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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10] 김경미, 고통을 달래는 순서 (4)

김경미, 고통을 달래는 순서

[올드걸의시집]

같이 산 것도 아닌데 정이 드는 남자가 있다. 친구의 남편이나 남자친구다. 그들과 나는 참으로 비대칭적인 관계이다. 친구를 만날 때 같이 얼굴을 보기도 하지만 주로는 친구가 공개하는 간접 정보를 통해 그 사람의 전모를, 수다체로는 이꼴저꼴을 알게 된다. 둘이서 깨소금 쏟아지는 만남초기에는 남자들은 거의 정상성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친구는 연애 하느라 바빠서 연락조차 뜸하다. 무소식이 희소식 시즌이 끝나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하소연. (그 놈의) 그것을 알려주마 국면에 접어든다. 안건은 대동소이하다. 이기적인 행태, 제멋대로 결정, 가사와 육아의 외면, 경제적 무능, 애매한 불륜 등. 싸웠다 화해하고 다시 헤어졌다 만나고 때로 영영 갈라서기도 하고. 친구커플이 지지고 볶는 일련의 과정을 연대별 사건별로 대사까지 미주알고주알 공유하면서 나는 같이 분노하고 분석하고 연민한다. 당사자보다 더 날뛰며 완전 어이없다흥분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시댁식구처럼 네가 좀 너무했다슬며시 그들 편을 들기도 한다. 그렇게 감정의 파고를 넘나들면서 길게는 한 10년 넘게 보냈더니만 친구의 남자에게도 미운정 고운정이 드는 모양이다. 

지난겨울 친구 전남편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친구와도 남이 된 그이의 죽음이건만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이 났다. 그이는 친구의 청춘을 목련꽃처럼 피자마자 시들게 했는데 나쁜 남자도 되지 못한 사람이다. 사는 데 무능하고 그냥 이 세상에 속하지 못하고 떠돌다가 뿌리 뽑혀버렸구나 싶었다. 그이의 생이 통째로 안쓰러웠고 아빠를 잃은 친구의 아이도 가여웠다. 친구를 만나서 또 눈물 콧물 찍고. 친구는 이혼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장을 지키고 염을 하고 마지막 가는 길을 동행했다고 한다. 남편이 말썽이지 시댁과는 사이가 좋았던 친구다. 끝까지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구 며느리에게 시댁사람들이 무척 고마워했다는데, 인연의 잔인함인지 소중함인지 모를 이 사태를 전해 듣노라니 한숨이 연거푸 새어나왔다. 어쨌든 다정이 병인 친구는 다정이 철철 넘쳐 사랑하고 다정을 감당 못해 헤어지고 다정을 헤아리며 그를 보냈다.

 

햇빛들 목련꽃만큼씩 떨어지는 날 당신이

손톱 열 개

똑똑 발톱 열 개 마저 깎아준다

가끔씩 입속 혀로 거친 발톱결 적셔주면서

- 생화부분

 

한 달 전 즈음이다. 아침 일찍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꿈에 그 사람이 나왔단다. 장황하고 애처로운 꿈 설명 뒤에 한다는 말이 내가 엄마처럼 더 품어주었으면 그 사람이 이렇게 가지는 않았을 거 같아그런다. 너는 할 만큼 했다, 아이 데리고 살아야하는데 그 사람이 벌려놓은 일 뒷수습 하느라 일상이 영위되지 않아서 헤어진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더 크게 품어주는 사람도 있다고 자책이다. 기가 막혔다. 시방 네가 마더테레사를 꿈꾸느냐, 또 성직자는 남편이 아니라 남을 돌본다, 남은 거리를 둘 수 있지만 남편은 실핏줄처럼 삶이 얽혀서 더 힘든 관계 아니겠냐고 차근차근 말했다. 그리고 상기시켰다. 친구에게 들었던 그이의 행적들을. 시간은 묘하다. 과거의 어떤 악몽일지라도 아련한 그리움으로 만들어버린다. 그 망각의 힘으로 사람이 살아가겠지만,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잊지 말아야할 상처도 있는 법이다. 조금은 냉정을 되찾은 목소리로 친구가 말했다. 그 남자 순수한 거 너는 알지. 나는 안다고 했다. 네가 당했던 괴로움 너는 알지. 친구는 안다고 했다. 그럼 됐다.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시소처럼 오르락내리락 어지럽던 감정이 수평에 이른 것을 느꼈다. 평온. 그리고 슬픔 없는 십오 초의 정적 

친구에게 그랬다. 아마 얼마간은 계속 그 사람 꿈을 꾸고 아침부터 눈물바람 하고 그럴 텐데 이번 생은 마음 접어두라고. 그리고 다음 생에 그 남자 다시 만나서 마더테레사의 희생, 평강공주의 헌신, 대지의 모신과 같은 사랑의 삼위일체를 꼭 이루라고 했다. 친구는 그러겠다며 호호호 수다스럽게 웃는다. 왠지 기대되어 나도 따라 웃었다. 십년 후는 나아질 것이라며 내달리는 인생이나 내생을 기약하는 사랑이나. 헛됨에 근거하기는 마찬가지다. 망상과 일상의 구분은 희미하고 또 사랑과 욕망의 경계는 그렇게 모호하다. ‘가짜를 사랑하기 싫은 욕망이 그 욕망을 사랑하는 전도를 낳기도 하고 그러다가 진짜를 산출하기도 하니까.

전화를 끊고 나니 소설 뒷장을 덮은 것처럼 가슴이 웅웅했다. 아니다. 중간에 책갈피를 끼운 것이겠지. 삶이 그러하듯 이야기는 끝이 없다. 너에게서 나에게로 다시 그에게로. 전화의 수다에서 장문의 편지로 단문의 문자로. 끝말잇기처럼 사연은 증식한다. 어쩐지 사무친다. 한 사람의 고통은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성이 있다. 고통은 타자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타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말하고 하염없이 듣는다. 하나둘 들춰보는 먼지 쌓인 수다의 기록, 고통의 순환극이 지나고 보면 다정함의 진열장 같다. 정 때문에 상처받고 욕하다가 정든다. ‘세상에 정 주고 저물녘, 마음 허물어지지 않는 날 하루도 없는 종자들. 다정병을 위한 처방전을 베낀다. 고통을 달래는 순서란 없다. 견딘다. 다시 조금 고쳐 쓴다. 고통을 달래는 방법은 있다. 말한다.

 

토란잎과 연잎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토련(土蓮)이라고도 한다

 

큰 도화지에 갈매기와 기러기를 그린다 역시 거기서 거기다

 

누워서 구름의 면전에 유리창을 대고 침을 뱉어도 보고 침으로 닦아도 본다

 

약국과 제과점 가서 포도잼과 붉은 요오드딩크를 사다가 반씩 섞어 목이나 겨드랑이에 바른다

 

저녁 해 회색삭발 시작할 때 함께 머리카락에 가위를 대거나 한송이 꽃을 꽂는다 미친 쑥부쟁이나 엉겅퀴

 

가로등 스위치를 찾아 죄다 한줌씩 불빛 낮춰버린다

 

바다에 가서 강 얘기 하고 강에 가서 기차 얘기 한다

 

뒤져보면 모래 끼얹은 날 더 많았다 순서란 없다

 

견딘다

 

- 고통을 달래는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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