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몇 개의 기사를 열어보았다. 성장과정부터 혹독한 연습, 엄마의 헌신적 뒷바라지까지 김연아라는 영웅의 탄생기를 읽었다. 엄마가 평생 코치였다는 것, 정명훈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영웅 뒤에는 엄마가 있었다고 매스컴에서는 위대한 모성을 칭송했다.
징한 모성이데올로기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연아처럼 너도) ‘하면 된다’의 채찍을 휘두를까 싶으니 씁쓸했다. 사실 우리나라 극성 엄마들의 모성에 순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참에 ‘대한민국 모성’이 단체로 더욱 ‘필’ 받게 생겼으니 심히 염려됐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서점에 갔더니 김연아 자서전 <김연아의 7분 드라마> 어머니 박미희씨 자녀교육 에세이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 오서 코치가 쓴 <한번의 비상을 위한 천번의 점프> 등 김연아 삼종세트가 특별코너에 나란히 쌓여있었다.
과연 자본주의가 한 명의 영웅을 어떻게 추대하고 소비하는지가 짐작됐다. 아마 김연아 특수를 노리는 기업들은 ‘당신도 할 수 있다’며 열정과 도전을 부채질할 것이다. 경제연구소의 김연아보고서도 나오겠지. 언론에서는 지금의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 저 멀리 장밋빛 미래가 펼쳐진다고 유혹할 것이다. 벌써부터 이제 막 꿈을 이룬 연아에게 다음 목표를 묻고 올림픽 2연패의 짐을 지우는 예의 없는 기사들이 쏟아진다. 조급증 사회답다. 연아의 거액 포상금이 국내 어느 은행으로 갈까를 분석한다. 스무살 국민여동생 김연아를 앞세워 돈, 성과, 속도를 부추긴다.
확실히 김연아 착시효과는 있다. 나 역시 ‘김연아’를 지켜보며 이제라도 애들의 재능을 발굴해 코치로 나서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만날 예쁘다고 원시적으로 물고 빨기만 했지 정한수 한 그릇 떠놓은 적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어쩌면 내 열의와 지도력이 부족해서 아이를 꿈나무로 키우지 못한 것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나는 자식의 매니저로 내 일상을 저당 잡히기 싫은 이기적인 엄마이고, 무엇보다 자식을 벼랑 끝까지 밀어 넣어 정상에 우뚝 세우는 혹독한 고난도의 코칭기술이 없다. 그리고 나는 안다. 여러 상황과 조건이 무르익어 김연아처럼 ‘하면 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되면 한다’의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우리가 영웅에게 빠져드는 것은 내 안에서 숭고한 특질을 발견하는 것보다 멀리서 남을 추앙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은빛 빙판에서 한 마리 백조처럼 날개짓 하는 김연아를 보면서 고단한 일상, 남루한 현실을 잠시라도 잊으니 고마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공허하다. 우리는 결코 연아가 될 수 없는 내 아들, 내 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 온 국민이 연아에 넋 잃는 사이 MBC에는 친 이명박 인사 김재철 사장이 등극했다. MBC는 민주언론 최후의 보루다. 연아 사랑에 눈멀어 진짜 눈과 귀를 잃게 생겼다. 존재 그 자체로 빛나는 연아에게 시선이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으나 우리의 남루한 일상에도 서서히 촛불을 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