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행복한인터뷰

(157)
은유의 연결 - <곁에 있다는 것> 김중미 소설가 내비게이션의 길 안내가 종료됐는데도 흙길에 나무만 무성하다. 이런 곳에 집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안고 비탈길을 오르자 단층주택 한채가 보인다. 소설가 김중미의 집이자 공부방이다. 지난 10일 만난 그는 마당에서 기르는 개 다섯마리를 차례로 어루만지며 이름과 특징을 소개했다. 집 안에는 고양이 여섯마리가 산다. ‘버려진 아이들’을 하나둘 거두다 보니 대식구가 됐다. 이곳 강화도 양도면으로 이주한 지 20년. 원래 농사를 지으려고 왔는데 ‘필요한 아이들’이 보여서 방 한칸에 청소년 공부방을 열었다. 그의 하루는 밤새 난리가 난 고양이 털을 치우는 것으로 시작하고, 저녁 7시부터 밤 10시까지 아이들 숙제를 봐주는 것으로 끝난다. 인천의 ‘기찻길옆작은학교’도 짬짬이 오간다. 김중미를 세상에 알린 (1999)..
은유의 연결 -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 그냥,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학창 시절 무슨 대회에 나가면 상을 곧잘 받았다. 화가가 되려고 서양화과에 갔다. 졸업전시회에 찾아온 출판사 편집자의 권유로 그림책에 삽화를 그렸다. 한참 일하던 이십대 후반에 난소암에 걸렸는데 투병기로 그냥 한번 그려본 만화 (2012)이 데뷔작이 되었다. 필명은 수신지. 별 뜻 없이 본명을 조합한 이름이다. 그냥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연애할 때는 여자의 핸드백도 들어주던 남자가 결혼하면 여자가 부엌에서 혼자 일하는데도 어째서 무신경한지. 왜 명절엔 남자 집에 먼저 가는지. 은근히 서럽고 말하면 치사해 ‘먼지 차별’로 불리는 일들로 (2017)라는 만화를 그려서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연재했다. 60만 팔로어의 사랑을 받은 이 웹툰은 동명..
인터뷰 후기 - 말하는 사람에서 들어주는 사람으로 “이런 책 읽자고 해서 미안합니다.” 로 글쓰기 수업을 하는 날 학인들에게 건넨 첫마디다. 이 책은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사고로 6명이 죽고 25명이 크게 다친 사건을 기록한 르포다. 아무래도 끔찍하다. 저 멀리 거제도에서 배 만들다가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서울 합정동에서 평일 낮 2시에 모여앉아 글쓰기를 배울 정도의 시간, 돈, 문화 자원은 가진 이들에게 어떻게 가닿을지, 나는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학인들의 말은 놀라웠다. 남편이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허리를 다쳐 일년 동안 투병했었다, 일은 그만뒀고 보상은 한푼도 받지 못했다, 아버지가 얼마 전까지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기에 공감이 많이 됐다, 울 아버지도 공장에서 일하다가 다쳤는데 ‘산재’라는 말을 몰랐거니와 ..
은유의 연결 - 산재피해 유가족 태규누나 김도현 태일이 엄마, 종철이 아빠, 한열이 엄마, 유민 아빠, 용균이 엄마….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이름들이다. 이들은 자식의 죽음으로부터 태어났다. 대개는 엄마 아니면 아빠였던 유가족 계보에 누나가 등장했다. “저는 청년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누나, 김도현입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2019년 4월10일 공사 현장에서 동생을 잃은 이후부터다. 세상은 동생의 죽음을 “비일비재한 추락사”로 몰아갔다. ‘욜로족’으로 살던 그는 투사가 됐다. 일하다가 죽는 일이 흔해서도 안 되거니와, 세상에 하나뿐인 ‘태규’가 죽었기 때문이다. 태규랑 용균이는 1994년생 동갑이다. ‘태규 누나’의 시간은 ‘용균이 엄마’의 시간과 자주 겹쳤다. 그는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의 일원이 됐다. 중대재해..
은유의 연결 -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 임현주 아나운서 2018년 4월12일, 당시 (MBC) ‘뉴스투데이’ 진행자 임현주 아나운서는 국내 매체는 물론 외신에까지 이름이 났다. 여성 앵커의 ‘안경’은 10년차 아나운서의 자기 발언이자 방송계 성차별 구조를 드러내는 ‘언어’로 발신됐다. 어떻게 안경을 쓰게 됐냐는 세상의 물음은 외려 그를 각성시켰다. ‘하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아홉살부터 키워온 아나운서의 꿈이었다. 단 한번도 아나운서의 경쟁력 1위가 외모라고 생각한 적이 없으면서도 몸치장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모순된 생활과 그는 비로소 작별했다. 딱 붙는 원피스 대신 편한 재킷을 입었다. 덜 꾸밀 용기를 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름다움에 대해 사유하게 됐다. 그렇게 하나씩,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며 생각의 기둥을 쌓아갔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
은유의 연결 - <퓨즈만이 희망이다> 신영전 교수 신영전(56)은 의사다.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임상의는 아니다. 질병을 낫게 하기보다 질병을 낳는 정치사회적 요인의 진단과 치료에 관심이 많은 사회의학자다. 특히 취약계층 건강 정책과 대북 의료 분야 전문가로 오래 활동했다. 그러다 보니 ‘빨갱이’ 소리를 더러 듣는다. 공포와 불안을 파는 의료민영화 등 의료 생태계를 그가 비판하면 일선에선 환자도 안 보는 ‘네가 무슨 의사냐’ 하고, 의사 아닌 그룹에서는 ‘너는 의사니까’ 한다. 의료와 정치, 의사와 시민 경계 어디쯤이 그의 자리였다. 신영전은 교수다. 20년 넘게 학생을 가르쳤고, 일간지에 칼럼도 기고한다. 최근 전공의 집단 휴업, 일명 의사 파업이 끝난 뒤 ‘의대생은 학교를 떠나라’( 9월30일치 26면)라는 글을 썼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가난하고..
인터뷰 후기 - 홍은전 작가 “무슨 심리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큰 강당 같은 데에서 일단 아무렇게나 빨리 걸으라고 해요. 정해진 길은 없어요. 그냥 가다가 부딪혀도 되고 사람들 치면서도 돼고 무조건 가래요. 수십 명이 그 강당에서 막 움직이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일이 펼쳐질 것 같아요?” 그가 물었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만 해도 몸이 졸아들어서 “난 그냥 구석에 있을래요.” 했다. “거기에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어요. 치면서 다니는 사람이 있고, 아주 빠르게 피하면서 다니는 사람이 있고, 은유 작가님이나 저 같은 부류가 있고. 저는 주저앉았어요. 너무 괴롭더라고요. 그런 광경을 보는 것 자체가.” 홍은전과 인터뷰 때 나눈 이야기다. 이런 성향이라서 우리가 한구석에서 글을 쓰는가보라며 같이 웃었다. 나는 경쟁이..
은유의 연결 - <그냥, 사람> 홍은전 작가 사범대 4학년생 은전은 딱 1년만 방황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거대한 선착순 달리기 시합 같은 임용고시가 두려웠다.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는지 알아볼 겸 노들장애인야학을 찾아갔다. 건물 입구에는 휠체어를 탄 남자 셋이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 은전은 뒷걸음질 쳤다. 난생처음 ‘실물’ 장애인을 본 몸의 자동 반응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되돌아갔다. 장애인보다 무서운 것은 내 안의 편견이란 생각이 스쳤다. 용기 내어 노들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가 2001년 8월24일 목요일 저녁 7시40분, “길 가다가 맨홀에 떨어지듯” 홀연 다른 세계로 빠져든 순간이다. 그는 노들야학 교사가 되었으나 가르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했다. 20∼30년을 방안에만 갇혀 산 사람을 야학에 오게 하는 법, 휠체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