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익숙해질 수 없는 고통이 있다. 죽음이 그것이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진리가 ‘나의 죽음’ 혹은 가족과 친구의 문제로 다가올 때면, 그 실존적이고 구체적인 문제 앞에 누구나 절망하고 분노한다. 이처럼 생의 엄연한 일부이지만, 늘 두렵고 불편한 죽음에 대해 더 이상 유난하게 굴지 않게 된 사람이 있다. 일산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강현주 선생. 그녀가 매일 접한 것은 죽음이었으나, 그녀는 오히려 그 안에서 삶을 ‘발견’했다고 한다.
“처음에 이곳에 발령 받았을 때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요. 환자분들에게 배우는 게 참 많거든요. 사람들은 호스피스 병동에 대해 어둡고 침울하다는 선입견을 갖는데 오히려 다른 어느 병동보다 더 따뜻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에요.”
자분자분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진심을 넘어선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러나 말기 암 환자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곳에서 발산하는 ‘온기’의 정체란 대체 어떤 느낌일까. 세속적인 번뇌와 집착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한 그녀의 얘기가 이어진다.
“막상 환자분들이 원하는 건 굉장히 작고 소박해요. 어떤 환자분은 자식을 결혼시키자마자 암 진단을 받고 입원하셨어요. 그러다가 저희 병동에 오셨는데 어느 날 ‘며느리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을 한 번 먹어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다음날 며느리가 밥을 차려왔는데, 환자분은 두어 숟가락 드시고는 몇 시간 있다가 바로 돌아가셨지요.”
목울대가 뜨거워지는 이 실화를 경험하면서 그녀는 행복에 대해, 산다는 것에 대해 고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직접 죽는 꿈까지 꾸었다는 강현주 선생. 꿈속에서 몸은 죽어 누워있는데 정신은 너무 멀쩡했기 때문에 더욱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던 기억을 털어놓는다.
“남편한테 아이들한테 하고픈 얘기가 너무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얘기를 해도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니깐 비로소 내가 죽었구나 싶었지요.” 이렇게 꿈속에서의 통절한 체험 이후로 그녀는 비로소 죽음을 준비하며 살게 되었고, 죽음은 삶의 연장이라는 것도 믿게 되었다고 한다.
따뜻한 밥 한 끼니의 행복
대부분 호스피스 병동에 오는 환자의 가족들은 죄책감을 느끼고 온다.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는 것이다. ‘찾아오는 것’이 아닌 느닷없이 ‘닥쳐와서’ 일상을 휘저어 놓는 죽음. 이 불청객 앞에 허둥대고 성내고 부정하다 무릎을 꿇고 마는 아픈 영혼들을, 그녀는 넉넉한 가슴으로 품고 있었다.
“환자분들이 손잡고 이야기 들어드리는 걸 가장 좋아하세요.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 좋았던 기억들에 대해서 말씀 하세요. 마음에 있는 것들을 덜어내는 과정이죠. 대개 죽음이 임박해오면 2-3일 전부터 의학적인 이상 징후들이 나타나거든요. 그럼 보호자분들께 연락해서 서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도록 권해드려요.”
삶을 마감하는 절차로서의 대화가 갖는 의미는 이처럼 소중하다. 살아온 과정을 돌이켜보고 회상하는 것으로 지나온 날들의 기억은 한층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재배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현주 선생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 가족들은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시어머니께서 다른 곳으로 옮기면 안 되느냐며 “하필 매일 죽는 사람만 보는 데서 일 하느냐고” 안타까워하셨다고. 이에 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려서 ‘애늙은이’ 며느리가 되었지만, 어머님을 암묵적 지지의 입장으로 설득하기도 했다.
“어머님, 제가 배우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 가족들과 둘러앉아 먹는 따뜻한 밥 한 끼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어요. 아등바등 살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지금생활에 너무 감사하고 있어요.”
그녀의 이 같은 지혜로움은 죽음에 대한 숙고가 아니라 삶에 대한 숙고에서 깨달은 것이었다. “간호사는 나이가 들수록 더 만족감이 높은 직업 같아요. 조교생활도 해봤고 건진센터에서도 일해 봤지만 저는 병동이 좋고, 그중에서도 이곳 호스피스 병동이 가장 좋아요.” 군더더기 없고 당당한 그녀의 말이다.
이제는 삶을 전체적으로 ‘관조’할 수 있게 된 강현주 선생은 큰 자유를 얻은 듯했다. 선지자가 말했듯, 인간은 오직 타인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정도만큼,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까닭이다.
