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각 떨어지는 꽃잎에도 봄은 줄어드는데 만점 꽃잎이 바람에 날리니 참으로 시름에 잠기네. 봄을 마음껏 보려고 하나 꽃잎은 눈을 스치고 지나가니 어찌 몸이 상할까 두렵다고 술을 마시지 않으리.
강가 작은 정자에는 비취새가 둥지를 틀었고 부용원 뜰가 높은 이들 무덤에 기린 석상도 뒹구는구나. 세상이치를 따져 보건대 마땅히 즐거움을 따를지니 어찌 헛된 영화에 이 한몸 얽맬 필요가 있으랴.
하늘에서 보면 아파트 단지가 새하얗지 않을까. 벚꽃잎이 바닥에 다다닥 붙었다. 점묘법으로 눈부신 봄빛을 표현하고 있다. 난분분 꽃잎 지니 곡강이수가 떠오른다. 그 유명한 일편화비감각춘. 여러 군데 찾아봤는데 번역이 천차만별이다. 가장 아름다운 해석은 이것이다. 한 조각 꽃이 져도 봄빛이 깎이나니. 전체적인 의미전달은 풀어쓴 글이 낫고. 김연수가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 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라고 썼는데, 내가 생각해도 청춘은 꼭 맹목과 무지의 시절같다. 마치 벚꽃길 아래를 지나는 것처럼 만물이 화사하고 앞이 흐릿한 시기. 삶에 촛점이 맞춰질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런데 일과 사랑,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그 때 다 내려지니 이것이 삶의 아이러니겠지.
나는 증권회사에서 스무살을 시작했다. 돈의 천국. 월급과 보너스가 얼마나 많던지. 온갖 명목으로 계속 돈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들어왔고 그들은 일등 신랑신부감으로 인기가 높았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쩨쩨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야근해도 밥을 비싼 것만 먹고 호텔 나이트만 다니고, 어느 직원이 주식으로 돈 벌었다고 하면 또 크게 한턱 냈다. 일의 스트레스 강도가 워낙 높아서 그에 상응하는 정신적 위로가 필요했다. 몇년 후 증권시장은 곤두박질 쳤고 봄빛이 깎이듯 월급도 깎이었다. 하나둘 퇴사했고 나도 그곳을 벗어났다. 다시 사보기자로 십년 만에 증권회사를 출입했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분위기는 비슷했다. 직원들의 세련된 차림새와 화통한 씀씀이. 고객만족과 실적경쟁 때문에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전산시스템이 급발달하여 온갖 통계와 수치로 직원들을 닦달하니 전체적으로 좀더 살벌해진 감이 있었다.
누구 잘 산다, 라고 말할 때 그 기준은 돈이다. 우리 사회에선 그렇다. 직업을 정할 때도 연봉의 유혹은 크다. 돈 많이 주는 회사가 분명 좋은 회사다. 하지만 그 좋은 회사가 나의 좋은 삶을 지속적으로 보장하진 않는다. 원래 돈은 속삭인다. 나를 줄테니 너의 모든 것을 달라고. 그래서 특히 젊을 때, 첫 직장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것은 위험하다. 마라톤에서 페이스조절에 실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돈의 쓰임이 곧 삶의 자세이다. 젊을 때부터 나를 던져 '돈과 삶을 거래'하기 시작하면 인생을 돈의 흐름대로 쫓아가게 된다. 나의 생각대로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다. 고액연봉 학원 강사도 처음부터 그 길로 오래 가려고 마음 먹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메뚜기도 한 철인데 큰 돈을 벌어두자며 불철주야 몸을 불사르는데, 쉽게 큰 돈을 만져보면 나중에 다른 일은 시시하게 느껴진다. 돈이 기준이 되면, 삶의 만족을 돈 아니면 채우기 힘들다. 직업의 선택지는 적어지고 행복의 창안에 무능해진다.
또 그런 일터는 비슷한 부류의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공무원의 인격이 있듯이 금융인의 인격이 존재하고 시민운동가의 고유한 인격이 있다. 이 또한 중요하다. 인생의 꽃시절을 누구와 보내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행복은 결코 혼자 달성할 수 없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도 "너는 무엇을 먹고 마실까보다 누구와 먹고 마실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한번 뿐인 인생. 잘 벌어 잘 먹고 잘 쓰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기 기질과 가치에 맞게 추구하면 될 일이다. 헌데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돈의 세례 속에서 평생 살 수 있는 복된 인생이 많지도 않거니와 그것만이 행복한 삶의 전부는 아니다.
자유로운 영혼들은 가난해도 삶의 만족도는 높다. 47세에 벼슬에 오른 두보는 어지러운 정국과 부패한 관료사회에 실망하여 시를 짓고 술을 마셔가며 시름을 다랬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젊을 때 세상이치 속에서 자유하고 성찰하며 살았던 사람은 자기 삶을 짓누르는 나쁜 공기를 금세 알아챈다. 이것은 위대한 능력이다. 두보를 보니 확실히 그렇다. 부귀영화에 이 한몸 던져 행복하려는 사람이 있고, 헛된 영화에 이 한몸 얽맬 필요가 있으랴라 노래하는 이도 있다. 모두 자기 선택인데 젊은 날의 경험이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됨은 분명해 보인다. 인생의 꽃시절은 짧고, 삶은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