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있다 명령하고 결의하고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것이 현대 그러나 여보 결의하는 비애 계사 위에 울리는 곡괭이소리 여보 여보 |
시골구석에서 사는 아이가 희귀난치병이다. 몇 번 들었어도 이름을 외기 힘든 척수성근위축증. 태어나자마자 사지에 힘이 빠진다. 심폐기능이 약해 호흡이 어렵다. 지역 내 큰 병원에서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억척스레 아이를 들쳐 업고 상경했다. “그래도 큰 병원 가봤다는 소리는 들어야지 원이 없잖아요.” 이런 얘길 들을 때 눈을 어디다 두어야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투박하고 새까만 문신한 눈썹과 실밥 뜯어진 비즈가 처량하게 매달린 네크라인을 멀뚱멀뚱 훑는다. 수년간 그 먼데서 ‘큰 병원’을 다니며 아이의 숨을 이었다. 없는 사람에게 병원체제로 돌아가는 24시간은 혹독하다. 째깍째깍 초침 따라 병원비가 올라간다. 빈 밭처럼 버려진 집구석에 비가 들이친다. 세끼 먹고 사는 일상성의 유지가 힘들다. 번뇌는 물적이다. 궁핍하면 험해진다. 아픈 애가 있는 가난한 부부는 거칠기 짝이 없다. 아파서 가난하고 가난해서 싸우고 싸워서 다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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