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에서 온 우편물

[은유칼럼]

여성가족부에서 우편물이 왔다. 24세 남자의 무표정한 정면 측면 얼굴과 전신 사진, 주소, 범죄 사실이 담긴 ‘고지정보서’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른 것으로 성범죄자가 사는 인근 지역에 보내진다고 했다. 성범죄자 재발 방지 대책이라는데 그 우편물은 안도감보다 불쾌감만 키웠다. ‘이웃을 조(의)심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이런 행정 조처는 변죽만 울리는 꼴이다. 골목길에 나타난 범죄자라는 편견을 강화해 집안이나 사무실에 ‘상주’하는 가해자를 못보게 한다. 


성범죄자는 낯선 남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간 공적 사적으로 만난 성폭력피해여성들의 가해자는 거의 친족, 직장 동료, 고용주, 교사, 친구 같은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이런 경우를 예비하지 않았으니 피해를 입고도 그것이 성폭력인 줄 모르거나, 알아도 누구에게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지독히 외롭고 고통이 깊다. 한국성폭력상담소 2014년 상담 통계도 아는 사람에 의한 경우가 81%, 직장 내 고용주 및 상사에 의한 피해와 대학에서 상급자에 의한 피해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 두렵고 불편한 진실은 아무리 말해도 들리지 않는다. 


얼마 전 유아동을 위한 성폭력예방교육용 인형극 대본을 의뢰받아 작업했다. 5~10세 아이들의 언어와 감각이 감감해 고민이 깊었다. 성폭력 피해는 집이나 학교, 학원 등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 가족이나 관계의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 아이들에게 실제로 닥치는 현실은 험하나 교육은 착하게, 수위를 조절해야 했다. 배경은 집으로, 또래 아이들을 등장인물로, 가해자는 장난이나 피해자는 폭력이라고 느끼는 사건을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내 몸은 나의 것이며 남이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는 자아 인식 확립을 교훈으로 무난한 결론을 맺었다. 


이 작업에서 내가 정작 욕심낸 메시지는 진실을 ‘듣는’ 용기였다. 자식이 성폭력 사건을 터놓기도 힘들지만 말했을 때 엄마의 태도는 어떠할까. 부정하거나 꾸짖는다. ‘니가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 라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몇 가지 이유다. 엄마들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교육을 받았을 테고 자신의 묻어두었던 피해 경험이 떠올랐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딸들은 두 번 아프다. 가까운 사람의 도움이 가장 절실한 순간 손을 내밀었을 때 뿌리치는 엄마, 나중에 가해자와 함께 엄마가 아이에게 사과하는 장면을 극본에 넣었다. 듣는 능력이 퇴화한, 나를 비롯한 어른들 교육용으로.


나는 아직도 미안하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내게 터놓은 그 친구에게. 가해자가 친족이었고 아홉 살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 ‘그랬구나...’ 말끝을 흐리며 어정쩡하게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그 친구는 더 말하고 싶었을 텐데 난 듣는 법이 서툴렀다. 세월이 흐르고 성폭력피해여성들을 인터뷰할 때 물었다. 피해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무어라고 말해주면 가장 좋은지. 이렇게 답했다. “힘들었겠구나. 나한테 얘기해줘서 고마워.”


진실은 말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듣는 데 있는 것이다. 말할 권리 ‘the right to speak’와 들릴 권리‘the right to be heard’는 영어로 같은 표현이다. 그러니 집집마다 당도해야 할 것은 가해자의 신상 명세가 아닌, 피해자의 들릴 권리가 담긴 서툰 말이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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