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은 철공소 2층은 미술작업실이다. 낮에는 철공소의 에너지가 넘치고 밤에는 창작의 열기가 뜨겁다. 쇳소리와 북소리가 어우러지고 허름한 식당 간판은 그대로 ‘작품’이다. 공업과 예술이 공존하는 이곳은 ‘문래예술공단’. 회화․ 춤․ 사진 등 64개 작업실에 150여 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산다. 전시회도, 거리공연도 열린다. 예술창작촌이 지역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얼핏 봐서는 모른다. 70년대 오래된 공업지역일 뿐이다. 낡고 횡한 건물 안에는 전봇대만한 철근들이 누워있다. 드르륵 드르륵 둔중한 기계음과 불꽃같은 파열음이 교차한다. 좁은 도로를 다 차지하고 지나가는 커다란 트럭들, 군청색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만이 부지런히 오간다. 거기에 겨울철 오후 4시의 잿빛 공기가 덧입혀져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보인다. 언 땅을 뚫고 초록색 몸뚱이를 밀어 올리는 새순처럼 차가운 콘크리트 벽면마다 알록달록 나비가 그려져 있다. 몇 걸음 가다보면 또 어딘가에 나비가 앉아있다. 인근 화가의 작업실에서 날아온 녀석들이다. 철대문에 쇠작업 노동자가 유머스럽게 인사하는 모습도 있다. 그렇다. 이 지역 건물 곳곳에는 화가의 방, 조각가의 방, 사진가의 방, 예술단체의 사무실, 무용가의 연습실이 숨어 있다. 그들 예술가의 손길과 눈길이 더해져 문래동 일대에 활력을 불어넣는 이곳, 문래예술공단이다.
작업장 64곳, 작가 150여명 ‘예술가 군락지’
예술가들이 문래동으로 모이기 시작한 것은 5,6년 전이다. 공장 이전 정책과 재개발로 단지 안 업체들이 옮겨가자, 임대료가 급등한 홍대·대학로 등에서 밀려난 작가들이 알음알음 빈 사무실에 둥지를 틀었다. 왜 문래동인가?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다. 3.3㎡당 월 임대료가 1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2006년까지 창작실의 숫자는 10여 개에 불과했다. 그들의 활동 또한 서로간의 사적인 교류만 조금씩 이루어졌을 뿐 작업실을 벗어나서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현재 64개 작업실에 150여 명의 예술가들이 활동한다. 회화, 조각, 사진, 디자인 등의 시각예술과 연극, 무용, 전통악기, 굿, 풍물 등의 공연예술을 아우르고 있다. 비평가, 도시사회학 연구자, 문화 활동가 등도 활동 중이다.
“쿵쾅쿵쾅 낮에는 소란스럽지만 밤에는 조용하니까 작업하기 좋아요. 집이 이 근처인데 작업실을 넓게 쓰고 싶어서 알아보다가 문래동을 소개받았습니다. 저렴한 임대료가 매력이죠. 반면에 난방이나 화장실이 불편해요. 수도가 겨울에 얼었다가 봄에 풀려요. 주변 분위기도 좀 스산하고.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았어도 번지르르한 오피스텔에선 안 들어갔을 거예요. 작가들은 이런 분위기 즐겨요. 오히려 자극을 받으니까요.”
재작년에 입성한 서양화가 양해영 씨. 그의 작업실로 올라가는 입구는 건물과 건물 사이 사람한 명 지나갈 정도의 좁고 낡은 삐그덕 거리는 철재계단이다. “재료비만 있으면 이걸 천국의 계단으로 만들 수도 있다.”며 웃는다. 이어 “석탄공장도 살려서 아트빌리지로 만드는 등 낡은 건물을 살리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며 “노후 된 건물이 추해 보여도 이대로 유지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임대료도 싸고, 민원도 없고, 오감이 깨어난다
문래동 사거리 대로변 건물 2층에는 ‘한국춤교육연구회’가 입주했다. 김기화 대표는 영등포문화원에서 강사로 활동하면서 ‘영등포’와 인연을 맺고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문래동이 교통요충지라서 접근성이 좋아요. 여성단원들이 밤 작업이 길어지더라도 큰길가라서 걱정이 없고요. 또 무용은 공간 확보가 중요한데 임대료도 저렴하고 2층이라 짐 오르고 내리기도 편해요. 북치고 음악틀고 큰 소리가 나도 민원이 없어요. 여러모로 맞춤이지요.”
한국춤연구회는 문래동에 온 후 <화훼벽><미알할멈이 들려주는 우리춤이야기> 등 두 편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그 과정에서 창작촌에 입주한 일러스트레이터 이소주씨의 도움으로 홍보책자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대학로는 공연예술인들만 모여 있는데 여기엔 시각예술가 외에 다양한 분야가 함께 있어 시야가 넓어지고 트렌드를 읽을 수 있어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대표는 오는 4월 개최되는 여의도 봄꽃축제 퍼레이드의 연출을 맡는 등 지역을 기반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치 1번지, 공업지구로만 알려졌던 영등포구가 문화예술취약지구였는데 문래동이 번성하면서 갑자기 부자가 됐다”고 기뻐했다.
이렇게 하나둘 모여든 예술가들은 ‘문래예술공단’이라는 자발적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한 달에 한 번 반상회를 열어 서로 교류한다. 어떻게 지역 예술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한다. 예술가들은 문래예술공단이 뉴욕의 소호거리나 베이징의 798예술특구처럼 예술가들이 모인 문화 중심지로 진화하기를 바란다. 또한 문래동 지역민의 삶에 접속하고자 하는 예술,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예술의 사회화를 모색하고자 노력한다.
‘오픈스튜디오’ ‘물레아트축제’ 등 교류 활발
지난해 봄에는 입주 작가들의 작업실을 일제히 개방하는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열어 창작촌의 의미와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널리 알렸다. 6월에는 일종의 거리축제인 ‘경계없는예술프로젝트@문래동’으로 지역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경계없는예술센터의 대표 이화원 교수(상명대·공연학부)는 “철공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수일과 심순애’를 소재로 삼았더니 호응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10월에 열린 연합축제인 ‘물레아트페스티벌’은 회회, 사진, 비디오아트 등 전시행사와 다큐상영, 마임공연, 아이디어 난장토론판, 해외작가 워크숍까지 한 달간 알차게 진행됐다.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도 호응이 좋다. 2008년 8월부터 약 3개월에 걸쳐 지역 저소득층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실시, 문래예술공단 예술가 15명, 지역아동 50명이 참가했다. 올해는 문래예술공단 인근의 지자체와협의 체계를 갖추어 지역문화 예술교육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문래창작촌은 몇 년 사이 국내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도심 속 대규모 창작촌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이곳의 상징적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도시 한 복판에 위치했다는 것, 또한 재래산업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예술촌이 덧입혀졌다는 것입니다. 오르세미술관 등 유휴산업시설을 이용해 문화시설로 변경하는 경우는 많지만 문래창작촌처럼 산업과 예술이 공존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매우 특이한 사례죠.”
김윤환 도시조형연구소장은 “예술과 재래산업이 조화롭게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곳이 문래동이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문래예술촌의 장점은 예술적 방법으로 도시를 재생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문래동처럼 과거 공업지역이었던 북경의 798지구의 경우 창작촌으로 변모하면서 연간 2조원 규모의 미술품이 거래되고 있고, 그곳을 찾는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낙후된 공업지역에 대한 예술의 개입은 해당 도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드러내어 개성 있고 살만한 도시를 꿈꾸게 만든다. 아무도 찾지 않던 문래동 철재상가 단지에 창작촌이 들어서 있다는 이야기가 외부로 알려지면서 조금씩 이곳을 찾는 발걸음이 늘어나고 있음은 이를 말해준다. 올해는 문래동이 더욱 북적일 듯하다. 해마다 열리는 문래예술공단 오픈스튜디오(5월), 경계없는예술프로젝트 거리연극(6월), 물레아트페스티벌(10월) 외에도 야외작업 프로젝트<옥상미술관>, 한중교류전 등이 준비 중의다. 사람과 예술과 산업의 향기가 어우러질 문래동의 봄을 기대해본다.
한국전파진흥원 2009년 2월호 '아름다운소통'
사진설명/ 예술가들은 문래동 3가 지역민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극단 몸꼴의 작업장 모습(아래)과 화가 양해영씨의 작업장(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