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달력을 받자마자 22일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엄마생일을 학수고대하던 딸. 일주일 전 즈음 밖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글쎄 코트 주머니에 돈이 있지 뭐야. 그래서 문방구에서 볼펜 사왔어. 엄마선물로. 포장할 거니까 나 쳐다보지 마.” 나는 용돈도 없는 꼬맹이 주머니에 웬 돈이 있었나 싶어 물어봤더니 자기도 모르는데 400원 있었단다. 그래서 300원짜리 볼펜을 샀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모나미 볼펜이 틀림없군....’
아들이 자기는 해마다 엄마 생선(생일선물)으로 시집을 선물했다고 자랑했다. 이에 자극받은 딸아이가 자기도 시집을 선물하겠다고 한다. 딸아이 분홍지갑에는 이만원이나 들어있었다. 친인척들에게 받은 용돈이 모였단다. 첫아이 그맘때는 용돈이 생기는 즉시 저금해주었는데 둘째는 방목하느라 용돈관리마저 소홀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22날 서점엘 갔다. 분홍지갑 넣은 하늘색 핸드백 둘러멘 딸아이와 함께.
딸아이가 자기를 시집코너로 안내하면 알아서 사겠다고 큰소리친다. 엄마는 저기 다른 데 가 있으란다. 그런데 너무 무작위로 고르면 안 되니까 내가 후보로 서너 권 정해주고 뒤로 빠지기로 협상했다. 난 신춘문예 심사위원처럼 진지한 눈빛으로 후보작을 골랐다. 같이 둘러보던 딸아이가 옆에서 소란이다.
“엄마, 여기 꽃차례(김명인)라는 시집이 있어!” 꽃수레 눈에는 꽃차례만 보이는 모양이다. 잠시 후.
“어, 돼지들에게(최영미)라는 시집도 있네! 시집은 꽃수레랑 관련된 게 참 많다!” 오빠가 자기를 돼지라고 부르면 싫어라하더니만 정들었는지 반가운 기색이다.
시집 세 권을 겨우 골라 주고 나는 삼십분 쇼핑하고 돌아왔다. 딸아이가 ‘엄마 몰래’ 시집을 골라서 ‘엄마 몰래’ 계산을 하고 가방에 넣는다. 엄마는 절대 보면 안 된다고 지퍼를 닫고 거듭 확인한다. 왜 그렇게 보안유지에 힘쓰는지 물었더니 능청스럽게 한다는 말이, “미리 알면 재미없잖아~”
# 가난한 엄마의 생일파티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왔다. 같이 저녁 먹으러 호면당엘 갔다. 퓨전음식점인데 애들이 좋아하고 음식도 맛있다. 내부수리를 해서 분위기가 한층 아늑하다. 그런 곳에 가면 딸아이는 문화적 자극을 엄청 받는다. 샹들리에, 벽지, 테이블, 의자, 쿠션, 접시 등 소소한 소품 하나하나를 사진 찍듯이 눈에 담고 “우리도 이런 거 있었으면 좋겠다”를 연발한다. 그날도 시작됐다. 꽃병 예쁘다, 접시 예쁘다로 시작해서 기어코 종점으로 돌아왔다. 백번도 더 물어본 얘기. “다른 집은 다 넓은데 왜 우리만 좁아?” 그러더니 기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우리 집은 꼭 힘없는 백성이 사는 집 같아......”
밥알 튀어나올 뻔했다. 가난한 민중도 아니고 힘없는 백성이라니. 요즘 <추노>를 열심히 보더니 거기에 그런 대사가 나온 걸까. 전래동화에서 읽었나. 어디서 배웠는지 암튼 대사가 신선했다. 아들이 발끈해서 한마디 던진다. “야, 우리 정도면 그렇게 가난한 건 아니야. 중간정도는 돼.”
나는 딸아이에게 부의 척도는 시대마다 지역마다 개인마다 다르며, 이런 맛있는 음식 먹으면 행복한 부자라고 말했다. 아울러 '물질적 풍요=부자=행복' 등식이 반드시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해주었다. 생파가 난데없이 부자아빠 가난한아빠 특강이 돼버렸다.
딸아이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시집 마종기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와 모나미볼펜 등등을 받고 조촐한 생파를 마쳤다. 딸아이가 준 선물에는 생일카드 대신 A4용지 두 장이 있다. 꽃수레가 되기 위한 시험지와 그것을 푼 사람에게 증정되는 꽃수레 수료증이다.^^
이틀 후. “엄마 어제 몇 시에 잤어?” “두시” “뭐했어” “TV봤어” “재밌는 거야” “슬픈 거” “뭔데” “찜질방부자”
아이가 궁금해해서 줄거리를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그만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쏟고 말았다.
“아빠랑 아들이 집이 없어서...찜질방마다 쫓겨나고... 그래서 아빠는 지방으로 돈 벌러 갔는데 (훌쩍) 그 오빠한테 돈을 주면서 식당에서 밥 먹으라고 그러는데...그 오빠가 덕윤이 만하거든 아직 청소년인데..(훌쩍) 떠돌이처럼 어려서부터 엄마도 없고... 집도 없고....(훌쩍) 너무 불쌍하지 ㅠㅠ”
“엄마, 그 오빠만 집이 없는 거 아니야. <추노>에도 불쌍한 사람 나오는데 옷이 없어서 헝겊만 걸치고 집이 없어서 들판에서 자고 그래.....”
늘 내가 울면 나보다 더 크게 우는 딸아이가 제법 의젓하게 차분한 목소리로 티슈를 뽑아주며 나를 위로한다. 이제야 진짜 '힘없는 백성'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 걸까.
# 안 보이는 행복의 나라
다음 날 아침. 딸아이가 눈을 뜨자마자 이불 위로 목만 내놓고 천정을 응시하며 말을 건다. “엄마, 생각이 자꾸 따라다니면 어떻게 해야 돼?” "다른 생각하면 돼. 가령, 태지오빠가 생각나면 태지오빠를 잊으려 애쓰지 말고 아예 새로운 사람을 생각하는 거야. 맘처럼 잘 되진 않지만. 근데 왜? 무슨 생각이 따라다니는데?”
“찜질방부자. 엄마, 그 오빠는 친척도 없어?” “원래 가난하면 친척이 다 도망가. 돈 없는 게 가난이 아니라 친척도 친구도 아무도 없는 게 진짜 가난한 거야.” “우린 그 정도는 아니지?” “얘는 참네, 우린 부자라니까! 할머니 할아버지 계시지. 삼촌도 있지. 꽃수레 예뻐하는 이모들도 엄청 많지. 얼마나 부자니!” “그러네.......”
“그리고, 너 자꾸 넓은 집에 살고 싶다고 그러는데, 만약 집이 커서 식구대로 방 따로 쓰면 너 엄마랑 떨어져서 있어야해. 엄마가 글 쓴다고 방에 들어가서 안 나오고 오빠도 공부한다고 방에 있으면 꽃수레 혼자 엄청 심심하고 쓸쓸할 거야. 좁은 집도 알고 보면 좋은 점이 참 많아.”
“맞아. 오순도순 지내고 행복하잖아.”
시무룩하던 딸아이 목소리가 일순 밝아졌다. 아이가 목동에 살면서 느끼는 계급적 격차로 인해 혼란스러워했다. 근 일년간 ‘가난’을 화두로 삼더니 서서히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다. 어쨌거나 그 덕에 빈자의 감수성은 확실히 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