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여름. 김동원 감독 인터뷰 풀버전_1

[차오르는말들]

#0 김동원, 애틋한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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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을 본 사람들은 거의 그랬을 것이다. 감동이 넘쳐 감독님을 존경하게 됐다. 감동의 크기만큼 감독이 궁금했다. <송환>은 곧 김동원의 자서전이었다. 그리곤 잊었다. 잊고 지냈다. 내가 송환을 감명 깊게 봤다는 사실조차. 한 달 전, 변성찬 선생님이 인디포럼에서 <끝나지 않은 전쟁>을 봤다면서 감독님 얘기를 꺼내셨다. “어, 선생님 저 그 영화 보고 싶어요. 구해주세요.” 다시 감독님을 떠올렸다. 마치 옛사랑처럼 그의 이름 석 자에 마음이 아련해졌다.

그렇게 안부를 궁금해 하고 있다가 오마이뉴스에서 취재의뢰를 받았다. 나는 ‘운명’이라고 정의 내렸다. 확대해석을 해버렸다. 너무 좋았다. 마구 설렜다. 염려도 앞섰다. 4년 전에 쓴 <송환> 감상 후기를 읽어보았다. 절절하더라. 4년 전의 내가 대견했다.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영혼을 여는 대화가 가능할까.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질문지를 써놓고 나자 네 페이지가 넘었다. 줄이고 줄여서 그 정도였다.

인터뷰 할 때도 감독님은 실망시키지 않았다. 감독님 다큐의 주인공들처럼 진솔하게 이야기 하셨다. 중간에 어느 대목에선 목이 메어 딴 데로 시선을 돌려야 했다. 기사를 썼다. 원고를 삼십 매 분량으로 줄이려고 노력했다. 아쉬웠다. 기사도 불만스러웠다. 이유는 두 가지. 전체적인 완결성이 떨어졌다.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의욕만 앞서고 어느 것 하나 특화되지도 못한 거 같고 헐겁다.

또 하나는 내가 너무 깊이 개입했다. 사랑한 티가 난다. 어떤 결론을 미리 갖고 확인하려 들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그게 아쉽다. 꼭 그런 건 아니었는데. 암튼 안에도 있지 말고 밖에도 있지 말고 중간에도 있지 말아야하는 인터뷰의 룰을 어겼다. 그래도 제법 소중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고 생각한다. 아끼는 공책 가져가서 볼펜으로 받아 적어왔는데 열 페이지다. 녹취를 안 해서 부정확한 기록이 될 수도 있겠다. 기억의 재구성이라 해도 좋다. 하지만 그 때 그 당시 내 영혼의 울림의 진솔한 기록이다. 인터뷰 풀 버전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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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호 디자이너 - 옷은 몸을 담는 건축물이다

[행복한인터뷰]
디지털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정구호라는 시스템은 늘 작업창이 여러 개 떠있다. 메인화면은 단아한 절제미의 모던스타일 여성복 ‘구호’가, 각각의 창에는 영화미술, 문구 식기디자인, 요리, 설치미술의 다양한 콘텐츠가 담겨있다. 이 모든 솔루션은 그가 짜고 그가 직접 클릭한다. 기회가 다가오면 즉시 접속하고, 판단이 완료되면 엔터키를 누름에 주저함이 없다. 평소 쌓아올린 내공과 민첩한 행동력으로 자신의 삶을 업데이트 시킨다. 하나의 몸으로 여러 번 사는 21세기형 아트전사, 정구호. 그의 삶이 작동하는 원리가 궁금하다.

상상하라 “5년, 10년 후 나의 모습 그린다.”

어린 구호는 남달랐다. TV에서 매듭공예가 나오면 곧장 재료를 사다가 그대로 재현했고, 순정만화의 캐릭터를 기름종이도 안 대고 똑같이 따라 그렸다. 남다른 눈썰미와 손재주를 타고났고, 잘 하는 만큼 욕심도 컸다. 소년 구호는 꿈꾸었다. ‘그래픽디자이너가 될 테야.’ 중학교 때부터 유학을 가려했으나 부모님의 반대가 완강했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직접 학교를 알아보고 수속을 밟아서야 떠날 수 있었다.

미국 휴스턴 대학에서 광고미술을 전공한 뒤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학교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했다. 졸업 후 그래픽디자이너로, 인테리어디자이너로 일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패션디자이너로 진로를 변경했다. 이유는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서른다섯이다.

“시작이 늦은 만큼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국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인데,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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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필의 노자주> '상선약수, 물처럼 써라'

[비포선셋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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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성인의 말씀이야 이롭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삶의 한 능선을 넘는 즈음, 마흔 목전에 접한 노자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삶의 전 영역에 걸쳐 무위사상을 펼친다. 행하지 않으면서 행하고 爲無爲, 무사의 마음으로 일하며 事無事, 무미의 마음으로 맛을 보라고 말한다 味無味.

자연이 그러하듯 ‘검박하게 순리대로’ 살라는 말일 게다. <왕필의 노자주>를 공부한 기념으로 (글써서 밥 벌어 먹는 사람으로서 심기일전 차원에서) 노자의 가르침을 ‘글 쓰는 태도’에도 적용해 보았다. 좋은 글은 좋은 삶에서 우러나온다. 그 순환구도를 생각하면 '잘 사는 법은 곧 잘 쓰는 법'이기도 하다. 무위를 행한 글쓰기. 쓰지 않으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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