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로움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얼마전에 알았다. 그날 아침에 애들 학교 보내고 빨래 개키고 설겆이 하고 집 대충 치우고 우리동네 새로 생긴 파스쿠치 2층 명당자리에 아침 8시 50분에 도착했다. 파란 하늘이 들어찬다. 안은 한적했고 밖은 화창했다. 2층에서 본 거리. 의자에 눕듯이 앉아 차가 다니고 연둣빛 이파리가 한들거리는 길가를 보고 있자니 내가 꼭 6인실 창가자리에 입원한 환자 같았다. 노곤했다. 천원 내고 커피를 리필하고 스콘을 사와서 먹어가며 책을 마저 읽었다. 근처 생협에서 장을 한보따리 봐서는 책가방과 장바구니를 이고지고 뒤뚱거리며 집에 왔다. 딸아이가 하교 후 곧장 놀러 나가고 아들은 야자라 늦게 온다. 무려 오후 4시 무렵까지 나는, 무리를 이탈한 사자처럼 혼자 꼬리를 흔들며 내 나와바리를 어슬렁거렸다. 왜 이렇게 나도 조용하고 사방이 조용한가 했더니 전화가 한 통도 오지 않았음을 알았다. 잠잠한 핸드폰. 잉크가 말라버린 만년필처럼 아무 이야기도 나오지지 않는 핸드폰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간은 오전마다 편집자들에게 전화가 자주 왔다. 나의 밥줄이었던 그 전화가 좋고도 싫었다. 나를 찾으니 좋기도 하면서 거절하기 미안해서 어물쩡 외면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전화가 뜸해지니까 나의 무정규직 처지가 실감났다. 책 읽고 글 쓰고. 이전과 같은 일이지만 나는 요즘 레알 솔로이다. 그 전에는 늘 편집자와 사진가와 인터뷰이와 한 팀처럼 일했는데 지금은 섬처럼 동떨어졌다. 혼자 기획하고 혼자 독촉하고 혼자 교정하고 혼자 마감한다. 북치고 장구치고. 그짓을 하다가 불현듯 번개처럼 깨우쳤다. '정녕 이것이 외로움인가!' 날마다 두 애들과 동료들과 뒤범벅이 된 울퉁불퉁한 소보루빵으로 살다가 갑자기 삶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도넛이된 기분이다. 생리적이고 물리적인 텅빈 가슴을 경험했다. 나란 인간은 외로울 틈도 없었던 삶을 살았었구나.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를 일이다. 내가 낯설어질 때마다 한뼘쯤 크는 느낌이긴 하다. 얼음이 풀리고 땅이 풀리듯 가슴마저 풀리고. 외로운 그림자 발끝에서 새순처럼 돋는다. 수상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