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이주노동자가 잡혀간다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수다체로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일까.” 13일 오전에 세미나 하러 연구실에 갔다가 정수샘에게 미누씨가 잡혀갔다는 얘길 들었다. 연구실과 한 공간을 쓰는 이주노동자방송국 MWTV에서 일하는 분이고 17년간 문화활동가로 열심히 일한 친구인데 어제 출근길에 연구실 앞에서 강제연행 됐다는 것이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까 낯은 익은 분이었다. 안타까웠다.
하지만 사실 요즘이야 천인공노에 어이상실할 사건사고가 하루걸러 터지는 지라 솔직히 말하자면 “나쁜 놈들이 참 가지가지 한다. 미누씨 불쌍하다.”는 탄식이 나오는 정도였다. 정수샘이 글 한번 써보라고 말하는데 마음이 동하지를 않았다. 만약 정수샘이 잡혀가면 성명서 한바닥 절로 나오겠지만 난 그에 대해 아는 것도 추억도 없으므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만 할뿐이다.
다음 날, 친구이자 식구를 빼앗긴 고병권샘이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규탄의 글을 보았다. 미누의 구속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에서 읽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을 보니까 ‘친구의 상심’이 읽혔다. 미누가 잡혀간 현실이 구체적으로 와 닿았다. 미누는 내 친구의 친구였다. (내가 이래서 글을 사랑한다. 프로이트 말대로 확실히 언어에는 마법의 기능이 있다) 마침 기자회견장인 서울출입국사무소가 집 근처여서 가려던 참에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해피에게 연락이 와서 같이 갔다.
기자회견장 앞. 공대위 사람들이 현수막을 펼치고 준비 중이었다. 낯선 얼굴이 보였다. “어, 너.. 누구?” 이름이 30초쯤 맴돌다 나왔다. 예전에 같이 노조일 하던 동지였다. 여의도 코스콤 천막농성 때 얼핏 눈인사를 나누고 2년 만에 마주침이다. “여기 웬일이야? 미누씨 어떻게 알어?” 우리는 서로 물었다. 알고 보니 그는 성공회대 노동대학에서 일하고 있고 미누씨는 성공회대 노동대학에서 공부 중인 학생이었다. 미누는 내 동지의 친구였다.
또 피켓 사이로 아는 얼굴이 보였다. 예전에 이주노동자를 위한 꼬마도서관 취재에서 만난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순영씨가 아닐까. 외모가 조금 달라져 헷갈렸다. 취재하면서 다양한 계층의 대단한 사람들 많이 만나지만 ‘향기’가 오래 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순영씨는 내 분류법에 의하면 ‘향기파’다. 만났을 때도 참 느낌이 좋았는데 나중에 일일이 선곡한 음악CD 4장을 구워서 엽서와 함께 소포로 보내와 날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뜨려주었으니, 어찌 잊으랴.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순영 씨를 만난 것이다. 미누씨로 인해. 미누는 내 좋은 사람의 친구였다.
기자회견이 한 시간 정도 진행됐다. 취재진 20여 명에 미누씨의 친구들 50여 명 정도가 모였다. 그들을 보자 미누씨의 한국에서의 삶의 열정이 피부로 느껴졌다. 이주노동자의방송MWTV의 미디어활동가로, 아이들을 위한 다문화 강사로 그리고 다국적 밴드 ‘스탑크랙다운’의 리드보컬인 음악인으로서, <이주민 2%, 2008 대한민국> 등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이주노동자와 한국사회의 소통을 위한 다리역할을 하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아왔다는 것, 미누씨가 한국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았다.
발언 내용 중 미누씨 친구가 어제 면회를 다녀왔는데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10시면 불 끄고 자라고 한다면서 “난 지금까지 그 시간에 잠들어 본 적이 없는데 자라고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미누가 정말 자유를 빼앗겼고 인권 탄압을 받는다는 실감이 났다.
“도무지 법적으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말을 여러 사람들에게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17년의 삶이, 그와 함께 했던 우리 모두의 삶이, 아니 바로 어제까지 그가 목 놓아 불렀던 노래가, 정책 담당자의 결심에 따라 오늘 바로 끝장나 버릴 수 있다니. 아, 못 견딜 것 같습니다.”
고병권이 이 대목을 읽을 때 숙연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대로“불가능한 것은 논리이고 법이지 삶이 아니다. 미누는 우리에게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고, 존재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불가능하지 않다.”기자회견이 끝나고 집에 왔더니 메일이 와 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에서 온 것이다. 미누씨의 특별체류허가를 요청하는 탄원서의 연명을 받고 있다. 미누씨를 위해 개설된 free-minu 카페에 가면 된다.
남보다는 조금 가까운 남의 일처럼 느껴졌던 미누씨의 구속. 미누씨를 통해서 우리 사회 도처의 ‘삶의 불가능성’에 대해 사유해야 함을, 만물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이웃을 사랑하려면 먼 이웃을 사랑해야함(니체)을, 서로는 서로의 삶에 빚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한국에서 말하는 희망사회 있잖아. 나는 한국에서 18년을 살았는데 그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하는지 모르겠어. 한국에서 일하고, 노래하고 살아왔는데 지금은 여기(외국인보호소)에 있잖아.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네팔에 가지 못하고 울지도 못했어. 나는... 어제 여기서 눈물을 흘렸어. 나는 한국에서 희망조차 꿈꾸지 못하는 사람인건가?
한국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어. 내가 한국에서 살아갈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었는지. 18년이라는 시간이 헛된 것이었는지. 너무 마음이 아프다. 한국이 너무 슬프다” -2009년 10월 09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미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