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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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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다소 견딜만해진다는 것 11월 15일 합정동에서 작은 북토크쇼가 열렸다. 지난5개월 성폭력피해여성들과 글쓰기수업 하면서 쓴 글을 모은 문집의 발표회 자리다. 제목은 . 성폭력이 반복되는 현실, 고통이 영원회귀 하는 상태와 굿바이 하자는 의미가 담겼다. 참가자들에게 공모해서 뽑힌 제목이고, 표지디자인도 디자이너로 일하는 참여자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과정이 쉽지 않았다. 어떤 글을 실을 것인가, 누가 참가할 것인가, 글의 제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낭독할 분량과 내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결정과 선택의 순간이 회전목마처럼 돌아와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버겁고 막막한 상황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조율하고 이해하고 행하면서 한 고비 한 고비 넘겼다. 비교적 효율과 성과 위주로 살아온 삶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글쓰기의 최전선 8기 시작합니다 글쓰기는 자신과의 대화입니다. 대화를 위해서는 생각과 표현을 담아낼 자기 언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지식을 쌓아도 자기를 아는 것, 즉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기 인식의 방편으로써 글쓰기는, 외국어를 공부하듯 새로운 언어 감각을 기르는 일입니다. 지속적인 동기 부여와 반복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글쓰기의 최전선’은 읽고 대화하고 쓰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사람은 곧 자신이 읽고 쓰는 것으로 정체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에세이, 결코 사적인 문제일 수 없는 사랑과 가난에 관한 사회학적이고 섬세한 통찰의 글, 세상과 사물을 보는 감각을 길어낸 빼어난 시와 산문을 읽습니다. 책의 내용에 구체적 삶을 비추어 글 쓰는 일은, 나의 욕망과 ..
고3 엄마로서의 마지막 수업 + 수업 마지막 수업 날, 뭔가 포옹이라도 하고 끝냈어야하는데 저녁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후다닥 자리를 나와서 영판 아쉽습니다. 7기 수업 일정표 짤 때만 해도 12차시 수업이 수능시험은 전전날 이라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저에게 고3 엄마로서의 자의식이 형성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수능 열흘 전 즈음에야 발등에 떨어진 불을 어쩌지 못해 안절부절 했고, 마땅한 노릇을 찾지 못하다가 겨우 사골을 우리고 유기농 혼합 잡곡을 사고 성능 좋은 보온도시락을 마련하고 등등 끼니를 헐하지 않게 채워주는 것으로써 제 소임을 자처했습니다. 그렇게 ‘고3 엄마 벼락치기’를 하는 동안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하루 무탈하게 돌아가는(듯 보이는) 일상의 위대함이랄까요. 입학, 졸업, 진학, 취..
밤이 선생이다_과제 리뷰 + 수업이 막바지로 갈수록 여러분들 과제를 읽어보면 문장의 기술적인 부분은 손댈 것이 없어져요. 비문이나 반복구문이 없어서 잘 읽히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도 많이 생겨있고요. 자신만의 물음, 주제를 전달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엿보입니다. 요즘에는 ‘글쓰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겹으로 쌍으로 덤으로 번져나갑니다. 자기경험에서 출발하는 글을 쓰다보면 어쩔 수 없이 고통의 기억, 상실의 경험과 마주하게 됩니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무엇, 눌러놓으면 다시 튀어 오르는 그것은, 대개가 고통의 감각이니까요. 행복은 삶에 스며서 대기로 휘발됩니다. 생의 불구성, 고통만 응어리로 남습니다. 단단하게 만져지는 종기 같은 무엇, 고통이 아니라면 어디서 사유의 계기를 얻을까요. 김조광수 씨가 어디선가 그런 얘길 하더군요..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_과제 리뷰 + '예술의 말년성이 조화와 해결의 징표가 아니라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을 드러낸다면 어떨까? 조화롭지 못하고 평온하지 않은 긴장, 의도적으로 비생산적인 생산력을 수반하는 말년의 양식을 탐구하고 싶다.' 뒷날개를 훑어보다가 ‘공인된 연륜과 지혜’에 안주하지 않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 사유가 얼마나 매력적이던지 가슴이 뛰었어요. 남들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는 건, 복종이지 생각이 아니잖아요. 작가는 적어도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표현할 줄 알아야하고요. 대개가 자연에서 평화와 위안을 구할 때 자연은 무질서하고 무례하다고 말하는 보들레르, 모두가 자연의 재생력과 복원력을 신비스러움으로 찬미할 때 그것을 어쩐지 뻔뻔함이 있다고 말하는 이상, 공연장이 아니라 녹음실이 상상력과 잠재성의 원천이라며 말년에..
백의 그림자_ 광화문 나들이 수업 저도 제가 있는 대학의 입시논술 채점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요, 놀랍게도 학생들이 써낸 논술의 80퍼센트 가량이 비슷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문제의식을 갖게 하지 않고 계속 답만 달게 한 교육이 낳은 참담한 결과죠. 지금 교수님께서는 논술을 포함한 글쓰기의 출발점은 ‘나’의 경험이어야 한다는 것, 어떤 글을 왜 쓰는지 스스로 알고 써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계신데요, 경험에서 출발한 글쓰기는 내가 살아온 삶,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질 줄 아는 능력과 연관되며, 글쓰기와 기본 능력은 질문을 구성하는 능력이라는 말씀도 해주고 계십니다. 최재천 교수님과 함께 펴내신 에서도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유사한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과학은 답을 추구하고, 인문학은 질문을 추구한..
D에게 보내는 편지_과제 리뷰 이 세상에 태어나서 두 가지는 꼭 알고 가야한다고 어느 분이 그러셨어요. 내가 누구인지,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저것 중에서 자기체험을 가장 강력하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연애사건이 아닐까요. 사랑에 빠진 신체는 말랑말랑하죠. 언어와 감각과 자연에 극도로 민감해져요. 아기살처럼 약한 자극에도 자국이 남고. 사소한 일에 눈물도 웃음도 헤퍼지고. 알고 싶고 만지고 싶고. 사랑 이전에 감정표현 능력이 아역배우처럼 대여섯 가지에 불과했다면 사랑 이후에는 노련한 대배우처럼 감정의 복잡한 결까지도 느낄 줄 알게 되고요. ‘느낌 아니까’ 요즘 이런 유행어가 있던데요. ‘느낌’이 활성화되면 ‘욕심’이 자라납니다. 니체가 원하기 위해서는 먼저 원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한다고 했는데, 사랑하면 바로 원할 줄 아는 자,..
김승옥 무진기행_과제 리뷰 # 김승옥, 무진기행 무진으로 가야겠다. 책을 읽고 그곳으로 가고 싶어진 최초의 경험이 이예요. 반도의 땅 끝 어디쯤에서 일박이일쯤 헤매고 왔으면 ‘딱’ 좋았을 텐데요. 강력한 끌림. 어떤 힘이 등 떠미는 대로 충동적으로 미친 척 살아보길 갈망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제 모습은, 의 재현이자 복습이기도 합니다. 편지의 세계를 동경하면서도 전보의 세계에서 호출당하면 당장 서울행 버스에 올라타는 남자처럼, 무기력합니다. 대부분 그러고 살아갑니다. 모든 훌륭한 문학이 그렇듯이 도 삶의 아이러니를 다룹니다. 아이러니의 뜻은 의도와 결과 사이의 어긋남이죠. 그 어긋남을 양산하는 시스템이 ‘도시’고요. 도회인의 삶이란 자기보존을 위해서는 자기포기의 법칙으로 살아야합니다. 의 여자도 다르지 않았지요. 거대한 연극처럼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