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 이불과 베개 새것으로 바꾸고 벽으로 놓던 흰머리 창가로 두고 잔다 밤새 은현리 바람에 유리창 덜컹거리지만 나는 그 소리가 있어 잠들고 그 소리에 잠깬다, 빈방에서 적막 깊어 아무 소리 들을 수 없다면 나는 무덤에 갇힌 미라였을 것이다, 내가 내 손목 긋는 악몽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먹은 것 없어도 저녁마다 체하고 밤에 혼자 일어나,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바늘로 따며 내 검은 피 다시 붉어지길 기다린다 이별은 언제나 예고 없이 온다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어 잊고 산다 어리석어 내 생을 담은 한 잔 물이 잠시 심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정일근 시집,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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