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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세상

봉하마을에 가다


그곳이 조금 쓸쓸해졌을 때 가려 했다. 피서철 해운대처럼 인산인해를 이룰 때는 굳이 가지 않아도 좋았다. 그곳이 마른 겨울 논처럼 적막할 때 한 번 찾아뵈려 했다. ‘언제 한 번 보자’라는 말로 전화를 끊은 것처럼 마음의 숙제로 남겨두었던 참이다. 친구가 모임에서 간다기에 내 자리도 하나 마련해 달라고 냉큼 부탁했다. 원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낡은 편지 하나 손에 쥐고 어릴 때 헤어진 아비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딸이 되어 기웃기웃 그 마을길을 홀로 걷고 싶었는데... 현실계에서 가능한 일이 적어질수록 영화적 상상력만 발달한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시댁식구들과 성묘를 마치고 귀경길, 천안 시내에 내렸다. 조신한 맏며느리에서 바람의 딸 유목민으로 모드변환. 내가 사랑하는 내가 되어 천안아산역에 당도했다. 이용객이 적은 대합실은 어쩐지 스산하다. 두 시간을 이 모델하우스 같은 곳에서 머물러야 한다. 커피 한잔 들고 창가에 앉는다. 시집을 뒤적이다가 열차 타는 곳으로 갔다. 긴 의자에 가방을 베고 길게 누웠다. 등짝을 붙이자 그 휑한 곳이 조금 아늑해졌다. 얼마후 서울역에서 4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오는 친구와 성공리에 접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