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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삶공동체

충무로인쇄골목 - 삶을 실어 나르는 인생길


개구쟁이 꼬마 서넛이 팽이치기라도 할 것 같은 아련한 골목길이다.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내려온 오후 두시의 도톰한 햇살이 울퉁불퉁한 바닥에 고인다. 그 좁다란 길 위로 머리에 쟁반을 인 밥집 아줌마가 잰 걸음을 옮기며 단역배우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종이를 실은 삼륜차와 오토바이가 곡예를 하듯이 서로 비껴간다. 양 옆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쇄소 미닫이 문틈으로 기계 굉음이 새어나온다. 허름한 골목길에 어시장 못지않은 활기가 넘친다.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비슷비슷한 골목길이 실개천처럼 이어지는 곳. 서울 충무로 인쇄골목 풍경이다.


영화의 고장답게 마치 거대한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충무로 일대에서는 각종 인쇄물만큼이나 다양한 삶이 만들어지고 있다. 인생이라는 장편영화를 찍는 주연배우들. 봄의 전령사 분장이라도 한 듯 꽃분홍색 니트 곱게 차려 입은 전명자 씨(61세)도 그 중 하나다. ‘한림제책’이라는 제본소를 85년부터 부부가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