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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그날그날의 현장 검증 / 황지우


어제 나는 내 귀에 말뚝을 박고 돌아왔다

오늘 나는 내 눈에 철조망을 치고 붕대로 감아 버렸다

내일 나는 내 입에 흙을

한 삽 쳐넣고 솜으로 막는다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나는 나의 일부를 파묻는다

나의 증거 인멸을 위해

나의 살아 남음을 위해

 

- 황지우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눈에 밟힌다. 그 아이. 내가 살면서 본 뉴스 중에 가장 끔찍하고 가장 가슴 아픈 일이 되었다. 우연히도 요 며칠 나의 화두는 엄마였다. 아는 선배가 엄마를 주제로 전시를 하고 싶다고 해서, 화가 났던 참이다. 사진을 보고 말했다. “저 중에는 비혼이거나 자식 없는 중년 여성도 있을 거 같은데...” 사람들은 나이든 여자를 다 엄마로 보고 싶어 한다. 나는 어른 남자들이 그저 떠올리기만 해도 애잔하고 죄송스러운 엄마를 호명하는 게 싫다. 남자 작가의 책머리에 어머니에게 바친다를 볼 때도 기분이 별로다. 측은지심으로서의 엄마. 그 연민의 대상으로서의 엄마에게 늘 그 자리에 있어달라는 무의식적인 욕망이 느껴진다. 또한 엄마가 그렇게 헌신적이기만 한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엄마의 자식사랑이 지독한 광기로 변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식을 나 몰라라 방치하고 학대하는 엄마도 있다. 별별 엄마의 행태를 은폐하는 헌신하는 모성으로의 일반화. 그런 신파는 위험하다. 엄마 자체는 아름답지 않다. 그러므로 엄마를 찬미하기 전에 어떤 엄마이어야 하는가를 질문해야한다고 생각을 정리해나갔다 

그러다가 그 아이 기사를 접했다. 엄마를 살해하고 8개월간 방치한 고3 아이로 나온다. 억장이 무너졌다. 아이가 느꼈을 공포감, 외로움이 산사태처럼 덮쳐왔다. 8개월이면 아이 혼자 지내기는 길다. 밥은 어떻게 먹었을까, 옷은 혼자 빨아 입었을까, 밤이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다 통째로 8개월이 떠밀려왔다. 엄마를 살해하기 전날 12시간 동안 골프채로 맞았다고 하니 내 뼈가 다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7세부터 폭력을 일삼던 엄마란다. 홍두깨로 때리고 물건을 던져 머리에 피가 철철 나기도 했다고 아빠가 증언한다. 엄마에게 잘 보이려고 초316시간을 책상에 앉아서 공부했다는 대목에서 경악했다. 3이면 우리 딸아이 나이다. 이제 열 살. 너무 작다. 그 엄마한테 맞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던 아이가 자라 고3이 되었고 봉합해두었던 상처가 터져버렸다. 아이는 자기가 죽지 않기 위해 칼날을 돌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