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 보들레르

[올드걸의시집]


기억해보아라
, 님이여, 우리가 보았던 것을,
그토록 화창하고 아름답던 여름 아침
:
오솔길 모퉁이 조약돌 깔린 자리 위에
드러누워 있던 끔찍한 시체 

음탕한 계집처럼 두 다리를 쳐들고,
독기를 뿜어내며 불타오르고
,
태평하고 파렴치하게,
썩은
냄새 가득 풍기는 배때기를 벌리고 있었다 

태양은 이 썩은시체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알맞게 굽기라도 하려는 듯
,
위대한 자연
이 한데 합쳐놓은 것을
백 갑절로 모두 되돌려주려는 듯;

하늘은 이 눈부신 해골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어나는 꽃이라도 바라보듯
.
고약한 냄새 어찌나 지독하던지 당신은
풀 위에서 기절할 뻔했었지. 

그 썩은 배때기 위로 파리떼는 윙윙거리고,
거기서 검은 구더기떼 기어나와
,
걸쭉한 액체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
그 살아있는 누더기를 타고,

그 모든 것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밀려나갔다 하고,
그 모든 것이 반짝반짝 솟아나오고 있었다
;
시체는 희미한 바람에 부풀어 올라
,
아직도 살아서 불어나는 듯했다.

그리고 세상은 기이한 음악소리를 내고 있었다,
흐르는 물처럼, 바람처럼
,
또는 장단 맞춰 까불거리는 키 속에서
흔들리고 나뒹구는 곡식알처럼.

형상은 지워지고, 이제 한갓 사라진 꿈,
잊혀진 화포 위에
화가가 기억을 더듬어 완성하는
서서히 그려지는 하나의 소묘. 

바위 뒤에서 초조한 암캐 한 마리
성난 눈으로 우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
놓쳐버린 살점을 해골로부터
다시 뜯어낼 순간을 노리며,

-허나 언제인가는 당신도 닮게 되겠지,
이 오물, 이 지독한 부패물을
,
내 눈의 별이여, 내 마음의 태양이여
,
내 천사, 내 정열인 당신도!

그렇다! 당신도 그렇게 되겠지, 오 매력의 여왕이여,
종부성사 끝나고
당신도 만발한 꽃들과 풀 아래
해골 사이에서 곰팡이 슬 즈음이면,

그때엔, 오 나의 미녀여, 말하오,
당신을 핥으며 파먹을 구더기에게
,
썩어문드러져도 내 사랑의 형태와 거룩한 본질을
내가 간직하고 있었다고!

 

- 보들레르시집 <악의 꽃>, 대산세계문학총서 

 

오전 1130분 망원동 작은 사거리 빵집 앞. 약속한 사람을 기다렸다. 5분이 지났는데 오지 않았다. 빵집에서 커피를 시켜 들고 골목 안쪽 주택가 방향으로 몇 걸음 들어갔다. 조금 높은 보도블럭에 앉았다. 커피와 가방을 옆에 놓고 책을 꺼냈다. 길거리 카페. 오랜만에 보는 보들레르. 오규원을 읽다가 보들레르로 시심이 번졌다. 햇살도 바람도 다사로운 가을 아침. 마음이 간지러워 집중이 안 됐다. 시 한줄 허공 한줄 커피 한 입 시계 한 번. 두리번거리는데 멀리서 노파가 나타났다. 아흔 쯤 되어 보이는 진짜 할머니. 머리는 새하얗고, 몸은 뻥튀기처럼 푸석푸석했다. 느릿느릿 오초에 한 걸음씩 내딛는다. 지상의 무대에는 할머니와 나만 존재했다.

점점 내게로 다가오는 형상. 하늘은 이 눈부신 해골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어나는 꽃이라도 바라보듯,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꿈속에서 저승사자를 보았을 때처럼, 피할 수 없으리란 예감에 사로잡혔다. 분명 할 말 있는 표정이다. 책으로 눈을 피했다가 고개를 드니 할머니가 코앞. 예상대로 기어이 입을 떼신다. “눈 밝아 좋겠다! 나는 암 것도 안 봬. 보고 싶어도 못 봐. 눈 밝아 좋겠다...” 단역배우 대사 치듯 웅얼웅얼 말을 던지고 지나간다. 시크하다. 모퉁이를 돌아가는 할머니 손에 무언가 들려있다. 자세히 보니 손바닥보다 큰 낙엽 대여섯 장이다. 낙엽 쥐고 어디로 가시는 걸까. 육체의 전원이 하나씩 꺼져가는 몸뚱이. 지팡이가 아니라 낙엽에 기댄 할머니. 사라지는 뒷등이 말한다. 썩어문드러져도 내 사랑의 형태와 거룩한 본질을 간직하고 있다고 

돈암시장. 이불가게 주인 아주머니-할머니는 볼 때마다 누워계신다. 이불은 하루에 몇 채나 팔릴까 걱정하며 지나간다. 이불가게는 최적의 숙면 환경. 전국 재래시장의 모든 이불가게의 아주머니는 가로로 누워있다고 상상한다. 오늘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속옷가게 양품점 주인아주머니-할머니도 누워계신다. 스타킹 사려고 유심히 살펴봤다. 잠옷, 내복, 양말 파는 집을 발견했다. 아무도 안 계세요. 안쪽에 들어갔더니 아주머니가 벌떡 직각으로 일어난다. 파마머리가 납작하게 눌렸다. 스타킹 있어요? 발목까지 오는. 있지. 여기. 얼마에요. 오백..천원이야. 신앙촌 꺼라 좀 비싸. 천원이야 천원. 구멍도 안 나고 좋아 

양말을 계산하고는 나도 모르게 툇마루에 털썩 앉았다. 할머니 신고 가도 되죠? 스타킹을 안 신었더니 발이 아파서요. , 스타킹을 왜 안 신었어! 맨발에 구두 신으면 구두가 발을 파먹지. 나도 옛날에 강남에 나갈 때 구두 신고 나갔다가 벗어서 들고 오고 그랬어. 구두가 발을 파먹는다고 파먹어! 할머니가 보들레르다. 어떻게 구두가 발을 파먹는다는 표현을 쓰실까. 적확하고 독창적인 언어구사에 감탄한다. 구두신고 멋부리고 강남에는 어떤 일로 가셨을까 궁금하다. 근데 스타킹 색이 좀 밝다. 코티 분가루 같은 신앙촌 스타킹. 발에 끼우니 뿌옇게 발이 부푼다. 면양말처럼 투박하다. 까만 구두를 신으니 더 촌스럽다. 비비안 스킨칼라와는 채도와 질감이 완전 다르구나. 어찌하랴. 구두가 파먹은 발, 구더기칼라의 신앙촌 붕대로 감싼 발이 나의 본질이다.  




::: 사람과 사람의 교감! 人터넷의 첫 시작! 댓글을 달아주세요! :::

  1. 어앤삼 [2011.10.23 0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그림이 그려지네요.
    예전에 길거리 지나다 신앙촌상회에서 스타킹 샀었는데 질겨서 오래신었어요.



  2. 마구마구 [2011.10.23 0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직각으로 팍팍 꽂히는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좋네요.^^;; 너무 번잡한 일주일을 보냈더니, 울적함. 두통. 무기력 상태인데 말이죠. 항상 열심히 전투적으로 사는 사람들과 지내기가 참 어려워요.ㅜㅜ. 그들이 무섭고 내자신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죠.ㅜㅜ

    • 은-유 [2011.10.23 20: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더 심한 시를 읽어줄 수도 있음ㅋ 백석시도 밀렸는데..조만간 낭독해주리다. 힘내요. 자기속도와 자기힘으로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하니까.

  3. 삐삐 [2011.10.23 0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슨 우연인지 자꾸 댓글이 지워지는 이유는 그런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ㅎ
    좋잖아요 이 시요.ㅎㅎ 사랑했던 것들의 형태와 거룩한 본질을 연인의 사체와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지켰었다란 연인에게 대한 증언과도 같은 시니까요. 쟌 듀발에 대해서 쓴 시같아요.

    그러면서 썩어가는 사체를 뜯어려고 노리는 개한마리에 대해서 관찰을 노치지 않는 보들레르 선생을 주시할 필요가 있고요.ㅎ 여기서 그만 쓸께요. 길게 썼다가는 다 날아갈 것 같아요.ㅋㅋ

    • 은-유 [2011.10.23 2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이 지워지나요? 티스토리 서버에 문제가 있나보네요. 삐삐님 논문을 놓쳤네요 ^^ㅋㅋ)이 시 읽을수록 아름답죠. 시수업할 때 가져가서 읽어줬더니 반응 뜨거웠음~

  4. 지오 [2011.10.25 0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시 좋으네요~
    근데 전 신앙촌 스타킹이 뭔지를 잘 모르겠네요. 신앙촌상회는 많이 들어봤는뎁~ 효도신발에 딱 어울린다고요. 우째 효도신발 한 켤레 사드리까?

  5. 굿럭 [2011.10.25 0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이.. 시체~ 강렬한데요~ 무섭기두 하구요 ㅋㅋ 거부감도 일다가다시 읽으니 다른느낌~ ^^ 저 학원에시집갖다놓고~ 가끔씩 보는데~ 수험생한테,, 좋은거 하나 추천해주세요~^^*경찰되면 ' 시체 ' 일상생활 에 다른이보다 접할기회가 많겠는데.. 이렇게 시를 통해 접하니 신선하네요 ㅋㅋ 잠시 선생 님 글에 빠져보 구 갑니다^^ 감기 조심하시구요~전 일주일 넘개 고생중 ㅋ 그럼 편안한 밤 되세요~

    • 은-유 [2011.10.25 2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경수씨 경찰공무원 되는 데 이바지하는 시집으로 생각해보자. 뭐가 좋을까? ^^ 우리 시세미나에서 읽는 시집을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읽는 것도 재미날 듯 하네. 다 내가 좋아하는 시집들이니 그 범위를 벗어나진 않을 거야~

  6. 삐삐 [2011.10.25 0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스토리 서버가 아니라 제 컴퓨터에 문제가 있는데 아직 고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수가 왕왕 있네요.ㅎ
    고마운 번역가에게 예의가 아닌 글이 나갈 뻔 했는데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고요.ㅋㅋ

    위의 번역한대로 충분히 좋은 시가 전해져서 고맙단 생각이 먼저고요. 약간의 사족을 단 것이었는데...
    제목이 썩은 송장, 이런 의미를 말하는 샤호뉴라는 제목은 시체라 해도 무방하지만 다른 제목을 달 수도 있었겠단 생각도 해봤고요.

    시번역은 역시 새로운 창조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게 되고요. 위의 7째줄의 태연하고 파렴치한 이란 형용사는 농샤랑트 에 씨니크란 단어를 번역하건데 나른하고 냉소적인으로 번역할 수 있거든요. 태연하고 파렴치한 이란 썩은 시체의 이미지와 나른하고 냉소적인 이란 이미지의 느낌엔 많이 차이가 있죠.

    계집이란 단어나 배때기란 단어는 번역자의 단어고요. 원문은 여인과 배일 뿐이고요.

    특히 11번과 12번째줄의 번역은 번역자체로는 의미가 잘 오지 않는 것 같아요.

    자연에 쳐놓은 타옴표는 원문엔 없는 건데 왜 타옴표를 쳤는지 모르겠고요. 내용은 태양열에 의해서 사체가
    미디엄정도로 잠 구워져서 변해가는 것을 위의 두 줄에서 말하고 이런 식으로 사체가 썩어가면서 자연의
    일부가 되면서 그 자체로 대 자연에 백갑절의 선물을 돌려준다는 대사과정의 놀랄만한 이치를 말하고 있는 건데 그 의미가 잘 들어오지 않게 표현되어 있기도 하고요.

    기타등등 원문의 동사의 본래 의미와 우리 말의 표현에 더 자연스러운 동사를 바꿔넣는 것, 여러가지 의미의 형용사의 의미중에 어떤 의미의 뜻을 선택해서 우리언어로 바꿀것인가의 문제등등 많은 이슈가 있겠고요,
    그런 면에서 번역자가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짐작이 가기 때문에 고맙기도 하지만 이유있는 이견은 분명히 있고요.ㅎ

    여러 역자의 번역이 이루어지면 원문에 보다 가까이 가는 시를 감상해볼 수 있기도 하겠고요.
    기타등등의 내용을 썼는데 날라갔었어요, 덕분에 위의 시를 차분히 읽어볼 수 있어서 고마왔고요. 시를 읽는 것은 어떤 글을 읽는 것보다 언어에 정확히 다가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시를 읽을떈 국어사전을 열심히 찾고 있는 저를 보게 되거든요. 제가 아는 우리말의 뜻을 다시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ㅎ 백석의 시단어는
    사전에도 없는 단어라서 많이 힘드실 거에요.ㅋㅋ 기다리겠습니다.



    • 은-유 [2011.10.25 2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는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가 생명인데.., 그래서 번역시를 멀리했었어요. 역시 배와 배떼기, 여인과 계집의 간극이 발생하는군요. 그래도 보들레르의 추의 미학;을 접할 수 있으니 감사해야겠지만요.

      문학동네에서 정본백석시집이 나왔어요. 이상 시집도 그렇고 원문과 현대어 번역시랑 같이 실려있어서 해석은 됩니다.ㅎㅎ

  7. 연초록 [2011.10.30 0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같은 동에 사는 한 할머니,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것도 힘이 드셔서 그 안에 들어오는 즉시 벽에 기대고

    계시지요. 허리가 굽었다고 말하는 것도 조용한 표현이 될 정도로 거의 직각으로 굽어있는 등을 보는 것이

    연민을 넘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목숨에 대해서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서 엘리베이터 타는

    일이 겁날 때도 있어요. 급작스러운 마주침이 무서워서. 무엇을 무서워하는가, 생각하게 되기도 하지요.

    그러고보니 저도 신문의 잔 글씨를 요즘은 덜 읽게 되네요.큰 글씨 위주로 읽고 행간의 뜻을 생각하고

    그렇게 나이는 기습을 하고, 기습을 당하고 한참은 멍하다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을 끙끙대도 소용없으니

    받아들이자 하고 마음을 접지요. 경계해야 할 일은 그래 너희들도 나처럼 나이들어봐, 이런 식의 대사를

    입에 달고 살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 그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겠지요?

    • 은-유 [2011.10.31 0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도 살아야할 목숨..이 어찌할 수 없음이 모든 연민과 번뇌의 근원같습니다. 나이 들어봐라~는 아니지만 저는 나이 들어보니..라는 말을 종종 써요^^ 마흔 통과하면서 달리 감각되는 일들이 많더라고요. 우리나라가 연령주의가 강해서 더 거부감이 들텐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