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도서관, 모텔, 버스, 술집...기억에 남는 장소다. 남편과의 연애는 삶과 분리되지 않았다. 주말마다 집회에 같이 나가고 술 마시는 자리나 공부할 때나 항상 옆에 있었다. 사노맹에서 하는 무슨 강좌에도 손잡고 다녔다. 종로 어디쯤 골목길 같은데 장소와 배운 내용이 하얗게 지워졌다. 낡은 책상의 삐그덕 거리는 소리랑 옆자리 남편의 착한 웃음만 흐릿하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 했다. 잉꼬 같은 동지였다. 그 시절엔 그랬다.
며칠 전 다퉜다. 이과지망생 아들한테 남편이 ‘너 카이스트 가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다. 세 명이 자살했을 시점이다. 나는 순간 발끈했다. (물론 성적도 안 되지만) 그 죽음의 소굴에 왜 아들을 넣으려고 하느냐고 말했다. 남편이 자살은 어느 대학이나 있는데 한겨레가 부풀려 보도했고 그런 편향된 기사에 부회뇌동 한다며 나를 비난했다. 또 경쟁으로 애가 상처받는 게 싫으면서 왜 목동을 고집하느냐 따져 물었다.
몰락 후부터 남편은 줄곧 이사를 주장했다. 아들은 전학가지 않겠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반대했고 난 아들 편을 들었다. 그 뒤로 전세자금이 급등해서 선태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이제 와서 이사문제를 단순화 시켜버리는 태도에 어이없고 화가 났다. 불만의 파도가 밀려왔다. 남편의 사고는 늘 이분법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 그 사이의 무수한 의미와 복잡한 변수를 사유하지 않는다. 그런 단순한 세계관이 나에게 명쾌한 자극을 주거나 균형을 잡아줄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대개는 절망스럽다.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이 나 철학 공부할 때 중구난방으로 하지 말고 소크라테스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라 얘기했고, 일본 가자니까 한국도 좋은 데 우리나라도 모르면서 왜 외국을 가느냐고 했고, 내가 삼성 불매해서 삼성증권은 안 된다니까 대신증권은 지역감정 조장하는데 마찬가지라고 했고... 이런 얘길 당신 입에서 들을 때, 난 흠칫 놀라.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어쩌면 당신이 예순 일흔 살 됐을 때 가스통 들고 우익노인 돼서 시위할지도 모르겠단 생각까지 들어.
잘 따져봐. 얼핏 다 맞는 소리 같은데 엄청난 모순이 존재해. 공부에 시작과 끝이 어디 있어. 철학은 삶의 기술이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공부야. 그걸 왜 소크라테스부터 하느냐고. 내가 학위 따려는 것도 아닌데 서양철학 계보 꿰서 뭐하겠어. 흥미만 잃지. 사는 동안 누구나 학생이어야 해. 스물 서넛까지 공부한 걸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힘들지. 세상은 계속 변하니까. 삶에 끝과 시작이 없듯이 공부도 마찬가지 아닐까. 자기가 꽂히는 부분부터 시작해서 해나가고 알아가는 게 진짜 공부라고 생각해.
한국도 모르면서 일본을 가느냐고? 그렇게 따지면 서울도 모르면서 당신은 충주는 왜 가나. 양천구 음식점 샅샅이 다니고 강남구 음식점 가서 외식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우리나라에 굶는 사람 많은데 왜 아프리카랑 캄보디아 가서 봉사하느냐고 트집 잡는 사람들 꼭 있더라. 우리나라가 6.25때 외국에서 원조도 많이 받았는데 그런 생각은 안 하지. 자칫 자국이기주의-민족주의 감정으로 빠질 위험의 소지가 다분한 발상이야.
조선일보 불매 운동할 때 진보 일부세력이랑 보수언론이 그랬어. 중앙이랑 동아랑 뭐가 틀리냐! 삼성불매도 그렇게 말하겠지. 현대나 엘지나 대기업 다 똑같다! 오십보백보가 아니야. 삼성에서 백혈병으로 100명 넘게 죽었어. 노조도 없어. 엘지는 그 정도는 아니야. 엄연히 달라. 더 악랄해. 그걸 알고 느끼면, 거기서부터 실천하면 돼. 지역감정이 우리사회 모순이라고 생각하면 느끼는 자가 거기서부터 하면 되고. 전교조선생님은 교육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 자기 삶의 터전부터 운동하는 거잖아. 각자 처한 위치에서 절박한 삶의 문제를 풀어가야지.
거기다가 대고 하나의 잣대를 들이대면,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 아니겠어? 이건 전형적인 가치에 물타기 수법이야. 당신이 어떤 면에서는 유연하고 합리적이어서 내가 배울 점이 많은데 가끔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면서 삶을 관념으로 재단해서 단순화시킬 때, 난 깊은 절망을 느껴. a가 아니면 전부 not a인 건 아니잖아. 그 중간에 무수한 변수가 있다고. 노숙자가 다 게을러서 노숙인 신세가 된 건 아닌데 사람들은 그렇다고 생각하잖아.
합리적인 사고가 다 옳을까? 무상급식 논쟁 때도 그렇듯이 합리성 효율성 운운하는 논리는 대개 강자의 이익에 복무하지. 삶은 절대로 몇 가지 경우의 수와 도덕론으로 적용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아. 그래서 삶이 힘든 거 아니겠어. 난 당신에게 등 돌리기 전에 더 나은 삶과 관계를 위해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어. 이러려고 철학 공부도 하는 것이고...’
전송했다. 저 건너 그에게로. 세월이 우릴 갈라놓았다. 남편과 나는 조금씩 벌어지다 멀어졌다. 손을 휘저어 보는 중이다. 아직은 보인다. 뭐 사실, 연애하고 신혼 때도 ‘감성의 격차’는 늘 존재했다. 눈물 흘리면서 잠 못 들고 연연하고 불합리한 상황을 분석하고 현실을 연구하고 편지를 쓰는 건 늘 나였다. 안간힘은 원래 상처받은 자의 몫이다. 삶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불합리를 해소하지 못하면 살 수가 없었으므로 그래야 했다. 우린 멀어진 채로 너무 안 변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야할 길. 글쓰기 수업을 준비했다. <페미니즘의 도전>을 다시 읽었다. 나를 위한 처방전 같았다. 평생을 속 끓인 ‘여성으로서 겪어 온 모든 문제’가 다 들어있었다. 특히 이 대목. “삶에 존재하는 다층적인 억압과 고통을 복잡하게 사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나 수구세력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남편에게 내가 꼭 하려던 말이 아닌가.
이번 주 과제는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영감을 받아서 나의 세계관과 사회적 규범이 충돌한 사례를 써오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이번 과제는 유독 힘들다’는 글이 올랐다. 원래 삶과 감정에 직면하는 일은 힘들다. 고통스럽다. 모든 일이 그렇듯 습관이 되기 전엔 그렇다. 하나 둘 용기 있게 써냈다. 생애를 압축한 캡슐 같은 글들. 술술 읽혔다. 우리사회 모순을 온몸으로 체화한 경험들. 술처럼 썼다.
은행에서 문제가 생겨서 따졌더니 남편을 데려오라고 했다는 옥기샘의 일화. 한 인격적 주체이기 전에 누구의 아내이자 딸이자 어머니로 호명되는 여성의 처지가 읽혔다. 아직 비혼인 귀선 씨는 마트에서 시식할 때 "아이들 밥 반찬과 남편 술 안주에 좋아요."라는 말을 들으면 매우 불쾌하다며 "모든 여자가 꼭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장을 보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말했다. 또한 화장 안 하는 이들에게 ‘여자답게’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여성도 남성도 아닌 ‘나답게’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열 아들 안 부러운 무남독녀 외동딸 솔이 씨는 엄마의 과도한 관심의 그물에 뒤덮인 채 파닥였다. 좋은 대학 가라, 취직해라, 결혼해라, 애 낳아라로 이어지는 닦달의 영원회귀. ‘엄마의 카메라를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수많은 비밀이 존재한다’는 정연 씨의 글귀에 딸들은 마음 아프게 공감했다. 아빠에 대한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 이제는 울지 않겠다고 털어놓은 민서씨, 일손을 놓은 누나와 형에 관한 안타까움을 터놓은 병채 씨 등 가족은 자본주의적 욕망과 모순이 충돌하는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센 책이다. 남자들의 의견이 궁금했다. 한준 씨는 예의 그 해맑은 웃음으로 “불안했다”고 실토해 웃음을 자아냈다. “여자들이 이 책을 다 읽으면 뺏기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죠.” 혜성 씨는 “이 책은 어차피 페미니스트들만 읽지 않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종철 쌤은 이 책의 예시가 편파적이라고 지적했다. 본문 중 “대학생 수련회에서 1학년 여학생은 술을 따르거나 노래를 부르고 4학년 여학생은 음식을 만들거나 시중드는 일을 주로 한다...여성은 나이에 따라 ‘애인’으로서 노동하거나, ‘어머니’로서 노동한다."를 지목하며, 실제로 이런 일이 얼마나 일어나겠냐고 반문했다.
여성들이 조심스레 “나는 경험했다.” “나도 그랬다.” 고 말해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대학수련회 사례는 직장회식으로 이어졌다. 여성을 도구화 하는 끈끈한 회식문화를 고발한 명운씨와 지연씨의 글이 이를 증명했다. 성당이란 장소에서 여성의 역할 또한 다르지 않았다. 지혜 씨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성당에 다니는 여성들은 고달프다. 아침부터 젓갈 팔기를 시작으로 국수 삶기, 설거지, 주방 청소를 하는 동안 신자들은 젓갈을 구매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점심식사를 먹는다. 그동안 남성 신자들은 결정 사항을 나누거나 각 단체별로 논의해야 할 안건을 보고 한다. 이들 중심에는 사제가 있다. 수녀는 없다....성당에 다니는 여성들에게는 의사결정권이 없다...성당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지지고 볶고 끓이고 쓸고 닦는' 모든 일은 고스란히 여성들의 몫이다.”
이밖에도 어느 정당에서 당직자로 일하는 연주씨는 풍요로운 진보를 표방하기 위해 전시행정식 제도를 마련해놓고 이에 무성의하게 대처하는 남성들의 태도를 질타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흔해만 보였듯이, 여성에겐 여성적인 억압이 피부처럼 익숙하다. 이 불합리한 삶의 조건을 직시하고 기록하는 일이 '글쓰기'이다. 너도 쓰고 나도 쓰고. 숱한 시행착오를 밑거름 삼아 글을 꽃피워야 하리.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날 때 좀 더 성숙하고 자유로운 영혼일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