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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눈물 젖은 김치

서랍을 열었다. 유신시대 복장규제라도 내려졌는지 온통 검은 계통 옷 뿐이다. 편하게 폴로셔츠를 입으려다가 바로 옆에 있는 노란카디건을 꺼냈다. 비오는 날 기분전환을 위해 노란색 우산을 쓰는 것처럼 슬픔이 내리는 몸에 환한 노란우산을 씌웠다. 차를 몰고 성산동으로 갔다. "지영, 묵은 김치 한통 줄까?" 며칠 전 언니한테 문자가 왔고 그걸 받으러 가는 길이다. 하늘은 촉촉한 잿빛이다. 며칠 잠을 설쳤더니 어질어질한데 비까지 부슬부슬 내린다. 누가 등을 치면 몸에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시야가 흐려지고 길이 미끄러웠다. 백미러도 잘 안 보였다. 사고가 나면 안 되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자고 나를 다독여가며 가까스로 차를 몰았다. 언니네 집 앞에 장이 섰길래 수박을 살까 참외를 살까 고민하다가 노란참외가 눈에 들어와 참외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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