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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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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프면 당신도 앓으셨던 엄마의 기일 엄마의 기일이었다. 돌아가신지 3년이 흘렀다. 긴 시간이었다. 여자에게 엄마의 죽음은 아이의 출산에 버금가는 중요한 존재사건이다. 엄마의 죽음으로 나는 한 차례 변이를 경험했다. 세상을 감각하는 신체가 달라졌다. 삶이라는 것, 그냥 살아감 정도였는데, 엄마를 통해 죽음을 가까이서 보고 나니까 ‘삶’이라는 추상명사가 만져지는 느낌이었다. 삶은 이미 죽음과 배반을 안고 시작된다. 그것이 ‘인생 별 거 없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의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죽으면 한 줌 재로 될 몸뚱이 나를 다 쓰고 살자’는 억척스런 삶의 방식의 변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엄마의 딸. 굳센 금순이가 됐다고나 할까. 이것은 존재의 깊이와 상관없는 강도다. 단단함. 억척스러움 같은 거...
반복을 견디자 “귀에서 불난다. 일단 끊자.” 겨우 달래 전화를 끊고 핸드폰 액정을 보니 60:44 라고 찍혔다. 한 시간 넘게 통화했다. 귀가 아직까지도 욱신거린다. 다짜고짜 멋지게 죽는 방법을 물어오는 그에게 다정하게 위로의 말을 건네진 못했지만, 매정하게 끊어버릴 수도 없었다. 두서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어떤 사건이 있었다. 자기는 교사로서 당연히 말려야했고 제지했는데 아이들이 “선생님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고 그게 서운하단다.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상처받은 거다. 교직을 때려치우고 싶을 만큼. “모든 걸 다 걸고 아이들을 사랑했는데” 돌아오는 건 배신감뿐이라고 한숨짓는다. “애들로서는 뭐 할 말 했네. 애들 입장에선 당연한 말이야.” “뭐? 나도 애들은 이해해. 그런데...” “고2면 몇 살이..
대학로, 봄 여름 겨울 그리고 김광석 겨울-봄, 정미소 정미소. 대학로의 구석의 카페다. 카페모카가 맛있다. 머물고 있노라면 정이 흐르고 미소가 고인다. 이건 어디까지나 애정 충만한 나의 해석이다. 겨울부터 봄까지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그날은 내가 늘 앉던 자리, 창밖 풍경이 예쁘게 편집되는 그 자리에 다른 이가 앉아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창가 바로 앞에 앉았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더니 삼십여 분 여유가 생겼다. 건빵 봉지 속 별사탕처럼 내겐 너무 달콤한 보너스. 커다란 통유리로 햇살이 들어찼다. 눈이 부셔 몸을 뒤로 빼 앉았다. 미동도 없이 멍하니 앉아 커피를 기다리는데 어떤 고요가 차올랐다. 선방에 앉은 것처럼 몸이 텅 비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이 시간을 붙들어 두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공간의 아름다움은 카메라가 기록하지만, 시간..
어느 무명작가의 책상 얼마 전에 ‘휠체어 여행생활자’를 만났다. 서른 즈음에 급작스런 유전질환의 발병으로 근육에 힘이 없어져 걷지 못하게 된 중도 장애여성이었다. 수동휠체어를 돌릴 힘이 없어 전동휠체어를 탄다. 그런데 그 휠체어를 몰고 정선5일장부터 제주도, 인도, 미국, 일본, 호주까지 가고 싶은 곳을 다 가면서 사는 여행생활자였다. 이야기를 하면서 재밌는 사실을 알았다. 원래 여행을 좋아해서 대학 때도 배낭여행을 많이 다니다가 회사에 들어가니 여행을 할 수 없더란다. 직장인들의 그 고정 레퍼토리 ‘회사 때려치우고 여행이나 하면서 살아갈까’를 그 역시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불편해져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면서 비로소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휠체어가 날개다.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을..
아들의 시험기간 # 수학점수 파동 아들이 중학교 입학하고 첫 시험. 그러니까 중간고사를 봤을 때다. 수학을 49점 받았다. 내 눈을 의심했다. 94점이 아니라 분명히 그것은 49재 할 때 그 숫자. 사구팔구할 때 그 숫자. 49점이었다. 어이상실. 초등학교 6년 동안 거의 백점이었는데 아무리 중학교가 어려워도 그렇지, 어떻게 몇 개월 사이에 수준이 이렇게까지 추락하나. 납득이 가지 않았다. 화가 치밀었다. 아들이 아니라 남편한테. 입술을 앙 깨물고 문자를 넣었다. ‘오늘 부로 당신은 해고야!’ 아들은 남편한테 주2회 과외를 받았다. 남편은 자기가 수학경시대회에서 전교1등이었고 대학 때도 수학성적이 제일 좋았다고 자랑했다. 결혼 후에도 머리가 복잡할 때면 연습장 펴놓고 샤프 들고 ‘수학의 정석’을 풀길래 믿었다. 학원비도..
눈물 젖은 김치 서랍을 열었다. 유신시대 복장규제라도 내려졌는지 온통 검은 계통 옷 뿐이다. 편하게 폴로셔츠를 입으려다가 바로 옆에 있는 노란카디건을 꺼냈다. 비오는 날 기분전환을 위해 노란색 우산을 쓰는 것처럼 슬픔이 내리는 몸에 환한 노란우산을 씌웠다. 차를 몰고 성산동으로 갔다. "지영, 묵은 김치 한통 줄까?" 며칠 전 언니한테 문자가 왔고 그걸 받으러 가는 길이다. 하늘은 촉촉한 잿빛이다. 며칠 잠을 설쳤더니 어질어질한데 비까지 부슬부슬 내린다. 누가 등을 치면 몸에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시야가 흐려지고 길이 미끄러웠다. 백미러도 잘 안 보였다. 사고가 나면 안 되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자고 나를 다독여가며 가까스로 차를 몰았다. 언니네 집 앞에 장이 섰길래 수박을 살까 참외를 살까 고민하..
노희경의 '위로의 어록' 2005년 6월 17일, 민언련(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에서 노희경 작가와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KBS 창사특집극 [유행가가 되리] 란 드라마가 3월의 좋은방송으로 선정되었는데 그것을 기념한 간담회였다. 전날 그 소식을 접하고 노희경님의'사인'을 받으러 갔다. 사정이 생겨 늦게 가는 바람에 30분 지각생으로 빼꼼이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정면에 노란 커트 머리의 작은 여학생 같은 분이 앉아 있었다. 바로 노희경님이었다! 오호! 지면을 통해서 사진으로만 보다가 실물로 보니 어찌나 반갑고 좋고 설레던지^^ 대략 50여명 정도 참석했다. 나는 노희경님 '글 팬' 이지만 '얼굴팬' 라인에 앉고 싶어서 조금 앞부분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인생은 덩굴 벗어나면 또 덩굴이다 "혼자 산다고 해서 짐이 덜어지는 ..
모유수유 6살까지 괜찮다네 양재역에 있는 '최재민 소아과'에 취재를 갔다. 재개발을 앞둔 건물이라서 '강남'이라 하기 민망하리만치 허름했다. 요즘은 자기 이름을 내건 병원이 별로 없다. 연세치과, 리더스피부과, 꿈나무소아과, 속편한내과 등등의 병원들 사이에서 오히려 낡고 오래된 간판에 새겨진 이름 석자가 믿음직해보였다. 그리고 의사선생님을 만났는데 역시나, 소신파 의사선생님이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모유수유'에 대한 의학적 소신이다. "모유수유 반드시 해라. 누구나 할 수 있다. 동물의 왕국 사자를 봐라. 방법은 간단하다. 낳자마자 엄마 품에 올려놓으면 알아서 먹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걸 가로막는 장치가 너무 많다. 신생아의 필요량은 하루에 30cc. 그걸 10번에 나눠 먹이면 한번에 3cc. 아주 극소량이다. (아이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