, 그 안에는 세상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책이라는 보물 상자를 열면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누구라도 될 수 있었고,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도 책과 한층 더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책 속에서, 책을 가로지르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결국 그렇게 됐다. 

ⓒ시사IN 윤무영

솔닛의 글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깊고 넓어서다. 때로 시 같기도 하고 때로 잠언 같기도 한 문장은 독자를 오래 책 속에 붙든다. 자전적인 이야기와 성찰에서 출발하는 글은 예술과 문화에 대한 비평을 잇고, 환경과 인간의 역사를 엮으며, 종내 사회와 정치에 대한 논평으로 밀고 나간다. 

여러 사상가와 작가의 문장을 재료로 삼지만, 솔닛의 글은 단단한 ‘현장’ 위에 서 있다. “내게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가르쳐준 것은 네바다 핵실험장이다(영국 문예지 <화이트리뷰>, 2013년 인터뷰)”라고 할 만큼, 솔닛은 작가와 활동가라는 두 가지 역할을 충실히 살아왔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했고,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부터 인권운동, 기후변화, 아메리카 원주민 토지권 반환운동, 반전운동, 반핵운동의 현안에 참여해왔고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에도 적극 가담했다. 2010년 미국의 대안 잡지 <유튼 리더>는 솔닛을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꼽기도 했다. 

솔닛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계기는 2008년에 찾아왔다. 미국의 독립언론 매체 <톰 디스패치>에 기고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Men Explain Things To Me)’라는 제목의 원고는 이전에 쓴 어떤 글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널리 퍼졌다. ‘맨스플레인(mansplain:man+explain)’은 2010년 <뉴욕타임스>가 꼽은 ‘올해의 단어’가 됐고,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사전에도 등재됐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 2015)는 국내에서 3만 부가 넘게 팔렸다. 

신간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창비)와 개정 출판된 <어둠 속의 희망>(창비), <걷기의 인문학>(반비) 출간을 기념해 솔닛이 8월25일 4박5일 일정으로 처음 방한했다. 강연회를 연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신청자가 폭주했다. 애초 150명 정도 수용 가능한 강연 장소를 준비했던 출판사는 800석 규모의 행사장을 다시 마련해야 했다. 최종 신청자는 1400명이 넘었다. 유료 행사 ‘페미데이’ 역시 일찌감치 마감됐다. 몇 년 전 방한한 마이클 샌델이나 슬라보예 지젝을 능가하는 대중 동원력이었다. 주요 매체가 강연 현장을 보도했다. ‘솔닛 현상’이라 부를 만했다. 

<시사IN>은 8월26일 서울 마포구 베스트웨스턴프리미어 서울가든호텔에서 리베카 솔닛을 만났다. 대담자로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서해문집), <글쓰기의 최전선>(메멘토) 등을 쓴 은유 작가가 나섰다. 독립 연구자이자 에세이스트라는 정체성을 공유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여성의 글쓰기와 에세이에 대해 1시간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회견과 강연장에서는 미처 다 말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시사IN 윤무영 8월26일 은유 작가(왼쪽)와 리베카 솔닛은 에세이스트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며 글쓰기와 에세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은유:이번에 개정 출판된 <걷기의 인문학>에 “솔닛의 글쓰기를 훔치고 싶었다”라는 추천사를 썼다. 환경운동가·철학자·페미니스트·예술가 등 다양하고도 입체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 계기가 있었나? 솔닛:이민 2세대(솔닛 어머니의 조부모는 아일랜드, 아버지의 부모는 러시아와 폴란드 국경지대 출신이다)이자 좌파 성향을 가진 가정환경이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는 트로츠키주의자였고, 외할아버지는 아일랜드의 반식민혁명을 지지하셨다. 또 내 남동생은 사회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했다(솔닛의 남동생인 데이비드 솔닛은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리던 시애틀에서 이른바 ‘시애틀 대첩’이라 불리는 반WTO 시위를 주도했다). 동생이 뉴스레터를 발간할 때 내가 도움을 주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사회 이슈들이 얼마나 응급한지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됐다. 

은유:현장 기반의 공부가 글을 쓸 때 어떤 도움이 되었나? 솔닛:일단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를 말하고 싶다. 여성으로 산다는 일은 일상적으로 굉장히 많은 위협에 시달리는 일이다. 여성도 자유롭고, 안전하게 또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나는 이를 일종의 시민권 문제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게 여성 이슈는 사적인 문제이니 그냥 이런 환경에 적응하라고 조언했다. 이를테면 좀 더 남자처럼 보이게 입어라, 아예 총을 사라, 호신술을 배워라, 생활수준이 높은 동네로 이사를 가라…. 남성 폭력이 만연한 환경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에 적응하라고 나에게 강요했다. 

은유:나는 가부장 사회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에게 부여되는 많은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페미니즘 공부가 절로 됐다(웃음). 당신에게 부여된 다양한 역할이 있는데, 일과 공부 시간을 어떻게 분배하나? 솔닛:조카를 여럿 둔 고모로서 나 역시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다(웃음). 남편이 없고, 아이가 없다는 게 시간을 절약해주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러나 활동가나 작가로서 공적인 삶이 요구하는 것들이 늘어나다 보니 사적으로 연구를 하거나 공부하는 데 시간적으로 방해를 받기도 한다. 다행히 이번 방한 일정을 마치면 히말라야에서 머물 예정이다. 그런 시간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은유:솔닛이 추구하는 인문학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남성의 인문학과 어떻게 다른가? 솔닛:페미니즘의 근간이 되는 생각은 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많은 가정폭력이나 차별 같은 불의한 일이 분리되고 구별함으로써 감춰지는데, 나는 그것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내 작업을 해왔다. 역사학자는 이거, 인류학자는 이거, 하는 식으로 각각의 학문 분야를 분리해서 보는 시각은 거부한다. 특정 분야에 국한되기보다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자 했다. 생태학이 주는 교훈이 있다면 모든 것은 상호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의 위기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보수 이데올로기가 야기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빈곤의 문제는 사회나 경제 시스템과는 무관한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으로, 이 말대로라면 서로가 서로를 책임져줄 필요가 없다. 고립주의적인 보수 이데올로기의 대립항으로 상호연결성, 의존성에 기반한 진보 진영의 사상이 인문학의 근간이라고 생각한다. 

은유:한국에서는 논픽션이나 에세이를 낮잡아보는 경향이 있다. 사사롭게 여긴다고 할까. 솔닛:미국에서도 논픽션이 비슷하게 폄하되는 측면이 있다. 시나 희곡, 소설은 고매한 문학인데 저널리즘은 쳐주지 않는 식으로. 그러나 지난 20여 년에 걸쳐 미국에서는 논픽션의 위상이 계속 올라간 측면이 있다. 

은유:솔닛의 영향인가?(웃음) 솔닛:전혀(웃음). 나는 사실 논픽션이라는 말 자체를 싫어하는데 마치 유색인종을 지칭할 때 논화이트(non-white, 백인이 아닌 사람)라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 픽션을 기준으로 하는 분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전이나 지도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런 논픽션이 세계를 소유하고, 픽션은 그 안에 있는 섬 아닌가? 나는 논픽션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은유:사람들이 나에게 ‘언제 소설 쓰냐?’ ‘시는 안 쓰냐?’라고 묻는다. 솔닛: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도 그렇게 묻는다. 그게 꼭 글쓰기가 오를 수 있는 정상인가? 되묻고 싶다. 

은유:조지 오웰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고 싶다’라고 했다. 어떤 독자가 당신의 방한 행사를 다녀와서 이런 후기를 남겼더라. ‘나에게 리베카 솔닛은 조지 오웰이 온 정도의 존재다.’ 솔닛:글을 쓸 때 ‘오웰이라면 어떻게 썼을까’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너무 감사한 평가다. 

은유:글쓰기 수업을 할 때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반비)을 꼭 넣는다. 에세이의 힘을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굉장히 공감하는데, 남성들은 난감해한다. 이 감수성의 차이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나? 솔닛:여성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남성 위주의 교육,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백인 남성 위주의 교육을 받는다.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와 책을 접하게 되고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콘텐츠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래서 많은 경우 책을 쓸 때도 남성 독자에게도 꼭 공감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나는 <멀고도 가까운>을 쓸 때 남성 독자를 타깃으로 생각하거나 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건 논픽션에 대한 이야기와도 이어질 것 같은데, 지난 반세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과거에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식민지 지배 아래 있었던 사람들이나 성 소수자,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그렇다. 논픽션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지금껏 당연하다고 여겼던 체제나 현상을 깨뜨리는 증언을 담는 것이다. 

은유:<멀고도 가까운>에서 가장 좋았던 건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었다. 독자를 말하는 주체로 끌어낸다. 솔닛:그 부분이 내가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추구했던 바다. 내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와 연결하는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 싶었다. 

ⓒ민음사 제공 8월26일 민음사 주최로 열린 ‘페미데이’에 참석한 리베카 솔닛(마이크 든 이)이 ‘공적 공간을 걷는 여성의 역사’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은유:어머니가 딸에게 가하는 억압은 쉽게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책에 나온 당신과 어머니 사이의 에피소드를 통해 여성들이 자신과 어머니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다. “아들은 곱셈이고, 딸은 나눗셈”이었던 경험 같은 것들이다. 

솔닛:<멀고도 가까운>은 내가 쓴 책 중 가장 여성주의적인 책인데, 서평 등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많이 읽히지 않았다는 게 흥미롭다. 최근에 한국에서 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았다고 들었다.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여성혐오를 페미니즘을 통해 극복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머니는 여성으로서 남성보다 더 열등한 지위, 제대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고통받았지만 또 그걸 나에게 물려준 측면이 있다. 그게 내 지난 50여 년의 삶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었는데, 이 책을 쓰면서 극복되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어머니가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한계와 어머니의 고통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보게 됐고, 어머니와의 긍정적인 경험들도 다시 되돌아보게 됐다. 

은유: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걷기의 인문학>은 20년 전에 쓴 책이다. 새로 보낸 서문에 한국의 ‘촛불혁명’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솔닛:걷기의 힘을 볼 수 있는 사례는 역사에 고스란하다. 근간에는 아랍의 봄이 그랬고, 한국의 촛불혁명이 그렇다. 공적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발휘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증거다. 100만명이 물리적인 공간에 함께 모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걷기를 통해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불확실성에는 분명 가치가 있다. 

은유:촛불집회는 공적인 감각을 몸에 새기는 경험이었다. 당신은 낙관적인 것 같은데, 광장에서 진보적인 구호를 외치고 현실에서는 보수적이고 위계적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들처럼 민주주의가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괴리가 생기더라. 솔닛:광장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이 평등을 경험했길 바란다. 이를 통해 위계질서를 거부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특히 가정의 영역에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공적 영역에서 이룬 경험이 사적 경험으로 스며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은유:싸워야 한다는 건가?(웃음) 솔닛:경험이 전염성을 갖기를 바라는 거다(웃음). 

은유:정권교체라는 큰 과제 앞에서 젠더 이슈는 뒷전이 된다. 여성 대통령에 대한 여성혐오 발언이 나왔고, ‘해일 밀려오는데 조개 줍느냐’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러한 남성중심성 앞에서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솔닛:미국에서 힐러리에 대해 사람들이 보여줬던 반응과 굉장히 유사하다. 물론 힐러리는 젠더와 무관한 이슈로 싫어할 만한 이유가 많이 있지만(웃음). 삼성의 이재용도 보자. 그 사람이 비리를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남성’이 부각되지는 않는다. 남성은 어떤 일을 저질렀을 때 모든 남성의 대표로 취급되지 않지만 여성 한 명의 잘못은 모든 여성의 잘못이 된다. 젠더를 기반으로 해서 여성 정치인에 대해 폄훼하고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트럼프는 가부장제의 모든 해악을 대표하는 존재로, 남성을 대표한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웃음). 성폭력 혐의를 받고 있는 줄리언 어산지를 보면서도 느끼지만, 사람들은 여성의 권리가 중요하긴 한데 다른 모든 것보다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지는 않는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 여성 이슈 중요하지. 근데 아직 너네 차례 아니니까 저 뒤에서 기다려.’ 이런 느낌이랄까? 가부장의 역사에 비하면 우리가 싸워온 시간은 아직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은유:말씀하신 것처럼 여성은 계속 사적 존재, 보조적 구실로 취급받아왔다. 그러다 보니 공적 자아에 대한 공포가 큰데 한국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많은 여성들이 공적 공간에서 발언하기 시작했다. 솔닛:한국에 와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한국 여성들은 지난 몇 년간 아주 훌륭한 일들을 해왔다. 노력하고 있는 처지에서는 변화가 더딘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거다. 여러분이 바꾸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오래, 깊은 뿌리를 가진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남성에게 가정과 일을 다 건사하고 있느냐고, 잘하고 있느냐고 묻지 않는다. ‘일·가정 양립’은 당연히 아내 몫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남성에게는 그런 기대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이슈들을 계속 공론화하길 바란다. 절대 포기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싶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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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엄마와 딸이라는 환상

[은유칼럼]

“맞벌이 하시죠? 수레는 혼자 있는 시간에 뭘 하면서 보내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이 담임에게 전화가 왔다. 학부모가 되고부터 핸드폰 액정에 학교 전화번호만 떠도 가슴이 철렁한다. 학교는 어쩐지 불길의 정조를 몰고 온다. 담임의 부름을 받고 불안을 안고 몇 시간 후 빈 교실에 마주 앉았을 때, 담임은 물었고 나는 순간 깜깜했다. 뭐든지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말할 게 없었다. 월수금 영어학원 간다고 둘러댔지만 고작 한 시간 반. 끝나면 아이는 또 무얼 할까.

 

상담 중 담임이 말했다. 지난주 과학 시험을 보았고 아이는 점수가 낮았고 남자애들 몇 명이 놀렸고 아이가 울었다. 수레가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삭이는 편이다. 혼자 있을 때 드라마를 즐겨보는 것 같다. 일기에 ‘정주행’한 드라마 이야기를 쓰는데 줄거리 요약을 제법 잘한다고 했다. 집에서 아이를 세심하게 살피라는 당부와 함께 상담이 끝났다.

 

그날도 이런 날씨였다. 교정을 빠져나오며 올려다본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노랗고 바람은 시렸다. 세상과 내가, 나와 아이가 분리된 느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운동장 끝에서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담임과의 상담은 아이를 아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를 아는 자리였다.


수레는 둘째다. 첫 아이 때는 교과서 육아로 임하느라 ‘9개월 이후는 물젖’ 이론에 입각해 만 9개월 되는 날 모유에서 분유로 갈아탔다. 지나고서 후회했다. 더 먹일걸. 그래서 둘째는 마냥 먹였다. 젖이 텅텅 비어 쭈글쭈글해지도록 대여섯 살까지 물렸다. 몸으로 연결된 관계는 각별했다. 내가 울면 아이의 눈에도 눈물이 찼다. 아이는 유능한 기상관처럼 내 표정 변화를 감지해 기분을 맞췄다. 그런데 난 밥만 제때 먹이는 것만으로도 허덕였고, 아이의 감정은 헤아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스스로 모성을 맹신하는 사이 아이는 열세 살이 됐다.

 

그날 밤 아이에게 학교에 다녀온 얘기를 했다. 대개 아이들이 그렇듯 겉으론 태연했다. 남자애들이 놀린 건 사실이지만 사과했고 다 끝난 일이라며 말꼬리를 잘랐다. 왜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엄마는 무조건 걱정만 하잖아” 한다. 엄마한테 말해봤자 문제 해결에 도움은 안 되고 ‘엄마의 걱정’을 해소시켜줘야 하는 문제까지 추가되는 구조를, 아이는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맥없이 울었다. 자책과 회한과 연민이겠지. 아이의 슬픔을 알아보지 못한 게 미안하고, 품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거 같아 섭섭하고, 밤이고 낮이고 일하느라 뒷등만 보여준 게 면목 없고, 무엇보다 아이의 몸에 고통을 견디는 회로가 깔린 게 안쓰러웠다. 흘깃 쳐다본 아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고통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눈물은 공유하는 우리. 그런데 아이는 왜 울었을까.

 

돌이켜보니, 난 딸이랑 닮았다. 나도 엄마를 좋아했지만 엄마에게 비밀이 많았다. 인생 고민은 막판까지 숨겼다. 고등학교 때 담임한테 말대꾸하다가 뺨 맞고 조퇴한 일을 엄마는 모르고 내가 모범생에 순둥이인 줄만 안다. 스물한 살 노조 상근을 결정했을 때도 출근 전날에야 실토했다. 말하는데 눈물이 마냥 흘렀다. 노조 활동 하는 거보다 이유 없이 운다고 혼났다. 도대체 왜 우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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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가오는 것들>에도 모녀 사이 눈물의 강이 흐른다. 주인공 나탈리(이자벨 위페르)의 딸은 출산 후 몸조리를 하다가 침대에서 느닷없이 운다. 엄마는 왜 우느냐며 이런저런 이유를 캐묻지만 딸은 말없이 울기만 한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테마가 녹아든, 내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딸과 엄마는 서로에게 멀고도 가까운 타인이다. 주변의 동성애자 친구들도 엄마에게 커밍아웃 하는 것을 마지막 과제로 남겨둔다. 성폭력 피해 경험을 엄마에게 말하는 딸은 드물다. 돌싱녀 친구들은 이혼 서류에 도장 찍고 나서 엄마에게 통보한다. 그건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효심과 자신의 감정노동을 최소화하려는 계산이 포함된 고도의 협상이다. 덜 진실한 태도는 아니다. 자식의 정체성 투쟁에서 엄마가 최후의 관문인 건 분명해 보인다.

 

그 봄날 상담 이후, 나는 친구 같은 엄마와 딸이라는 환상에서 일찌감치 퇴각했다. 모녀관계에서의 무능을 인정했다. 아이도 내게 자주 상기시킨다. 수레는 요즘은 방과 후 집에서 고양이 무지와 노는 것으로 소일하는데, 이렇게 말한다. “난 무지가 너무 좋아. 잘 놀아주고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잖아.” 이것은 언중유골. 그러니까 고양이와 달리 (엄마) 사람은 이래라저래라 한다는 뜻이다. 난 잔소리 안 하는 엄마라고 자부했는데 아이 입장에선 아닌가 보다.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 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157쪽) 구원은 과거에 있다. 엄마가 되면서 상실한 아이 적 감각을 복원하기. 이를 위해 엄마가 쓴 자식 양육서를 읽느니 딸이 쓴 엄마 이야기를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환경운동가이자 작가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앞부분에 나오는 엄마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귀했다. 사실 딸의 금발과 눈썹을 질투하는 엄마는 보편적이지 않다. 전래동화 캐릭터처럼 오싹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시기심이라는 “하나의 감정을 이성적 명분으로 바꾸고 명분을 사실로 바꾸는”(36쪽) 어머니, “내 삶에 분노를 쏟아내는”(41쪽) “나를 단 한번도 알아보지 못한”(43쪽) 필자의 어머니는 내 모습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나도 종종 딸을 향한 불안함이라는 감정을 기정 사실로 왜곡할 때가 있고, 나의 풀리지 않는 화를 아이에게 퍼붓기도 한다, 보고 싶은 면만 초점을 맞추니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으로 ‘연구 대상’ 엄마를 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딸의 지적 여정을 함께 하고 난 후, 나의 꿈은 정교해졌다. 자기가 좋은 엄마라고 착각하지 않는 엄마 되기, 아이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을 수시로 그려보기. 그저 고양이처럼 말없이 아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http://m.ch.yes24.com/Article/View/32972

* 이 글은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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