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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숨길 수 없는 노래2 / 이성복 '우리 사랑은 서러움이다'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
  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먼지처럼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
  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
  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서러움이 아닌 사랑이 어디 있는가 너무 빠르거나 늦은
  그대여, 나보다 먼저 그대보다 먼저 우리 사랑은 서러움
  이다

   -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 만난 것은 어느 별이 도운 것일까요?' 삼류 멜로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대사. 너무 순박해서 익살스러운 이것은 니체의 말이다. 니체가 평생 사랑했던 단 한명의 여인, 루 살로메를 처음 보고 건넸다는 유명한 인사말이다. 38세의 니체는 21세의 루에게 변변한 데이트도 없이 청혼했다가 묵사발이 된다. 안타깝게도 루는 단 한번도 니체를 사랑하지 않았다. 루가 꽤 매력적이고 총명했나보다. 루는 훗날 릴케, 프로이트까지 당대의 지성들과 러브라인을 형성한다. 당시에도 철학도 파울 레와 동거중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니체가 간청 협박편지를 보내기도 했단다. 아무튼 실연을 당한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를 단 10일 만에 썼다고 전한다. 사랑의 몸살과 광기로 쓰여진 책. 1부에 글을 쓰려면 피로 쓰라는 말이 나오는데 자기가 밤새 쏟은 피눈물로 써서 그랬던 걸까. 가엾은 니체. 철학자로서는 멋진데, 한 남자로는 엉망이다. 철학의 대가도 울려버리는 사랑. 서툴어서 서러운 사랑. 

오랜 동거 끝에 선배가 결혼을 했다. 여름날의 야외결혼식. 유명한 시인이 직접 축시도 낭송해주었다. 일과 사랑에서 성하의 시절을 보내는 두 사람. 둘은 처음부터 사랑의 고수로 보였다. 사람을 외롭게 하는 재주가 있는 남자. 외로움을 초콜릿처럼 음미할 줄 아는 여자. 둘은 잘 어울리는 커플 아니라, 잘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사랑의 속절없음에 대해 흔들리지 않을, 흔들림을 놀이기구처럼 유희할 수 있는 강한 연인같았다. 그래서일까. 막상 결혼식을 보는데 쓸쓸했다. '사랑'이 어울리는 그들에게 '결혼'은 어쩐 일인지 어울리지 않았다. 그것은 사랑이 끝나고 결혼이 시작되는 슬픈 축제였다. 더 오래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랑을 위해 결혼을 택하지만, 결혼과 함께 사랑이 끝나는 아이러니. 결혼을 하면 자식도 남고 노후의 벗도 남는다지만, 그 삶의 오물통 속에  왜 당신들까지. 하는 심정. 서러움의 박수만 정성스레 치다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