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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작심 / 문태준 '보름은 나를 당신을 부드럽게 설명하는 시간'


 


모든 약속은 보름 동안만 지키기로 했네

보름이 지나면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다른 데를 보듯 나는 나의

약속을 외면할 거야

나의 삶을 대질심문하는 일도 보름이면 족해

보름이 지나면

이스트로 부풀린 빵 같은 나의 질문들을 거두어 갈

거야

그러면 당신은 사라지는 약속의 뒷등을 보겠지

하지만, 보름은 아주 아주 충분한 시간

보름은 나를 당신을 부드럽게 설명하는 시간

그리곤 서서히 말들이 우리들을 이별할 거야

달이 한 번 사라지는 속도로

그렇게 오래

 

- 문태준 시집 <그늘의 발달>,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