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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목동의 3대세습 풍경

[사람사는세상]

목동엄마들을 좋아한다. 특히 꽃수레 친구 엄마들은 영어유치원이 아니라 단지 놀이방에서 만나서그런지 평균적인 목동엄마들보다 소박하다. 사교육에는 불같은 열정을 태우지만 성품이 별스럽지는 않다. 인정 많고 배려 많고 돈도 많다. 수수하고 친절하다. 살림을 잘한다. 평소에 여러가지 배우는데 한참 바쁠 때 신세를 많이 졌다. 거의 매일 부탁해도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꽃수레를 거둬주고 여름엔 수영장, 겨울엔 스키장도 알아서 데려갔다. 계절에 한 번씩은 만나서 밥을 먹는다. 주로 학교와 동네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데 목동 소수자인 나에겐 ‘그사세’다. 어제도 그랬다.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보는 기분이랄까. 2010년 서울 목동. 어느 하루 시간대별 풍경.   

오전 11시 : 입시생 수용소가 된 동네    

언젠가 말했듯이 목동은 일 년에 4번 동네가 무덤처럼 조용해진다. 1,2학기 중간/기말 시험기간이다. 요즘이 그 때다. 아이들 중간고사 시즌이다. 한 엄마가 전날 웃긴 일이 있었다며 말한다. “우리 애가 친구들이랑 집앞에서 놀다가 시끄럽다고 쫓겨난 거 있지!” "진짜? 왜에?" 사연인 즉, 해질녘 2학년 남자아이들 네 명이 집 앞에서 어울려서 놀았다. 원래 말썽꾸러기들이다. 식욕이 왕성하고 목청도 크다. 삼총사가 뭉쳤으니 와글와글 시너지가 났겠지. 또 5층짜리 아파트라  조용해서 더 크게 들리긴 한다. 한참 노는데 경비아저씨가 다가왔다. 다른 데로 가서 놀라고 주의를 줬다. 이웃주민에게 신고가 들어왔다는 거다. 아이 공부하는데 시끄러워 방해된다고 그랬단다. 

수험생이 벼슬이다. 노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을 극진히 떠받든다. 더 어이없는 것은 이런 일이 종종 있다는 거다. 쾌적한 주거환경이란 곧 조용한 입시환경이다. 그것에 대해 주민들 사이에 암묵적인 동의가 이뤄진 것이다. 이게 문제다. 주변의 다른 존재와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게 공부인데, 그저 내 성취에 방해가 되는 '시끄러운 것들'은 추방하고 수학공식 하나 더 외우면서 이기적으로 자란 아이들이 '높은 점수' 올리면 칭찬 받고 다 용서되고, 그렇게 명문대학 나와서 우리사회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기에 정용진 이마트 부회장이 동네 중소상권 다 죽이면서도 일말의 죄의식이 없고  '피자도 이념적으로 소비하느냐'고 큰소리칠 수 있는 것이다.

오후 2시 : 엄마가 쓰는 아이의 '자기'소개서    

 한 엄마가 큰 애를 특목중에 원서를 넣었다. 국제중같은 외국어중학교가 또 있다고 한다. 자기소개서도 내야하니까 좀 봐달라고 내민다. 잘 안 읽혔다. 식상하고 장황했다. ‘원대한 꿈’ ‘글로벌세상’ ‘희망과 좌절’ ‘엄격한 시간관리’ ‘다양한 학교활동’ ‘넘치는 자신감’ 등등. 초6 어린이의 언어가 아니었다. “엄마가 썼구나.” “애가 쓰긴 썼는데 엉망이라서 고치느라고 나 어제 밤 샜어.” 착한 엄마다. 우리 중에 제일 부지런하고 헌신적인 모성 캐릭터다. 항상 주차장에 BMW가 시동이 걸려있거나 자전거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대신 써주고도 남을 사람이다. 글쓰기가 어디 쉬운가. 얼마나 진땀 뺐을지 눈에 선했다. 거기다가 아이 논술선생님이 자기소개서에 참고하라고 추천해주었다며 가방에서 <홍정욱의 7막 7장>을 꺼낸다. “아이 눈높이에 맞게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는 그이의 입술이 바싹 메말라있었다. 
 

애처로워서 몇 가지 원칙과 방향을 적어주고는, 애한테 쓰게 하라고 당부했다. 심사위원이 수많은 비슷비슷한 자기소개서 검토하려면 얼마나 지겹겠느냐. ‘아이언어로 명료하게’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런저런 조언을 하면서도 찝찝해서 물어봤다. “근데 남이 써줘도 되는 거야?” 그러자 셋이서 합창이다. “누가 애들이 쓰니” 그럼 불공평하다. 글 잘 쓰는 부모 있으면 유리하지 않느냐 했더니, 또 합창이다. “논술선생이 있잖아”  화폐는 신이다. 못하는 게 없다. 자꾸 깜빡한다. 대치동에서 특목중고 입학컨설팅을 받는데 몇 백이라더니 사실이다. 나는 열불이 나서 계속 중얼거렸다. “돈 없는 애들은 서류심사부터 떨어지겠다. 이거 문제 많다. 시험장에다 모아놓고 자기소개서를 쓰게 해야겠다. 공평하게.” 그랬더니 한 엄마가 순진한 소리 좀 그만 하라며 코웃음이다. “소용없어. 애들이 미리 외워가지 그냥 가니”  

오후6시 : 서울오지 고3  "공부도 해본 애들이나 하지"

심란해서 밥도 안 하고 요즘 영감을 크게 받은 <맑스주의 역사강의>를 보면서 뒹구는데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고3 담임이다. 제자사랑이 지나쳐 매일 12시까지 학교에 남아서 애들 보초 서느라 얼굴 못 본지 1년이 됐다. 근데 저녁 6시에 집에 가는 길이란다. 오늘은 왜 벌써 가느냐고 했더니 봇물을 터뜨린다. “애들이 나만 없으면 개판 5분전이야. 불 끄고 영화보고. 떠들고. 이건 뭐 수능 끝난 애들이라니까. 여기가 중3교실인지 고3교실인지 모르겠어.” 자기의 헌신을 몰라주는 애들이 미워서 팽개치고 나왔다고 식식거린다. 
후배가 일하는 학교는 본인 표현대로 ‘서울 오지’다. 강북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에 자리했다. 그간 들은 사정을 종합해보면, 애들이 가정환경이 거의 다 불우하다. 한 부모, 조부모 가정 아이들이 수두룩해서 아닌 애들을 꼽는 게 빠르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공부라는 걸 제대로 해 본적이 없는 아이들이다.  

“그런 애들이 고3된다고 갑자기 공부를 하냐고! 하고 싶어도 뭘 알아야 하지. 공부 안 하던 애들은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해도 성적도 안 오르니까 자포자기야. 그 심정은 이해해. 그래서 나는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하는데 내 맘도 몰라주고 저것들이.”  “그래도 니가 지키고 있으면 공부 한다며.”  “그땐 하는 척이라도 하지.”  “착한 애들이네. 그게 어디니. 조금만 더 지키고 있어라. 너라도 지켜야지. 집에도 챙겨주는 사람 아무도 없잖아.”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불쑥 화가 치밀어. 애들한테 ‘선생님 우리를 버리지 말라’고 막 문자오는데. 하하. 몰라. 오늘은 이렇게 됐으니까 내일부턴 다시 지켜야지.” 한결 누그러진 음성이다. 얼마전 애들 수시를 넣었는데 1등급 애들도 떨어졌다고, 명문고는 3등급도 붙었다더라며 가난한 동네 학교라서 서럽다고 푸념했다.  

오후7시 : 영어-태권도학원 가는 아이를 벌하다    

꽃수레랑 저녁을 배불리 먹고, 우리 둘 다 배가 너무 나온 거 같다;;며 산책을 가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아래층이 수런수런하다. 9세 10세 아들 연년생 키우는 집이 있다. 가끔 고성이 들린다. 아들 둘 가진 엄마는 방학 때면 애들이랑 씨름하느라 성대가 결절 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형제가 태권도복인 아디다스 점퍼를 입고 있었다. 

몇달 전 아래층 엄마를 만났을 때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우리 애 보내는 태권도 학원이 영어로 가르치거든요. 서형이도 보내세요. 내가 알려줘서 여러 명 다니는데 엄마들이 전부 대만족해요.” “아, 네에...” 아니 도대체 태권도를 영어로 어떻게 가르치지? 태권도가 우리말 종목이라 외국인도 우리말로 하던데? 수업장면이 궁금했다. 그 영어-태권도학원을 아직도 다니는가보다. 
 

“태권도복 멋지다. 벌써 검은 띠구나~” 난 붕어빵 형제가 귀여워서 말을 걸었다. 대답이 없다. 엄마도 아이도 표정이 안 좋다. 한판 한 거다. 엄마가 분통을 터뜨린다. “얘가(큰애) 오늘 아파서 와이즈만(과학)도 안 가고 영어학원도 빠졌는데 글쎄 태권도만 간다지 뭐에요! 넌 안 돼. 안 되겠어. 얜 공부하긴 글렀어.” 한숨을 내리쉬더니만 아이에게 쏘아댄다. “너 나중에 엄마 원망하지 마라. 엄마는 할 만큼 했어. 엄마, 저를 때려서라도 공부시키지 그랬냐고 엄마를 원망해도 그 때는 늦은 거야. 알았어!!!” 마침 1층이다. 1초만에 쌩하니 나가버린다. 아이가 초3이다. 중3도 아니고 고3도 아니다. 나는 중3아들한테 아직 꺼내보지 못한 대사이다. 고작 10세. 너무 늦었다고 닦달하기엔 심하게 이른 나이다. 요즈믄 초1부터 수험생이란 말이 실감났다. 

과잉양육 과잉결핍   
 
목동 거주 20년이 다 되어가니 한 엄마와 한 아이의 생애가 보인다. 목동엄마들은 자녀1인당 4인 가족 최저생계비에 준하는 사교육비를 들인다. 고등학교 자녀는 대기업 차장 월급을 사교육비로 쓴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중간기말시험 때 단기과외비는 별도다. 미국사립고에 유학 보내면 일 년에 1억이 든다. 목동에 샐러리맨도 많이 산다. 그들이 학비를 충당하는 방법은 시댁과 친정이다. 시댁에서 사교육비 지원받는 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애가 중3됐을 때 '특목고 보낼거냐?' 는 얘길 많이 들었다. '돈도 없고 실력도 없고 안 된다'고 하면, 우리집 형편을 아는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시댁에서 받어!" 암튼, 부모님 원조까지 받아가면서 언론에 보도된 대로 특목고도 가고 명문대학도 많이 가긴 간다. 

결과는 화려해도 과정은 피폐하다.
사교육의 여왕들은 돈을 들이 부어 최고의 학원에 아이를 맡기지만, 시킬수록 불안감에 시달린다. 구몬수학을 시키면서도 씨매스사고력 수학을 병행하고, 청담어학원을 다니면서도 튼튼영어를 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우리아이 도태된다고 여긴다. 특목고 가면 사교육비 더 들고 명문대학가서도 '더 좋은 어학연수'를 위해 머리를 싸맨다. 만성과잉이 만성결핍을 부르는 것이다. 문득 니체의 물음이 떠올랐다. “과잉이 원인인가 결핍이 원인인가” 당신이 지금 고통스럽다면 “생의 과잉 때문인가 생의 빈곤 때문인가”

북한의 3대세습 뉴스만큼이나 기막힌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대한민국. 북한만이 아니다. 삼성만도 아니다. 계급세습은 여기저기서 조용히 이뤄지고 있다. 그 계급재생산의 컨베이어벨트를 목도한 하루였다. 한쪽은 너무 닦달해서 난리. 한쪽은 너무 방치해서 난리. 이래저래 아이들은 병든다. '대한민국자식연합'이라도 결성해야할까. 자식들은 누구를 향해 싸워야 하는가. 어디에 전선을 그어야하는가. 더 크게 되라고 더 글로벌의 중심에 서라고 등 떠미는 이 땅의 맹모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본의 가치'를 내면화한 엄마의 안달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일구월심 자식에게 헌신하는 목동엄마들이 무슨 죄인가 싶다. 하지만 ‘자식을 부모의 의지의 산물’로 규정하는 이데올로기가 과연 누구를 이롭게 하는지, 과잉양육이 최대행복을 정말로 보장하는지, 자명한 그것에 대해 한 번쯤 의구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다 잘 살려고 하는 짓인데 왜 아이도 엄마도 자유롭지 않은지, 왜 하루도 마음 편치 않은지, 내 아이를 위한다며 행하는 일에 아이의 생각은 들어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이듯이 지금 성찰하지 않는 자도 모두 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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